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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Jun 21. 2022

3 HYEJI : 점-선-면-체의 시작, 점을 찾아서

2022.04.26. @혜화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일과 관련된 것이지만 내 삶의 포인트,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한 아이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일할 때 튀는 색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면 매치하기 어려운데 카드지갑처럼 조그마한 건 괜찮거든요. 지갑은 쨍한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줬고, 체리 모양의 키링은 색에 맞췄어요. 확 튀는 색이 내 악센트가 될 수 있기도 하고요.



살면서 두고두고 쓰는 표현 중에 ‘점선면체’가 있다. 어디서 비롯되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학의 개념 중 도형 부분을 설명할 때였다. 도형을 그리려면 점, 선, 면이라는 3요소가 필요하다. 먼저 공간에 점을 찍어야 하고, 각각의 점이 무수히 움직일 때 선이 드러나며, 선이 움직인 자리는 면이 된다. 이 개념은 책 안에, 노트라는 평면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살면서도 곧잘 적용되곤 한다.


비유적으로 한 존재를 점으로 표현할 때 그 점이 움직여 다른 점을 만나면 선이 형성된다. 관계가 만들어지는 걸 두고 인연이라 부르는데, 주로 선이나 줄로 표현되는 걸 보면 그럴싸하다. 그렇다면 선에서 면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관계를 통해 서로가 공존하는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모습이 아닐까.


혜지 님은 자신이 점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일찌감치 인지했다. 점으로 머무는 건 외롭고 아쉬웠고 선으로 만날 또 다른 점을 갈망했다. 오랜 시간 점의 모양을 다듬거나 점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을 파고들면서, 루트는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점이 움직일 방향 또한. 점이 선으로 이어지기 위해 시공간을 누비는 혜지 님의 시행착오를 들어봤다.





혜지 님과는 뉴그라운드 <한 발짝 곁에 서는 인터뷰> 프로그램, 그러니까 줌으로 만난 적이 있어요. 줌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만나니까 역시 아바타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드네요(웃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너무 바쁘게 지냈어요. 그렇지만 바쁘더라도 뭔가에 도전했을 때 남는 게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에요. 작년 12월쯤에 퇴사 준비를 하고 올해는 본격적으로 무소속이 되었죠.

퇴사 직전인 시점에 미란 님의 인터뷰 프로그램을 접하고서, ‘지금 하는 게 맞을까?’ ‘아쉽지만 이번엔 넘기고 다음에 이런 프로그램이 또 열리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설령 나중에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해도 제게 다른 일이 생길지 모른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질러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좋은 기억이자 의미 있는 계기로 남았어요.


무소속으로 지낸 기간은 얼마나 되시나요?

올해 2월 말에 퇴사했으니까 지금 기준으로 2개월 정도요. 사실 대학원 생활 내내 무소속이었다고 느끼고, 3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한 게 제 인생에 단 하나의 소속이 있었던 기간이에요. 이전까지 합치면 더 길겠네요. 그전까지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일과 병행하며 회사에 다녔고, 이제는 강의만 해요. 프리랜서로서 2회차 삶을 살고 있죠.


무소속으로 지내는 동안 어떤 루틴으로 생활하세요?

루틴이 망했어요(웃음). 원체 일하는 걸 좋아하고 앞날이 불안하기도 해서 퇴사 전에 일을 받아뒀거든요. 지금은 떠밀려온 일을 감당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게 많은 탓에 처음에는 루틴을 정해야겠다고 접근했어요.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사둔 인터뷰집을 하루에 하나씩 읽은 후 업로드하고, 일어 구몬 학습지를 이만큼 공부해야지… 하는 계획을 모았더니 무려 3시간에 육박하더라고요(웃음). 게다가 필라테스를 시작하고서 딱 죽겠다 싶었어요. 3월에는 강의를 시작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졸린데다 몸 곳곳이 아프기까지 하니 고역이었죠. 한두 달은 꾸역꾸역 루틴을 지키다가 학기 중반에 다다르자 푹 퍼졌어요.

회사에서는 일찌감치 출근해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잠을 쫓고 일을 시작하니까, 프리랜서의 삶은 일을 시작하는 9시쯤 시작하는 거로 접근한 거예요. 하지만 전혀 달랐죠. 간과한 게 있다면 출근 과정 없이 바로 일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한동안 어떻게든 소화하도록 밀어붙인 결과, 오전형 인간이 아닌 걸 확실히 깨달았어요(웃음). 지금은 적당한 루틴을 찾는 중이에요. ‘나를 그렇게 몰아세우는 게 맞나?’ ‘그래도 뭔가 좀 더 하는 게 맞나?’ 하는 질문 사이에서 고민하고, 강박적으로 ‘내가 이 루틴을 망치면 나의 프리랜서 생활이 망할 거야, 게을러서 죽어버릴 거야’ 하는 불안감으로 달렸거든요. 어차피 평생 이렇게 살 거라면 다양한 걸 경험해보고 헤매보는 거,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여태 해온 일에 관해 들려주실래요?

대학원생 시절에 학과사무실 조교로 일을 시작했어요. 어영부영 시작하게 된 일이었음에도, 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행정과 서비스를 자유로이 넘나든다는 점에서 지금 제가 사는 삶의 튜토리얼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어요. 대학원 수업을 모두 들은 후 몇 년간은 연구소에 소속되어 출퇴근이 보장된 시기도 있었어요. 제가 주도적인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퇴사했지만, 소속감과 안정감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죠. 학위를 딴 후에는 이곳저곳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강의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지만, 그 안에 다양한 결이 있어요. 전공 강의일 때와 교양 강의일 때의 모양, 자격증 취득을 위한 특강과 고등학생을 위한 특강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거든요. 그 과정에서 유튜브 동영상 강의를 찍기도 했는데 무섭고도 신기한 일이더라고요. 부업으로 교재나 시험지의 교열을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연구하기도 해요. 아직 제 연차에선 제대로 연구에 참여한다기보단 행정 처리를 도맡아 하지만요.


주로 학교에 머물렀다가 연구소에서 회사 생활을 하신 거네요. 어떻게 일하게 되었나요?

학위논문을 쓰려고 준비하면서 조금 쉬던 중에 한 번 지원해보라는 교수님의 연락을 받았어요. 계획에 없던 입사부터 3년 내내 제 인생이 계속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아주 힘들었어요. 퇴사하고서 펑펑 울었죠. 그 매듭이 이제야 풀려나가는 느낌이에요. 긍정적으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스스로 무소속이 좋다고 확정할 수 있게 되어서죠.

재밌게도 대학원에서는 애써서 돈 버는 모습을 두고 ‘돈에 그렇게 집착하면 안 돼, 공부만 해야 해’라는 태도가 있어요. 대학원 생활은 수입이 일정치 않거든요. 연구원으로 월급 받는 동안 회사로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다소 명확한 삶이 나에게 어떤 걸 주는지 세밀하게 따져봤어요.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엄청난 게 아닌지 몰라. 3만 원짜리 립스틱 사는 것에 내 행복이 있을 수 있잖아. 내가 스스로 괴롭히는 방향으로 사는 걸까?’ 수시로 자문했어요.

저는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갖는 사람이에요. 점점 평범한 삶이 되어야겠지만, 아직은 프리랜서가 남들이 원하는 평범한 삶은 아니잖아요. 할 만큼 체험해보고 내게 뭐가 더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본인의 의지로 시작했다고 해도 3년은 꽤 길다 싶어요. 일할 기간을 정하신 거예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회사냐 아니냐?’보다는 ‘회사에 다녀도 나는 논문을 써야겠다’만 있었기 때문에 일단 논문 쓰는 동안은 일한 거죠. 하루 2시간씩 자면서 일하는 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다 쓸 때까지 오기로 버텼죠. 대학원에 왔으니까 ‘일단 끝까지는 찍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끝을 찍었더니 ‘끝인 줄 알았지? 여기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하는 전형적인 패턴.

이후로 제 인생이 여러 가지로 크게 바뀌었는데요. 이제 뭐 할지 1년 정도 생각한 결과가 퇴사였어요. 그동안 여러 가지를 견주어 봤죠. ‘회사 다니면서 프리랜서 생활을 반쯤 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혹은 내가 원하는 걸 얼마큼 하고 싶을까?’ 그 답을 안팎으로 계속 찾았죠. 피폐해진 상태에 약간 머물러 있는 시간도 있었고요.



프리랜서로 일해봐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계기가 있었나요?

코로나19가 오히려 제 발목을 잡는 원인이었어요. 강의는 코로나 상황이 심해질수록 수입이 들쭉날쭉한 반면, 연구 일은 제 발로 나가지 않는 한에야 따박따박 월급을 받을 수 있겠더라고요. 코로나 시기에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든데 퇴사해도 괜찮은 건지 확신이 안 섰어요. 다들 그러잖아요, 마음속에 누구나 사직서 하나는 품고 산다고. 때려치운다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저만 나왔죠(웃음). ‘여기 계속 있지 말아야지’라고 줄곧 생각해온 데는 회사에서 돈은 주는데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 아주 재밌어하는 것을 하나도 할 수 없다는 게 주효했어요.

돌이켜보면 강의를 하고서 귀가하는 일이 행복했어요. 집에 와 화장을 지우고 똥머리를 하고서 맥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을 때의 행복! 연구할 때는 그런 식의 보람을 전혀,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어요. 혹시라도 부서가 달라지면, 직무가 달라지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달라지면 그 보람에 1푼이라도 얹을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가늠해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도 안 되겠다, 이만한 보람을 누릴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굉장한 결단처럼 느껴지네요. 일을 통해 얻고 싶은 ‘보람’이라는 가치가 돈보다 위에 있는 걸까 싶어요.

강단 있게 돈보다 보람이 위에 있다고 생각지는 않아요(웃음). 일단은 몇 가지 일 제안이 더 들어왔고 해보려면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애쓰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실마리를 발견해서 안정감과 맞바꾼 거죠. 이번 학기 월급은 회사에 준하게, 혹은 좀 더 아끼면 될 만큼 벌 수 있다는 정도죠. 물론 5년 뒤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요.

다만 불안해도 가치 있는 일을 하자는 기준은 있어요. 제게 일은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주거든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 세세하게 알 수 있었어요. 물론 프리랜서 시장에서 저는 늘 을의 입장이니, 어떤 유형의 일을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매 순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아는 건 큰 힘이라고 여겨요. 일 덕분에 지금 제가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하고, 어디로 나아가고 싶은지 혹은 어디로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지를 알아차려요.


배워서 남 준다는 말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누구나 그런 정보를 나누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 일을 잘하지도 않고, 본인이 배우는 걸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잖아요. 누군가에게 내가 잘 배운 걸 전달하고, 특히나 잘 전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고 봐요. 혜지 님은 강의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고, 그에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본인에게 중요하고 잘 맞는다고 느끼시는 듯해요.

오래전부터 특정 직업을 원하기보다 ‘어떠어떠한 작업을 하는 어떠어떠한 모양의 삶을 살고 싶다’라는 방식으로 생각해왔어요.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추상적인 욕구일 수 있겠지만 저는 더 구체적인 욕구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제 삶은 ‘어떠어떠한’을 끊임없이 찾고 밝혀나가는 과정이고요.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직업을 고민할 때 저는 ‘일단 더 공부해볼까?’와 ‘이 학문을 계속 공부하는 게 맞나?’라는 질문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심했거든요. 이 결심에 책임지면서 지속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왔고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을 선택했다고 말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멋모르고 공부를 더 해보기로 결심한 때부터 ‘남들이 모르는 부분을 밝혀내자’가 아니라 ‘연구자들 사이에선 특별하지 않더라도 대중이 모르는 부분을 잘 설명해 주자’를 목표로 삼았죠. 강의는 그런 의미에서 의미 깊은 작업이고,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싶은 본업이기도 해요. 전공 강의와 교양 강의, 또 여러 특강마다 참석한 사람들의 목표가 다 다른데, 그 각각의 목표를 파악하여 가능한 기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가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보람을 느껴요. 물론 너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요.





타인과의 소통에 관심이 컸다고요.

전공인 국어국문을 선택한 데는 일차적으로 소통을 잘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됐어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할 때, ‘아’와 ‘어’ 사이의 규칙을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공부를 열심히 해보면 같은 말을 두고도 오해하는 상황을 타파할 길이 있을 거라는 다소 순진한 생각으로 진학했죠. 그때 제가 접근한 방식은 1) 상대가 전달하고 싶은 a가 분명히 있다 2) 내가 그 말을 잘 들으면 a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3) 소통 과정에 오해가 없고 다 행복하다 였어요. 결과적으로는 아니었죠.

일단 a라는 게 상대조차 확실치 않고, 그건 말을 배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규칙으로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그걸 알고서 꽤 스트레스받았어요. 가정이 틀렸고 실패한 거니까요. 그렇지만 대개 약속을 배우면 소통력을 어느 정도까지 높일 수 있으니, 그게 안 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다 싶었어요.


언어학에 관심도 많고 열심히 파셨겠네요.

그렇진 않았어요. 제 친구들 사이에선 언어학이 주류가 아니었거든요. 아무도 그쪽을 궁금해하지 않아서 저만 혼자 외롭게 있었죠.


이미 전공에서부터 그런 외로움이 느껴졌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올 수 있었을까요. 내 고충을 나눌 사람이 없고, 이해해 줄 사람이 없고, 나랑 비슷한 눈높이에 비슷한 틀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그만큼 외로움을 클 텐데.

옛날에는 ‘내가 중2 같은가보다, 남들 눈에는 좀 특이한가 보지, 대강 지내자’라는 생각으로 지냈어요. 많이 애쓰던 시기도 있었지만 여기는 나랑 비슷한 사람이 없나 봐, 내가 길을 잘못 찾았나 봐, 하면서 학계에서 동료 찾기를 포기했죠. 지금은 하고 싶은 영역으로 오긴 했는데 명확한 자리를 못 밟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가려운 데를 못 찾아서 주위 어딘가를 긁고, 가려운 데를 영영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죠. 그래서 강의를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강의에서 10가지를 얘기할 때 학생들이 모두 알아듣지는 않거든요(웃음). 한 학기 통틀어 적어도 1명이라도 제가 재밌어하는 걸 공유하는 순간에 즐거움을 크게 느끼죠. ‘봐, 이거 신기하지? 이거 재밌지?’를 강의마다 타진해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듣고 나서 친구들과 스물 토크 거리라도 생기겠죠.


같은 위치의 동료를 찾기보다 코드가 맞는 사람을 강의에서 찾는다는 느낌이에요.

국문학과는 교양수업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는데요. 제일 먼저 한 강의이자, 제가 좋아하는 분야예요. 필수 수강이니까 글 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듣는 건데, 쓸 거 없다던 사람이라도 유심히 보면 반짝이는 이야깃거리가 있어요. 제가 그걸 발견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해내는 게 즐거워요. “봐봐, 너 그 얘기 하고 싶었잖아, 쓸 거 있었잖아”라는 말에는 ‘거봐, 너도 재밌잖아, 너도 나랑 비슷한 부분이 있잖아’라는 동질감이 내포돼있어요.

학계나 연구계에서는 각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동료 찾기가 쉽지 않아요. 아마 인문학과 특유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외롭다 싶고, 임용 부분에서 서로를 라이벌처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작용하지 않나 싶어요. 무엇보다 학계에서는 제가 중점적으로 하고자 하는 강의를 부수적인 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주변에 코드 맞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래 외로워했고, 요즘은 열심히 함께 나아갈 동료를 찾고 모으는 중이에요.

박사 이상의 여성 연구자 모임을 결성했더니 강의하면서 학생과 마주할 때 벌어지는 소소한 애로사항을 나눌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어떤 식으로든 일을 벌여서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게 신나요. 협업이 드문 업계지만, 협업할 일을 더 많이 벌여서 동료들과 어떻게 마음을 맞춰 나가야 하는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힘을 주는지 배우고 싶어요. 정말 잘하고 싶어요.



마침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여성 연구자 인터뷰를 기획하셨죠!

인터뷰 기획 틀은 세워놓고 먼저 여성 연구자 모임을 만들었어요. 풀 자체를 늘리자고 준비하는 단계예요. 공부하는 개인으로 어떻게 사는지, 가치관이나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을 드러내는 일이고요. 제가 그런 동료를 원했으니 먼저 그런 동료가 돼보려고요.


혜지 님의 강점을 기획력으로 두셨잖아요. 인터뷰 기획부터 그게 확 느껴졌어요.

아이디어가 풍성하고, 이를 현실 상황에 맞춰 실행할 수 있게 만드는 재주도 제법 있는 편이라고 자부해요(웃음). 강의할 때도 작은 아이디어가 가미되면 전달력이 확 늘어나거든요. 새로운 일을 벌일 때 보탬이 돼요. 일이 될 거로 생각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서 어떻게든 되게끔 으쌰으쌰 하니까요. 일 욕심이 많은 것도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할 수 있는 한 더 잘하고 싶어 해요.

반대로 약점은 욕심이 지나쳐서 나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하지 않은 것? 학생이든 동료든, 누군가가 실수했을 때 웃으며 넘어가질 못해요. 꾹꾹 누르는 스타일이죠. 논문 쓰고 나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5시간씩 자면 피곤한 게 당연한데도 ‘논문 쓸 땐 2시간씩 자잖아? 그에 비하면 많이 자잖아’로 기준이 박해져요. 주변 사람들이 자주 ‘너는 안 쉬고 있다’라고 얘기하거나, 관대해져도 좋을 상황에서 기준을 저로 두고 타인에게 엄격해질 때, 스스로 잘 용서하지 못할 때 그래요. 그럴 수 있다는 말을 못 하는 편이에요. 약속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요.


좋은 말로 하면 열정적이고 일 벌이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인 거고, 냉정하게 보자면 본인을 너무 몰아붙이는 스타일인 거네요. 번아웃이 온 경우도 있나요?

사실은 요 며칠 그런 상태였어요. 중간고사 기간에는 수업 준비를 덜 하게 되니 빈틈이 생겼고 루틴이 느슨해졌어요. 그간 해온 게 팍삭 내려앉는 느낌이 들어 무섭더라고요. ‘다시 무기력했던 때로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생산성을 가진 나로 못 돌아가는 건 아닐까?’ 트위터에 프리랜서 작가님들을 많이 팔로우해놨는데요. 다들 몇 년씩 프리랜서로 생활하신 분들인데도 새로운 루틴을 고민하고 새로운 생산성 앱을 찾고, 그러면서도 결국 마감에 닥쳐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지. 나만 이상한 거 아니야!’ 싶었어요.

마침 오늘 아침에 트위터에 길게 쓴 내용이 있어요. 며칠간 우울했는데 강의를 다녀오고서 조금 나아져서 그 소회를 썼거든요.


나는 참 강의가 좋다. 제일 잘하고 싶은 일이고,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를 감수할 만큼 재미가 있기도 하고, 해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도 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잘 전달하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학생들 모두에게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학생들이 아는 것보다 뛰어나게 명확하지도 않지만, 열다섯 개쯤 말했을 때 한두 개만 전달된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에서 무엇이라도 주고 싶다. 각각의 강의마다 학생이 원하는 것과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게 재미있다.
 
접점을 찾기 가장 어려운 건 학부 전공 강의. 알아요 학생 여러분은 이 부분에 관심이 없고 여러분 중 대부분이 이 전공과 무관한 삶을 살겠죠... 그럼 나는 무엇을 얼만큼 전달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할까? 대학의 의의와 대학에서 인문학이 갖는 위상이 급변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선생님들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 세대에선 멸종되어버릴 고민일지도 모르고... 그치 사실 우리 모두 멸종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애초에 연구의 첨단을 걷기보다 전달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학계에서 마이너라는 것도 안다.

며칠 전 박진감 쌤들이랑 얘기해보니까 역시 다들 개인연구가 강의보다 좋고 즐겁다고 하시더라고. 강의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강의를 개발하는 것보다 연구를 많이 하고 논문을 써야 되는 것도 사실이고. 뭐...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어? 내가 좋아하는 게 강의와 전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그렇다고 환경이 바뀔 것도 아니고. 잘 고민하고 고심하고 여러 방향으로 노력해야지. 뭐.



트위터는 프리랜서를 만나는 창구로 쓰시나요, 아니면 대학원의 고단함을 푸는 창구로 쓰시나요?

느슨하게 사람 만나기 무난한 게 트위터라서요. 인터넷으로 친구를 사귈 때는 어디서 만났건 트위터로 옮겨가요. 오픈 카톡이나 1대 1로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저는 그런 곳에서는 대답을 꼭 해야 하는 분위기라 부담스럽거든요. 반면 트위터는 대나무숲 같아요. 모든 트윗에 반응하거나 답할 필요 없고, 선택적으로 답변할 수 있거든요. 다른 분야의 동료를 만나는 플랫폼도 그런 식으로 운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맺는 인간관계는 너무 긴밀하고 빽빽하잖아요. 무소속인 분들은 그런 관계가 싫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비교적 넓게 거리 두는 식으로 관계 맺는 방식도 괜찮아요. 다만 관계에 거리 두는 것과 트위터를 오래 하는 건 다른 부분이라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웃음).


어떤 거리가 편한지 적정선을 아는 게 중요한 지점 같아요. 안 그러면 내가 너무 무리하게 되고, 에너지를 과도하게 쓰는 동시에 과도하게 기대하게 되니까요.

저는 그 부분을 학생들에게 느끼는 편이에요.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조금 더 세세하게 알게 되니까 내심 이 친구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잘 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해요. 그렇지만 관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수업 외로 요청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학생들은 서비스받는 고객이라고 여기거든요. 제게 보람을 주는 원천이고요. 그들이 잘 듣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강의를 하는 게 제 일차적인 목표니까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아요. 다만 관계에서 한 방향인 측면이 강하고, 업계의 생태를 모른다는 점에서 동료와는 다르죠. 고객이라는 기준을 대면 진상 고객의 비율도 꽤 높은 편이고요(웃음).





학생들과 지내다 보면 혜지 님이 학생일 때와 지금의 차이를 느끼실 때도 있겠어요.

가장 큰 부분은 이 길에 동료, 선배가 없다는 무서움이죠. 어느 날 갑자기 강의하게 됐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배워본 적이 없더라고요. 제가 들어온 강의는 발표 준비해 오라는 말이면 끝나는 식이었어요. 그 시절에는 어떻게 수업하면 학생들이 잘 들을지 크게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특히 문사철 같은 경우는 ‘대학생이나 돼서 네가 배워와야지 내가 널 가르쳐줘야 해?’라는 고고한 정신이 있잖아요(웃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보거든요. 막연히 발표 준비 해오라고 하면 아무도 안 해요(웃음). 과거에 교수님들이 어떻게 그렇게 시켰는지도 의문이고, 지금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매번 모르겠어요. 그 와중에 최대한 잘 떠먹여 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아등바등할 뿐이죠.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배우지 않았음에도 해내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누군가가 이렇게 했다는 걸 파악하고, 나에게 적용하면 이런 모습일지 계속 상상해보고, 실제로 해보는 수밖에 없겠죠. 결국에는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랄까요.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시대라고 느끼곤 해요. 먹고 사는 문제만 해도 그렇잖아요. 어른들이 뭐 해 먹고 사냐고 물으면 진짜 할 말이 없거든요(웃음). 어떤 회사에 다닌다고 말하면 그만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급변하는 사회에서 이른바 객관식이 아니고 주관식으로 살게 되었을 때 답을 잘 작성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답을 계속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윗세대가 본보기는 될 수 없고, 우리 세대에서 찾아봐야죠.


혜지 님에게 도움 됐던 데이터나 레퍼런스가 있나요?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의 책 『자 둘이 살고 있습니』를 좋아해요. 처음 접했을 땐 충격이었어요, 여자끼리 살아도 된다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이런 보기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그때는 다음 생이 있으면 이렇게 살아봐야겠다 정도로 받아들이다가, 점차 새로운 선택지를 보여주는 분들의 일과 삶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잡아 온 것 같아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건 전형적인 삶이잖아요. 그런 데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하지 못했던 거죠. 다들 오늘 울면서도 다음에 할 일이 있고, 불안하고 막막해도 그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까진 대학원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제 고충을 이해받기가 너무 힘들었죠. 반대로 온 가족이 대학원을 나와서 힘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분도 있거든요. 그런 삶이 부러워요. 한 친구와 대화하다가 마감이 있어서 힘들다는 얘기를 누구와도 공유할 수가 없으니, 대학원생들을 다룬 드라마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예요(웃음).

아마 재미는 없겠지만, 기성세대에게 대학원생이 어떻게 일하고 뭘 고민하며 지내는지 알리기에는 그 루트뿐인 거예요. 저희 어머니만 해도 매번 드라마에 나온 직업을 제게 권하세요. 작가 나오면 작가 하라고 하시고, 의사 나오면 의사 하라고 하시죠. 드라마는 그 직업군의 멋있는 점과 좋은 점을 보여주잖아요. 나는 이런 삶을 살아, 이런 게 재밌고, 이런 건 또 힘들고, 이럴 때 몹시 화난다고. 쉽게 접하는 매체에서 다양한 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앞서 ‘어떠어떠한 작업을 하는 어떠어떠한 모양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 게 이런 맥락이네요.

뭐가 됐든 뭉뚱그리지 않고 조각조각 나눠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 시절에는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묻는 게 대다수였고, 의사라고 답하면 그거로 끝이었어요. 부분부분 따져보면 다 다른 이야긴데도 직업 하나에 수반되는 연봉,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마치 세트처럼 정해져 있다고 느끼곤 해요. 하지만 삶은 세트 구매가 아니에요. 최대한 조각조각 나눠서 구매하는 삶을 사는 게 낫다고 여기는 편이에요. 학생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얘기해주려고 노력하고요. 가령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이루지 못하면 100% 실패한 인생이겠죠. 만약 딱 하나가 아니라 100개의 꿈이 있다면 몇 개 정도는 성공하는 삶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균형을 계속 생각해보는 게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시대의 화두인지 모르겠어요.

한때는 시기별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이 정해져 있었잖아요? 한창 20~30대에 열심히 일하면 40대부터 조금은 숨돌릴 수 있겠다는 예상이 됐고요. 이제는 나이를 불문하고 자기 발전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답이 없어진 시대라고 봐야겠죠. 매번 초보로 사는 느낌이에요. 사실 사전 답변을 쓰면서 여러 일을 해왔음에도 어떤 일에도 나만의 노하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글쓰기 강의를 많이 했어도 매해 학생들이 다르고, 코로나 시기의 강의와 비대면 강의에 필요한 스킬이 다르고, 전공 부문에서도 세부 갈래로 나뉘니까 ‘내가 과연 어떤 분야의 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되더라고요. 계속 레벨1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무소속이 되는 것도 비슷해요. 기존에 롤모델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배워온 게 있어선지, 무소속에는 롤모델이 없으니까 자꾸 내가 잘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기가 애매해져요. 잘한다는 기준도 확실하지 않고요. 모호하잖아요. 그래서 계속 서로가 ‘너는 이걸 잘해,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응원해줘야 하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또 사람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는 면이 커져요. 나와 견주어 볼 수 있는 사람, 동료, 전혀 없었던 것들까지요.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얘기를 했으면 좋겠고, 이렇게 더 많은 무소속을 발견하면 좋겠어요.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게 힘들고, 어떤 점을 잘하는지…. 어떤 내가 가장 나답다고 확답하지는 못해도 스펙트럼의 내가 전부 나라고 생각해요.


그게 꼭 내 지지자나 동의해 줄 사람을 모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를 100%로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나를 살리는 건 확실하다고 느끼니까요.

적어도 그 사람을 보면서 내가 나를 설명해 볼 생각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능력치가 오르지 않을 때 불안하잖아요. 불안을 어떻게 달래는 편이에요?

게임 할 때 한 번 해보고 안 먹히면 다른 기술을 써보고, 그게 안 먹히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잖아요? 불안도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제가 가진 5가지 중에 하나씩 돌려가며 써보는 거죠. 제 전공 공부, 인터뷰나 일본어처럼 전공 아닌 공부,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 좋은 인풋을 하거나 내가 보고 싶은 걸 보거나 좋은 친구를 만나는 등의 놀기, 쉬기, 총 5가지를 적절하게 안배하면서요. 아마 고정된 답은 평생 모르지 않을까요? 어떨 때는 일에 치중한 삶을 살다가 쓰러져 보고, 어떨 때는 많이 놀아보고 하는 식으로 왔다 갔다 하겠죠.


재밌는 건 5가지 중에 공부 비중이 크다는 점이에요(웃음).

배우는 걸 무진장 좋아해요(웃음). 가장 하고 싶은 건 두 번째 공부인 인터뷰예요. 인터뷰 수업을 들었을 때도, 사진 강의를 들었을 때도 배우는 자체로 만족스럽더라고요. 0에서 1로 나아갈 때가 제일 재밌으니까요. 전공인 국어는 논문 5개 읽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문외한인 일본어는 구몬 학습지를 5장 풀면 어제는 몰랐던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잖아요. ‘꾸준히 이런 걸 하면서 살고 싶다. 본업에 치이지 않으면서 이런 걸 할 기운은 어떻게 유지하지?’가 지금 저의 화두예요. 아직은 답을 못 찾아서 하면서 가늠 중이고요.


사람마다 시간을 운용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체력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모두가 체력 100%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체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게 있나요?

필라테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죠. 운동은 이 정도로 충분해서 더 하고 싶진 않고요. 작은 정도를 꾸준히 하는 걸 추구해요. 당장은 못 하고 있지만, 자기 전/일어나서 15분 스트레칭하는 일도요. 이런 건 심리적인 쪽에 영향을 준다고 여기는데요, 놀라운 건 체력도 보장해준달까요? 15분 스트레칭으로 몸이 금세 좋아지진 않아요. 근육도 생기지 않고 코어도 생기지 않죠. 그러나 아침 시간의 15분은 꽤 길어요. 그만큼의 시간을 나에게 할애한다는 게 체력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해요.

우울한 상태가 되면 누워 있는 시간이 길거든요. 15분만큼은 내 마음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고 충분한 여유를 주는 거죠. ‘괜찮아, 15분 동안 이거 해도 돼’라는 루틴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 외에는 물을 자주 마시려고 하는 것, 적절한 수면 시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7시간 수면을 꼭 지키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저혈압이라 벌떡 일어나지지 않아서 한 시간을 더 늘리는 게 나을까 싶어요. 건강 관리에서 어려운 부분이 수면이라 꼭 몸에 배면 좋겠어요.




확신이 행동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면, 혜지 님은 불확신이 행동을 만드는 쪽이다. 불안하기에 더 움직이고, 갈팡질팡하기에 해보는 거다. 그 전에 치열하게 고민해보고 끊임없이 나에게 묻는 과정은 필수다. 그런 뒤에는 발을 내디디며 희미한 길을 걸어가 보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걸 교훈 삼는다. 그리 보면 그는 반드시 몸으로 알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몸을 한자로 표현하면 ‘체’다. 점-선-면의 최종지점이라고 보는 체는 어쩌면 내 몸에 남은 무언가, 면에서 경험하고 새로이 만들어간 뒤에 만나는 내가 아닐까. 그렇다면 체는 궁극적으로 도달할 지점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나아가며 만나는 시기로 보고, 점-선-면-체는 계절의 변화나 윤회처럼 일정한 모양의 사이클로 그릴 수도 있겠다.


점은 비단 외로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움직이는 동안 무수히 남기는 자취에는 여러 마음과 생각과 바람이 담겨있고, 선을 통해 확신의 실마리를 얻는다.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니, 같이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과 나눌 수 있다는 흔쾌함으로 면을 채우고 나면 전에 없던 체가 드러날 것이다. 그의 체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터뷰, 촬영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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