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하고 의사가 된다면, 응급상황에 환자를 위한 처치들을 침착하게 그리고 재빠르게 할 수 있어야하잖아. 그런데 그걸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환자의 고통에, 보호자의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건 할 수 있겠지만, 함께 슬퍼하느라 의사가 해야할 일을 못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돼 "
본과3학년(의대 6년제 중 5학년) 병원 실습 돌던 때였다. 같은 조의 누나는 성격은 참 착하고 좋았는데 종종 자신의 실력을 자책하곤 했었다. 졸업해서 대학병원에서 학생들의 스승 역할을 하던 전공의 선생님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침착하고 그리고 재빠르게 해냈었다. 그런 선배들처럼 나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의대생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신경외과 1년차를 인계받으면서 기억나는 것은 응급실에서의 우리과 4년차 선생님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환자상태를 확인한 뒤 각종 오더를 내고 전공의가 해야할 일은 보호자 설명이었다. 4년차 치프 선생님은 옆방에 누워있는 뇌출혈 환자의 CT영상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보호자를 부른 뒤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많은 뇌출혈 환자들이 그런 것처럼 이 환자도 가망은 없었다. "수술이 필요하지만 수술해도 결국 사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의식이 깰 가능성은 사실상 없습니다."
신경외과 뇌출혈 환자들은 의식을 잃기 몇시간 전까지 멀쩡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남편이, 아버지가 의식을 잃더니 위독하고 수술을 해도 결국은 사망한다는 의사의 설명은 그야말로 사형선고다. 설명을 들은 보호자들은 오열하기 시작한다.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의사의 마음을 흔들기까지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그들의 울음에 새내기 신경외과 의사였던 나는 동요했다. 응급실에 왔으니 의사가 살려주겠지 희망을 품고 의사를 기다렸던 보호자들에게, 가망이 없다고 설명하는 것은 의사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보호자들의 오열에도 치프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은채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해야할 모든 설명을 차분히 마쳤다. 나는 보호자들이 울든말든 동요하는 모습 전혀 없이 설명을 이어나가는 그 모습이 조금은 사이코패스 같다 싶으면서도, 결국 내가 따라야할 프로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 나 또한 업무에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내 설명에 오열하는 보호자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호자들의 울음소리는 그들이 내는 울음소리였고, 나는 의사로서 마땅히 수행해야할 업무를 빈틈없이 완수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는 업무 특성상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뇌출혈이 일으키는 갑작스러운 뇌압상승은 가족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환자를 데려가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가족을 떠나보내게 된 사람들의 슬픔을 다루는 것도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다루게 되면서 전공의들은 죽음을 나와는 관련 없는 일처럼 느끼게 된다. 타인의 죽음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신경외과 전공의는 환자의 죽음과 보호자들의 슬픔에서 점점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보호자들과 면담할때 가끔은, 슬픈 영화를 보거나 비극 소설을 읽는것 같은 기분을 느낀적도 있다. 어떻게 보면, '공감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짧은 시간 안에 다독여드리고 업무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어떠한 컴플레인도 나오지 않게 만든 내 자신을 유능하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적도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의 상황에, 슬픔으로 가득한 그 감정에 몰입하지 않는 것이 업무적으로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드리는 것도 내게는 중요한 업무긴 했지만, 일할 시간에 슬픔에 몰입하게 된다면 업무에 지장을 받고, 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돕는데 방해가 될 것만은 자명했다.
그러다가도 한번씩은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 몰입하게 된적은 두 번 있었다. 두 번 다 뇌출혈 환자에게서였다. 두 분 다 깨어날 가능성은 결코 없는 환자들이었다.
한 환자는 60살 정도의 어머니였다. 수술을 했고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었다. 무의미하다면 무의미할 수 있는 연명치료 상태. 항상 그렇듯이 면회시간에는 보호자들이 중환자실에 들어왔고, 그들에게 어머님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은 내 업무 중 하나였다.
며칠간 바쁘다는 이유로 몇몇 중환자실의 보호자들에게 설명을 못 했었다. 그래서 이 어머님의 보호자들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 만나보게 된 보호자들은 내 또래, 30살 가량의 두 아들이었다.
걱정하는 두 아들들에게 어머님의 상태를 설명하고 (결국은 가망이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전해질 수치라던가 염증 수치같은, 의식 회복과는 거리가 먼 수치가 어떻게 변했는지 같은 솔직히 말하면 크게 의미는 없는 설명에도 항상 설명에 목이 마른 보호자들은 크게 만족하곤 한다) 이내 아들들에게서 나와 비슷한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나도 남동생이 있어 아들 둘 집이었다. 심지어 보호자들도 아들 둘에 나처럼 두살 터울이라고 했다. 환자인 어머니도 내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였다. 순간 내가 그 두 아들 중 첫째 아들이 된 기분이 되었고, 나의 어머니가 저렇게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상황이 상상되고 이내 몰입됐다. 나도 모르는 새에 몰려드는 감정의 동요가 느껴졌다. 급하게 중환자실을 떠야했다. 더이상 의사로서 차분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가 저렇게 가망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과 보호자들이, 아들들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던 기억이다.
두번째 기억은 혼자 중환자실 회진을 돌 때였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중환자들은 실제 중환자들과는 차이가 크다. 자신의 힘으로 숨을 쉴 수 없어 그들 입에 물려진 플라스틱 관은 실제로는 드라마처럼 깨끗하지 않다. 입은 침으로 범벅이 되어있고, 관 속은 담당간호사들의 지속적인 보살핌에도 가래로 더럽혀져 끈적끈적한 거품이 보인다. 얼굴은 당연히 엉망이다. 입은 관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테이프 몇 장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기관삽관으로 인공호흡기에 연결된 환자 그림. 실제로 구글링되는 기관삽관 환자는 전부 말끔하게 씻은 상태로 실제 환자는 없어보였다. 출처는 EMRA공홈.
면회시간이 끝나고 한참 지난 중환자실에는 환자들과 의료진 밖에 없지만, 보호자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의식이 깨지 않을것이라 들었음에도 그들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보호자들의 흔적이다. 힘내라는 의미의 작은 물건이라던가, 편지, 가끔씩은 어린 아기들의 경우에 예외적으로 허락받았는지 '사랑한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스피커가 있기도 하다.
사진 한 장에는 큰 힘이 있다고들 한다. 50살쯤 되어보이는 중년의 여자환자는 홀로 숨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가 연결된 플라스틱 관이 입에 물려져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플라스틱 관 안에는 수차례 석션에도 마저 빨려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가래침이 묻어있고, 벌려져있는 입 주변은 침으로 범벅이었다.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머리맡에 '힘내라'는 가족들의 편지 옆, 환자의 이전 사진은 내게도 망치로 머리를 내리친 것처럼 큰 충격이었다.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었을까. 생명력을 뽐내는 초록색 풀과 나무를 배경으로, 환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처럼 부어있지도, 침으로 더럽혀지지도 않은 깨끗하고 화사함이 사진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런 싱그러운 미소였다.
내가 아는 환자의 모습은 응급실에서부터였다. 의식을 잃은 상태의, 응급의학과에서 이미 기관삽관을 해놔 생명 유지의 끈을 인공호흡기에 맡겨놓은 모습이었다. 내가 아는 환자의 모습은 그게 전부였다. 반면 가족들이 기억하는 모습은, 그리고 간절히 돌아오기 바라는 모습은 사진속에서 화사하게 웃고있는 엄마렸다.
그 순간 눈가가 빨개져 눈물로 젖어있던 보호자들의 마음에 몰입됐다. 주말 오후, 중환자실 환자들 상태 확인하러 이제 막 돌기 시작했는데 .. 목이 메어왔고, 이대로는 옆에 서있던 담당 간호사와 대화할 수가 없다. 눈이 눈물로 젖기 전에 급하게 중환자실 안의 신경외과 당직실로 들어왔고 우느라 사진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30분 가량은 당직실에서 나올 수 없었다.
레지던트의 삶은 고되고 타직역의 또래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극한까지 밀어붙여지는 경험을 겪게된다. 그런 환경 탓에, 전공의들은 환자나 보호자, 그리고 간호사와 싸우게 되는 일이 참 많았고 나 또한 그랬다. 심지어는 섬망 증상으로 중환자실에서 새벽내내 소리지르는 환자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수면의 기회를 빼앗기고 이성을 잃어서, 제정신이 아닌- 그래서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음이 명백한 환자의 귀에다 대고 조용하라고 소리를 지른 경험마저 있다.
레지던트들이 흔히 겪는 극한에 몰리는 환경은, 환자에게 그리고 보호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가곤 한다. 나도 나름대로 친절하고자 노력은 했지만 모든 보호자가 만족할만큼 친절한 의사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꿈꾸던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의사, 보호자에게 감동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다. 최근 환자가 되어 입원, 수술을 받은 한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었다. 사실은 나도 응급실에 두차례 갔던적이 있고, 의사들이 보호자에게 해주던 설명을 그대로 들으며 '동의를 안 할 수는 없으니까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동의서에 사인하던 환자의 한마디를 떠올리기도 했다.
사실 의사가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 몰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도한 감정소모로 업무에 지장이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험이 멋지다거나 자랑할만한 일은 아닌거 같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환자가 된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이전 기억이 떠오르고, 내 기억속에만 남겨놓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본다.
2024년 현재, 만여 명의 전공의들이 사직으로 병원을 떠나있다. 그들이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서 병원을 떠나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외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전공의들은 의사가 환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다면 환자들에게 돌아오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현 사태가 더 장기화되지 않고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