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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림 Feb 07. 2022

'도널드 노먼의 UX 디자인 특강' 읽기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은 다른 개념이다.

이제 막 UX를 공부하기 시작한 주니어 혹은 직군 관계자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Donald Norman(도널드 노먼)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노먼은 UX (User Experience)라고 하는 개념의 최고 권위자로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족적은 인지과학에서 출발한다. 사용자와 그들의 경험이 출발하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 '기술' 이 둘의 관계성에 특히 주목하는 학자이기에, 실무나 방법론적 UX로 국한해서 그의 지식을 접하면 넓디 넓은 지평에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다. 이 점을 유의해서 새로운 학문에 발을 들인다는 마음으로 책을 대하면 좋을 것 같다.


노먼과 관련해 앞으로 소개할 책은 총 4권이다. 이번 글은 가장 하기의 가장 첫 번째 책이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알맹이만 요약해보려 한다.



이번 글 [1] 도널드 노먼의 UX 디자인 특강 - 복잡한 세상의 디자인

[2]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 심리학 - UX와 HCI를 위한 인지과학 교과서

[3] 도널드 노먼의 인간 중심 디자인 - 정보 가전의 UX와 HCI를 위한 디자인 이야기

[4]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

*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서적은 쉽게 읽히는 편이지만, 네 번째 책은 UX(인지심리) 교과서의 최종 보스라고 불릴 만큼 딱딱하고 어려운 편이다. 하나씩 천천히 도장깨기를 하며 인지과학의 세계에 물들어보자.





복잡함 != 혼란스러움

이 방 주인에게 방은 복잡한 걸까, 혼란스러운 걸까?


으악!


복잡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흔히 어지러이 물건이 정돈되지 않은 채 방치된 환경, 특히 위의 사진 같은 방을 상상한다. 책, 서류, 컴퓨터, 키보드, 마우스, 전선, 필기구, 액자, 포스트잇, 포스터 등등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책상은 분명 특정한 무언가를 찾는데에 한 세월이 걸릴 것 같지만, 실제 책상의 주인은 금세 필요한 물건을 찾고 심지어는 몸의 움직임이 환경에 퍼펙트하게 맞춰져 있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이 책상은 복잡한 걸까, 혼란스러운 걸까?


처음 본 사람에게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이 방의 주인에게는 그저 복잡할 뿐일테다. 오히려 이 광경을 목도한 누군가가 잔소리를 내지르고, 물건을 '정리'해버리면 방 주인은 혼란을 느낄 가능성이 농후하다. 책상의 주인에게 '정리'란 최고의 경험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UXer 흔히 '복잡한 상태' 경계하고 조치를 취해버리곤 하는데, 사용자가 처한 상황이 '복잡함'인지 '혼란스럽거나 어지러움'인지 구분할  알아야 한다. 타파할 대상을 '복잡함'에서 '혼란스러움'으로 옮기는 편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복잡한 기술도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게.

UXer가 해야 할 일? '복잡함'을 길들이기

독일의 건축가 Ludwig Mies van der Rohe(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말한 "Less is more"는 모든 영역의 디자이너의 신경을 쥐고 흔들어 극강의 단순함과 여백의 미를 추구하게 해 버렸다. 일단 걸리적 거린다고 판단되는 건 지워버리고 마는데, 짧고 강력한 한 문장에만 몰두해버린 나머지 많은 디자이너가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을 놓쳐버렸다. 바로 '필요한 건 꼭 내버려 두고 덜어낼 것'이다.


세상은 요지경, 어질어질할 만큼 기술이 확장적으로 발전해나가는 21세기는 인간의 습득 능력의 범주를 벗어나는 속도를 지니게 됐다. 그로 인해 인간은 복잡함을 수용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도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UXer들이 해야 하는 것은 절제미를 추구할 게 아닌, 사용자로 하여금 복잡한 기술을 쉽게 이해하고 습득의 경로를 예상 가능하게 만드는  목표다.


이는 단순함으로 밀어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파도와 유빙을 부수고 나아가는 함선의 신호 명령 체계와 계기판을 버튼 한 개로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선장은 다이얼을 돌리거나 0과 1의 전기신호로 코딩을 하다가 좌초될지도 모른다. 단순한 상상일 뿐이지만 복잡함을 길들이는 방식이 잘못됐다. 도널드 노먼은 이런 필수 불가결한 Complexity 가진 기술을 이해하게 하는 경로를 '개념적 모델'이라고 불렀고, 우리의 몫은 개념적 모델을 '' 수립할 것이라 말했다. (최근에 Backend에서도 쓰이는 개념인 Schema라고도 불리는 것을 보았다.)


개념적 모델 (Conceiptual model) :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조화된 것을 말한다. 복잡한 기술은 개념적 모델을 통해 단순해진다.




개념적 모델을 만들기 위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기표' 찾기

그럼 우리가 비교적 쉬운 개념적 모델을 만들고, 사용자들이 기술과 서비스를 습득하며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사용자를 관찰하며 그들의 '기표' 포착해야한다. 어포던스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책에서는 어포던스와 기표의 정의를 구분했다.


기표 :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해주는 일종의 지시자같은 표시, 사회적인 세상을 의미있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람들은 언어나 행동으로부터 복잡함을 해결할 미묘한 정보를 얻곤 하는데, 그 미묘한 정보를 사회적 기표라고 칭한다.


창의력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우리가 더 많은 기표를 헤아릴 수 있게 되는 때에 사용자가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이해를 말미암아 더 쉽게 기표를 활용해 서비스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여기 사회적 기표의 예시로, 희망선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공원에 의도로 만들어진 계획 보도가 아닌, 행인들이 만든 지름길을 말한다. 어느 세계를 막론하고 주거단지, 공원, 학교 그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데 하도 많이 걸어서 풀이 자라지 않는 민둥민둥한 흙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희망선. 사진을 자세히 보면 희망선이 공원과 횡당보도를 바로 이어주고 있다.


공원의 설계자는 희망선을 이 세상에서 지우고 싶어 할 것이다. 미관을 해치고, 비가 내려 물이라도 고이면 진흙탕이 되어 더욱 끔찍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UXer의 관점으로 본다면, 공원 설계자는 애초에 저 길에 보도를 깔거나, 새로 추가된 희망선을 정돈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도면에서 조금 벗어난들 어떠한가. 걷거나 공원 위에 딛고 선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인 것을.


이처럼 사용자가 스스로 개념적 모델을 수립하기위해 행한 모종의 노력은 일종의 희망선을 남긴다. 희망선은 그들의 노력과 적응,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UXer는 여기에서 적응하기 전의 불편함, 필요, 개선 방향의 힌트를 얻어갈 수 있다. 온갖 신호를 보내는 희망선을 이해하기 위해 시대를 거치며 정말 다양한 방법론이 개발되며 진화하고 있는데, 아래 문단을 제외하곤 방법론의 다양한 예시는 책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지금은 User Journey Map으로 더 정돈되어 사용되고 있는 방법론의 모체, Lynn Shostack (린 쇼스택)의 Expressive Service Blueprint도 이런 희망선을 이해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방법이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백스테이지에서 노력하는 Operator, 우리 같은 기디개 사람들의 접점까지 표현할 수 있는 장표로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고객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그 경험마다의 행복 지수는 얼마인지 체크하는 방법이다.


이는 앞선 브런치 글에서도 소개한 방법인데, 주니어 UXer가 당장의 서비스를 이해하고 실무에 뛰어들기 위해 그려볼 만한 방법론이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User journey map을 이용해 주니어 디자이너가 신규 서비스에 적응한 과정을 정리한 글

https://brunch.co.kr/@sunshl0203/9




나의 레슨런은,

고객과 내가 느끼는 '아 별론데, ' 지점이 다르다.

이전 글에서도, 다른 작가들도 한결같이 말하는 마법의 문장이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생각하자. '사용자'를 이해하자.


나는 좀 달리 비틀어, '디자이너'관점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이 문장이 뇌리에 박혔으면 하는 의도에서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이너적 관점은, 단순함의 극치를 칭송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직업적 신념과 욕망에 충실한 관점을 말한다. 앞서 말한 공원으로 다시 예시를 들자면 공원 설계자는 희망선을 다시 푸릇한 잔디로 밀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욕망.


일단 수동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세스를 자동화한다거나, 복잡한 화면에서 정보를 '가능한' 줄이려고 애쓰는 등의 '디자이너'적인 관성에서 벗어나자. 나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되새겨주고픈 말이기도 하다. 고객이 겪는 불편함은, 우리가 느끼는 '아 별론데' 지점과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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