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이 나를 움직였다. "편하게 환기하러 가는 거라 생각하라"는 말이 마지막 망설임을 지워냈을 때, 나는 떠나기로 다짐했다.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 그것이 전부였다. 계획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준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혼자 국경을 넘었다. 아이러니했다. 학창시절을 해외에서 보냈고, 출장으로 세계 곳곳을 누볐건만, 순전히 내 의지로만 떠나는 여행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이라는 안식처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 그런 내가 홀로 바다를 건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얼마전 넷플릭스 다큐에서 누군가 한 말도 떠올랐다. "Life starts at the end of your comfort zone."
후쿠오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장처럼 완결되어 있었다. 덥고 습한 날씨도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듯 했다. 거리를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민족은 질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들이구나. 건축물의 선 하나, 공원의 나무 배치 하나에도 절제된 미학이 스며 있었다. 퇴근길 사람들의 얼굴에서 개별적 감정은 지워져 있었지만, 그 무표정 자체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들의 틀에 갇힌 자유가 나에게는 오히려 해방감을 주었다. 정돈된 억압 속에서 나는 비로소 긴장을 푸는 사람인것 같다.
첫날 밤, 나는 오호리 공원에서 나카스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었다. 츄리닝에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나 자신을 어둠 속으로 던졌다. 놀라웠다. 낯선 곳에서 낯선 내가 되는 일이 이토록 자연스러울 줄이야. 그 누구도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고, 나 또한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완벽한 무관심의 교환.
연꽃잎이 떠 있는 습지를 지나고, 불빛이 새어나오는 작은 상가들을 지나고, 거대한 건물들을 지나며, 나는 천천히 이 도시의 호흡에 동조해갔다. 보행자 신호는 유난히 길었지만, 그 기다림조차 명상의 시간이 되었다. 다음 날 왼쪽 골반이 아파 대낮까지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나는 맛집을 찾지 않았고,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지도 않았다. 대구에서 습관처럼 기울이던 위스키가 이곳에서는 전혀 그리워지지 않았다.
책 한 권을 가져갔다. 양귀자의 모순. 내용이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절반쯤 읽고 멈췄다. 나는 맘에 들지 않는 책이라도 마지막 문장은 꼭 본다. 어떻게 마무리하는지에서 작가의 진심이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수도 반복된다. 그게 인생이다." 나의 이번 여행 테마가 바로 이 문장이었다. 나를 낯선 곳에 던져놓고, 시간이라는 거울 속에서 천천히 나를 탐구한 시간.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나였다. 내가 알고 있던 강함도, 내가 인정하고 있던 나약함도 그대로였다. 새로운 발견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여행은 때로 우리를 바꾸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누구인지를 더 선명하게 확인시켜줄 뿐이다. 후쿠오카에서 나는 변화가 아닌 확인을 얻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