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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Feb 19. 2021

프랑스 중산층 기준이 우리에게 의미 없는 이유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중산층의 삶이 되기를


몇 년 전쯤인가, 프랑스 중산층 기준이 어딘가에서 소개가 되며 큰 화제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모습과 비교하며 프랑스를 부러워하기도, 물질적인 기준이 큰 축을 이루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을 비판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중산층. 악기를 하나쯤은 다룰 수 있고, 외국어도 하나쯤 구사하며, 직접 참여하며 즐기는 스포츠가 하나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산층. 30평대 이상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중형차를 보유하고 1년에 한 번쯤은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들.


워라벨이 무너진 우리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비록 프랑스는 아닐지라도 유럽에서 살아보니 왜 중산층의 기준이 이렇게 형성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 읽었을 때 내 눈에 참 고상해 보이던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실은 그들의 수준에서는 너무 당연한 기준이었다.


EU의 교육은 오래전부터 모국어, 공용어인 영어 외에 1개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교육 정책을 고수해왔고, 수준 높은 외국어 실력을 요구하기보다는 일상 회화에 집중해 실용성을 높였다. 나라끼리의 국경의 문턱이 낮다 보니 외국어를 접할 기회가 많고, 이런 외국어들이 모국어와 비슷한 경우도 많아 외국어를 배우는 데 훨씬 수월하다. 영어의 경우 공교육을 마치면 누구나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하는데, 수준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비슷한 알파벳을 사용하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는 영어를 구사하는데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외국어 하나쯤 구사하는 것은 공교육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능력이다.


여름에는 수영을,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는 것이 일상인 게 유럽 사람들의 생활이다. 유럽 대부분의 직장이 여름휴가를 제법 길게 제공하고, 여름휴가철이 되면 사람들은 해변가로 몰려가 수영을 하고 햇볕을 쬐며 하루를 보낸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본인의 스키를 가지고 있는데, 겨울에 눈이 많이 온 날이면 가끔 길가에서 스키를 신고 걷는 듯 타는 듯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 역시 제 키만 한 스키를 신고 잘 돌아다닌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스포츠를 하나 직접 한다는 것 역시 어릴 적부터 이어온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 역시 공교육을 통해서 다양한 악기를 접해보고, 이들 중 좋아하는 악기를 택해 꾸준히 연주하는 것이 프랑스가 이야기하는 '악기를 하나쯤 다룰 수 있고'의 의미이다. 


스포츠나 음악이 전문가의 영역인 느낌이 강한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에서는 생활 체육, 음악이 주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스포츠나 음악은 일상을 즐기기 위한 여가의 도구인 것이다. 외국어 역시 우리나라처럼 수능이나 취직을 위해서 끊임없이 외우고 듣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비슷한 언어라는 이점을 가지고 공교육을 토대로 지식을 더한 '외국어 구사'이다. 그러니까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공교육을 거쳐 성인이 된 이들이라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사는 사람이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대로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우고 싶은 언어 인강 하나쯤은 끊어 일주일에 삼일쯤 공부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악기 연주 학원을 등록한 후 역시 일주일에 이틀쯤 연습을 해야 한다. 원하는 스포츠도 강습을 통해 습득해야 할 테니 주말이 되면 쉴 틈 없이 체육관이나 각종 관련 센터에 가 스포츠도 배워야 한다. 결국 중산층이 되기 위해 학교 수업 후, 혹은 업무 시간 후 외국어, 악기, 스포츠 공부를 추가로 해야 하는 일의 연장선이 되어버린다.


프랑스의 중산층이 엄청나게 우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모습이 뿌리부터 다를 뿐이다. 부러워할 것도,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대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칠 것도 없다. 만일 그 기준대로 살고 싶다면 실은 그냥 프랑스 이민을 택하는 것이 쉽고 빠른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이 문제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기준의 높낮이를 떠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모습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산층이란 무엇일까. 내가 이해한 중산층이라는 건 한 사회에서 중간은 한다는 뜻이다. 중간쯤 한다는 것.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도 사귀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과정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렇게 착실히 살아온 사람들의 삶. 


그래서 나는 중산층이란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부나 사회적 배경과는 관계없이 나라에서 모두에게 제공하는 공교육의 절차를 밟으며 성실히 살면 누구나 다 도달할 수 있는 삶의 모습.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처럼, 나라에서 제공하는 공교육을 마쳤더니 자연스럽게 살게 되는 그런 삶.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은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닿지 못할 삶의 모습이 되어 멀어지고 있다.


나는 정치인도 사회학자도 아니라서 갖은 정책에 대한 논의, 기준에 대한 논의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가 이런 '전문가'들의 손에 이끌려 언젠가 모두에게 열린 중산층의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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