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협력과 공진(供進)의 지역문화 지원을 기대한다.
'계주생면(契酒生面)'
계모임에서 마시는 술로 생색을 낸다는 뜻으로, 곗돈을 거둬 술을 사면서 마치 자기가 사는 것처럼 생색내는 것을 빗댄 것이다. 여러 사람의 것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생색냄을 이르는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가 문화정책 구현이라는 생색을 내며 지역 공모사업에 문체부는 낮은 매칭 비율로 지자체에는 높은 매칭 비율을 요구한다. 문체부 지역문화 공모사업의 '계주생면'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지자체는 지역문화진흥법의 이념인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고유한 사업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지자체 매칭비율을 높여 공모 선정에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든다. 지역 간 경쟁을 역이용한 문체부는 공모사업에 지역의 높은 매칭비율을 전제로 사업 실행을 요구한다. 50(정부):50(지자체) 매칭비율은 기본이다. 문화재청의 시설 지원 경우는 30:70 비율로 지자체의 매칭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공모사업이 선정되어도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지자체 내 사정과 재원 갈등 요소가 존재하여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역 간 문화사업의 ‘빈익빈 부익부’, ‘승자독식’ 등 불필요한 지역 간 경쟁만 부추긴다는 현장의 지적과 문제 제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기조에서 지역을 강조하고 있고 문체부도 지역 문화국을 만드는 등 정책의 변화가 눈에 띈다. 예산 확보 및 제도 정비도 일정 부분 보조를 맞추는 듯하다. 아쉬운 점은 공모 사업을 통한 지역 분배를 문체부는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지역의 문제를 중앙에서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국가주의적인 방식 역시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문체부 내 지역 문화국이 설치되었지만 사업의 방식은 여전히 각 국별로 산하기관을 만들어 각자 사업을 지역에 내리는 통로로 사용하거나 지역 공모사업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산하기관과 지역에는 자율성이 약해지며, 기관 간, 지역 간 경쟁이 심화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지역 문화현장에서는 그동안 ‘지역 간 줄 세우기 경쟁에서 협력과 공진(供進)의 지역문화 만들기’를 위해 끊임없이 정책 제안을 해왔다. 그 핵심은 지역 공모방식이 아닌 별도의 지역 포괄적 보조, 지역문화기금을 조성해 장기적인 비전 제시와 지역 맞춤형 지원정책들인 것이다. 지역문화정책의 근간인 지역문화 분권은 지역문화 예산 운영의 유연성 확보를 통한 효율적 사업 운영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 각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며, 격차 사회에 대한 빨간불이 켜졌다. 문화는 사회와 지역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문화가 지역 간 재정 격차와 경쟁으로 인해 양극화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문화기본법에 보장된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문체부의 지역문화정책 기조는 경쟁에서 공생과 협력의 지역문화 공진(供進)으로 변해야 한다. 국가의 지역 문화재정 확충과 지역의 재정운영 자율성 확보가 지역문화 진흥의 핵심 전제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국가 문화정책 사업을 지자체 위탁 시 예산운영의 자율성 제고를 위한 포괄적 보조 형식으로 교부 내지는 지역문화재단에 직접 출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지역문화진흥법 상의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에 관한 조항을 ‘할 수 있다’라는 임의규정에서 ‘해야 한다’의 강행규정으로 개정해야 한다. 문체부의 지역 간 경쟁을 부추기는 지역문화재단 대상의 직접 공모사업을 순차적으로 폐지하거나, 역으로 지역문화 공모사업의 지자체 대비 중앙정부 매칭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방안 역시 필요하다. 국가의 다른 정책은 몰라도 최소한 지역 문화정책과 사업은 지자체와 지역의 ‘계주생면’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