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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느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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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영 Jun 02. 2021

느림 육아를 아시나요?

​그 '때'를 기다리는 막막함이란.​

친한 언니랑 공부방을 운영해보려고 준비하다가 학습지 방문 교사가 회원관리나 상담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경험을 쌓고자 잠깐 일을 한 적이 있다. 중고등 과외 경험은 있었지만, 돌쟁이 아기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를 가르쳐 보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유아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말도 못 하는 아기들을 가르치고, 오분도 앉아 있기 힘든 아이들에게 한글과 독서 수업을 한다는 건 정말 열심히 하겠단 각오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연령별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똑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각각의 아이들의 수준과 진도에 맞춰 하다 보니 그중에서도 유독 빠르거나 느린 아이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엄마들과 상담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배움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충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많이 느린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학습지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엄마는 아이의 부족함을 채워주고자 항상 고민을 한다. "어머니, 아이에게 언어발달 잘할 수 있도록 계속 자극을 주고 있으니 이게 쌓이면 하나씩 표현을 시작할 거예요. 지금은 느려 보이더라도 곧 또래와 비슷해질 테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말이 그렇게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다시 날아올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결혼 후, 난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는 어느덧 41개월 하고도 2일째가 되었다. 다른 아기들과 비슷하게 엄마 아빠를 말하고 옹알이도 열심히 했지만 아직까지 말문이 트이지 않아 말을 잘하지 못한다.    



엄마, 아빠, 이거, 차, 밥, 띠까(이불), 따따(새), 떼떼(음악), 띠띠(돼지), 띵동(집이나 문), 안녕?

        


위의 단어들은 우리 아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이거이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던 시절에 '안녕'과 애착이불 '띠까'를 말했을 땐 얼마나 기쁘던지! 걸음마도 16개월 즈음에 시작하다 보니 어린이집에서 기어 다니다가 걷는 성장과정을 모두가 지켜보았다. 그래도 그땐 첫 기다림이라 그런지 그렇게 조급하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느려도 괜찮아. 다 때 되면 하게 되어있어."


이건 육아 중인 모든 부모들은 아마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한 번씩 듣거나 말하게 되는 마법 주문과도 같은 말이다. 이 말 하나로 아이의 느림을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그때를 위해 다들 노력한다. 그러나 이 기약 없는 약속이 길어지면 주변에서 걱정의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발달이 느린데 어디 아프거나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이 말을 다른 이에게 듣기 전에 부모는. 특히 엄마는 자신에게 수도 없이 질문한다.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을까?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

또래 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번 느림이 문제로 보이기 시작하면 그땐 걷잡을 수가 없다. 얼른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는 '그때'가 오지 않는 아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아이와 함께 7개월 동안 집에 있으면서 나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발달 관련 상담을 받으러 서울까지 다녀왔다. 비싼 상담비와 아이 발달을 위한 교재도 구입하고 나름 노력이란 걸 해보았다. 상담받았을 때 그 자리에서 울진 않았지만 집에 와서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얼마나 숨죽여 울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미안해.너한테 더 잘했어야 했는데. 부족한 엄마 만나서 우리 아들 고생시키고.' 쓰면서도 그때의 감정이 울컥울컥 올라와서 아직도 눈물이 난다. 다들 비슷하게 자란다고 생각했는데 왜 우리에겐 이렇게 어려운 걸까? 아니, 엄마가 다 잘못해서 그래. 아들아 미안해. 그렇게 느린 아이의 엄마는 '쏘리 맘'이 된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셨던 말이 지금은 어떤 맘으로 하신 건지 날마다 배우고 깨닫는 중이다.


"엄마는 이제 그때가 지금이란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 걸어 움직이는 게 바로 그때라는 걸 알게 됐어!"

대부분 상담 내용이 맞는 부분도 있지만, 부모의 불안함과 아이의 늦음을 단순히 돈벌이로 이용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지 않다.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아이의 미래를 저울질하며 돈 쓰는 만큼, 아이에게만 모든 걸 집중하는 만큼 달라진다고 말한다. 당연히 그 말도 맞는 말이다.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여 하는 일에 효과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테니깐.


그러나 우리 아이의 늦음은 자폐 경계선상에서 심각함을 논할 만큼은 아니었고, 단순히 말만 느릴 뿐 말을 이해하는 것에 느림이 아니었다. 그리고 독박 육아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쳤던 나는 육아 문제를 아이의 느림에서 찾고자 했다. 그런데 단 일주일! 아이 낳고 25개월 만에 처음으로 일주일을 친정에서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 나는 코로나로 인해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며 보냈던 시간에 대해 힐링을 했다. 그 시간이 우리 모자를 살렸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아이의 느림에 대해 조금 더 편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그 안정감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쳐서 더 이상 아이와 매일 부대끼지 않게 되었다. 조급해하지도, 문제로 바라보게 되지 않으니 아이는 여전히 느리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차로 등원하는 길에 창밖에 새집을 보고 "저기 좀 봐. 나무 위에 새집이 있네." 하니 아이가 그걸 듣고 "따따띵동"이라고 말을 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 그러다 아들에게 따따는 새이고 띵동은 집인데 새집을 그렇게 자기식으로 표현한 거구나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원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아들은 나무 위를 가리키며 "따따띵동"이라고 반가워했다. 비록 새집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진 못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아이가 최선을 다해 표현하는 지금이! 우리에게 바로 그'때'이다. 남들보단 느리다 하더라도 우리 아들은 방금 전 자신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 나갔다. 또래 아이들 만큼 말하는 도착지에서 얼마나 빨리 도착할지 기다리는 기다림은 이제 우리 모자에게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자기 속도대로 매 순간 도착하는 그 감동이 지금 우리에겐 있다. 결승선만 바라보는 기다림의 막막함에서 이제는 한 발자국 더 내딛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막막함을 즐길 때이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느려도 가고 있는 우리는 거북이 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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