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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서 Oct 04. 2022

반대를 찾아다니는 피곤한 삶에 대해서


    일상에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클수록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하고만 만나게 된다. 서로 부딪힐 일 없는 사람들, 나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나와 취향이 겹치는 사람들, 싫어하는 것도 비슷한 오랜 인연들과 만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내 엉덩이 모양으로 꺼진 낡은 소파에서 안락함을 찾듯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기운다. 


    하지만 늘 그런 사람들과 지낼 순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을 땐 그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나의 에너지를 쏟기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한 검증이 여러 차례 진행된다. 마치 면접에서 따지는 조직 문화 적합성 테스트처럼 말이다. 

(필수 요건)
- 스스로 자립해서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
- 자만심이 넘쳐 타인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 사람
-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
-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
- 도덕적인 판단 기준이 나와 비슷한 사람
- 나와 유사한 사회/정치관을 가진 사람

    마음속으로 진행되는 촘촘한 테스트를 거쳐 사귀어 볼 만하다고 생각이 되면, 그제야 적극적인 사교 활동을 재개한다. 나의 한 줌 사교 에너지를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사실 엄밀한 의미의 '새로운' 사람은 아니다. 외형만 새로운 사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익숙하고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에 둘러 쌓여 있으면, 마음과 몸이 모두 안락하고 행복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욕구가 도통 생기지 않았다. 여기서 만족하면 좋았을 텐데... 어느 순간, 스스로 구축한 고요한 안정에서부터 스스로 소요를 일으켰다. 


    내 생각이 정말 맞을까? (내 친구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 친구들을 고개를 젓는다)


    고루한 사람이 되는 시작점에 서있다는 싶은 불안이 덜컥 든다. 새로움 일체를 피곤하게 느끼며 아예 '포기'해버린 건 아닐까 염려된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책과 영화, 콘텐츠도 좋은 선택이지만, 결국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나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대체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 근거가 되어주는 또 하나의 사례를 수집하는 정도에 그쳤다. 아니면 근소한 확장이던가. 나의 세상이 가장 빠르게 넓어졌을 때를 돌이켜보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는 타인을 만났을 때였다. 


    돈만 모이면 일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던 사람, 여태껏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똑똑하지만 가장 인성이 더러웠던 사람, 인생의 진로를 세 번쯤 바꾸고 또 바꾸려고 고민하던 사람(석사 학위가 4개였다), 과학자면서 동시에 비과학적인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 결혼하지 않고도 행복한 사람,  그 반대의 경우도. 이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마다 어떤 방식이든 분명히 삶의 진로가 크게 수정되었다. 이런저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읽는 것보다 실제로 구현된 삶의 형태를 마주하면 훨씬 강한 충격으로 내 '평균'적인 삶의 방식의 범주가 확장되거나 이동했다. 피해 가든 따라가든 말이다.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세상과 접선 시도하려 할 때, 그 시작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였다. 나의 깐깐한 테스트를 전혀 거치지 않은 '다른 사람'들 말이다. 



  

    작년부터 독서 모임이나 토론 모임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접근성이 좋은 시작점이었다. 예상보단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MBTI가 모두 xNxx 였다.) 사람들이었고 또 많은 부분에서 차이도 있었다. 보편적인 인생의 궤적을 따르지 않은 사람이나 본인의 삶 자체로 실험적인 행위 예술을 하는 예술가가 혼재한 그룹에서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새롭고 흥미로운 기분에 고양됐다. 하지만 나와 대척점에 있는 의견을 실재하는 인간의 입으로 듣고 있는 시간이 괴롭고 화나는 순간도 있었다.

 

    그 시간들이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해서 반박을 당하리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주장들을 다시 검토하는 시간들도, 그리고 반박에 반박을 위해 근거들이 타당한지 찾아보는 시간들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태껏 믿고 따르던 기준 자체가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 더 필요했다. 달라지기 위해 시작한 모임인데, 달라지지 않기 위해 되려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어불성설로 느껴졌다.


    친구들은 굳이 왜 그렇게 하느냐 되물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하기에도 부족한 인생이지 않느냐는 반문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게... 나는 왜?




    자아실현의 형태가 다른 방향으로 새로워지는 것이어야 할까. 현재의 내가 바람직하다고 믿는 방향으로 더 깊게 연마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통 연락을 하는 시간도 없다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저 사람 왜 저래?'의 '저 사람'과 만나러 가는 길엔 스스로가 의아하다. 최근에 모임 참여 목적을 모임에 막 가입한 사람에게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제 말에 반박해줄 사람이 필요해요.(웃음)"


    하지만 마음속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내 말이 맞다는 걸 기필코 증명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아.'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왜 누가 내 말에 반박해주길 바라나.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날엔 하루 종일, '아... 이렇게 저렇게 말했어야 했는데'하며 미쳐 그땐 생각나지 않았던 답변을 닳도록 곱씹으면서 말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설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직접 만나 사교하는 자리가 주는 힘은 평소보다 내 마음을 더 열어주는 데 있다. 길든 짧든 현재의 '나'와 나의 '이야기'를 만든 각기 다른 기승전결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를 바탕으로 내뱉는 말은 좀 더 원만하게 다가온다. 다름 그 자체로 끄덕거릴 수 있는 부분이 넓어진다.


    나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듣는 긍정보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반대(헛소리라 할지라도)로 기존의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반증을 이겨낸 주장은 더 큰 힘을 얻는다. 이겨내기 위한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느낌적인 느낌으로 대충 옳다고 생각한 일에 근거를 찾아가는 과정은 필요했다.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는 날은 누군가 우리 집에 방문하는 날이다. 마음을 열고 낯선 사람을 들여보내 주기 위한 정리 정돈인 셈이다. 


    때로는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내가 하던 비슷한 말을 타인의 입에서 듣는 일은 놀랍다. 청자의 입장이 되니 화자가 혼자 스스로의 얘기에 도취된 모습이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와 내가 저렇게 뜬구름 잡는 방구석 철학자처럼 얘기했단 말이야? 그것도 내 얘기에 전혀 관심 없는 친구들 한 테? 술에 취해 재미도 없고 조리도 없이 아는 모든 말을 배설하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깊은 반성의 시간이다...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싶은 마음의 기저엔 나에 대한 확신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단단한 뿌리 박힌 나무라면, 옆에 나무가 자라든 땅이 패이든, 또 폭풍이 불든 그 자리에 분명히 서서 다른 세상을 굽어보지 그를 따라가거나 멀어지고 싶지 않을 테다. 줄기의 직경을 차근차근 키워가고, 더 많은 잎을 내는데 총력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맞다! 고 말하기 어려워 부표처럼 떠다닌다. 


    코코넛의 씨앗이 발아하기 위한 조건은 코코넛 안에 있는 코코넛 워터가 더 이상 출렁거리지 않을 때란다. 아직 나는 나를 키워낼 토양을 찾기 위해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만 같다. 확신을 키워낼 토양을 만날 때까지 말이다. 내가 떠돌고 있는 공간이 작다고 느껴질 때마다 새로운 물줄기를 향해 몸을 던지고픈 충동이 든다. 

    

     언제 나는 깊어지지? 넓어지는 걸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순간이 잦아진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다 알고자 하는 건 욕심인데, 어디까지가 적절한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과도한 에너지 낭비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평생 이렇게 넓고 얕게만 살다 죽어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 모르겠다. 근데 뭐, 더 많이 아는 건 늘 재밌으니까. 계속 반대 방향으로도, 오른쪽으로, 좌로도 가본다. 평생 이렇더라도 어쩌겠어. 이렇게 태어난걸.




사진 출처 : https://kr.freepik.com/free-photo/_29174687.htm#query=floating&position=49&from_view=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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