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마거릿 미드에 따르면 문명의 시작은 바로 골절상을 이겨내고 붙은 다리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만약 그 다리뼈를 부순 게 같은 인간이라면 그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종의 기원을 추천으로 집어 들면서 순진한 생각을 했다. 또 한 명의 악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구나. 만발한 히어로 서사의 반동이라도 되듯 작가들의 손에서 안티-히어로라는 말이 나왔다. 물론 대척점은 빌런. 즉, 악당이다. 그렇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안티-히어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한유진은 빌런인가, 안티-히어로인가.
이게 무슨 말입니까? 당연히 그놈은 악당이죠.
대답해 보세요. 한 번이라도 한유진의 입장에서 동정심을 느낀 적이 없나요?
<종의 기원>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바로 모든 서사가 한유진의 시야에서 작성되었다는 사실이다. 1인칭 소설. 독자가 빠져들기에 적격이며 동정표를 주기도 쉽다. 얽힌 실타래가 풀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유진의 사고가 되어 짧고도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치우친 의견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 그렇지. 그런 감정이 들 만해.
낮은 공감 능력과 죄악을 놀이와 동일시하는 등 일반인의 생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서술이 나올 즈음 우리는 정유정 작가의 필력을 실감한다. 책이 서술한 대로 그는 타인을 섭취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는 종종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사고에 튕겨 나오게 된다. 섬뜩한 위장술이다. 마치 결말과 같이. 야생에서 피식자로 위장해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놀라울 정도로 차분히 제 흔적을 지우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 냉정에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한 발짝 뒤에서 보면 그는 버둥거리는 26살의 청년일 뿐이다. 그가 하는 놀이는 빛 아래 서기를 두려워하는 악인의 꼴사나움을 보여준다. 비열한 추적으로 쾌락을 얻는 그는 동정표가 아까운 치졸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특히나 그의 육탄전이 노리는 희생자가 약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결국, 이 책은 범죄자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일종의 보고서인 셈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나의 관심사는 단 하나였다. 인간의 내면에서 악은 어떻게 발화하고 탄생하는가.' 제목을 생각해 보면 이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종의 기원. 진화. 한유진의 이야기는 프레데터라는 종의 기원이자 악의 진화에 대한 서사다. 제목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건 유명한 저서에 빗대어 생각하건 나름의 이유가 나온다. 제목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던 작가의 말이 이해된다.
권선징악은 예로부터 많은 창작의 종착점이었다. 정유정 작가의 종착지는 다르다. 악인이라면 으레 겪을 철퇴를 받지 않는다. 어쭙잖게 회개하지도 않는다. 한유진의 결말은 작품들 사이에서 본연의 악을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