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하일
외국인 등록증에 지문도 찍을 수 없는
나는 한센병 환자 지문 없는 한센병 환자
눈멀자, 더 절실해진
애초부터 없던 지문
침이겠지 핥았는데 누군가 소리치네
"이 봐요 피나요, 혀끝에서 피가 나요"
잃었던 내 나라 언어
목차 겨우 읽었는데
가족을 지웠으니 이젠 네 차례라는 듯
말소리 발소리를 자꾸 지우는 구리오
언제나 지는 전쟁을
혼자서 버텨내지
차별의 골 깊디깊은 조센징 문둥이
혼자서 부른 노래 지울수록 되살아나
온몸이 울림통임을
당신네들, 몰랐구나
김하일은 재일조선인 1세 시인이다. 1926년 태어나, 먼저 일본에 건너온 아버지를 찾아 1939년에 도일했다. 1941년 한센병이 발병해 국립요양소에 수용되었다. 그는 군마현의 구리오 요양원에 격리되어 고독한 삶을 살았다.
외국인으로 간주된 재일조선인은 국민연금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같은 요양소에 있으면서도 음식에서조차 일본인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
김하일은 실명을 하자 혀로 점자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센병으로 손가락 끝의 감각을 잃어버렸으며, 결국엔 그 손가락조차 잃어버리자 감각이 남아 있는 혀끝으로 글을 읽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이라는 것, 한센병 환자라는 것 때문에 이중의 차별을 받았다. 국가에 의해 이유 없는 강제격리를 당했으며, 가족과 형제를 빼앗기고, 조선말을 빼앗기고, 시력을 잃고, 손가락까지 잃었다.(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발췌)
디아스포라 문학을 공부하며 김하일 시인을 알게 되었다. 혀끝으로 점자를 익혀 글을 읽고 시를 썼던 시인의 생애를 생각하면 평범한 일상이 한없이 미안해진다.
그를 기억해 주는 일, 겨우 그 일밖에 할 수 없다. "점자역의 내 나라 조선의 민족사를 오늘도 혀끝이 뜨거워질 때까지 읽었다"는 그의 전언은 축축하면서 뜨겁다. 여전히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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