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읽었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 수상 소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을 때 사서 읽고 오래 책장 속에서 잠자고 있던 책이었다. 중간중간 줄을 그은 부분이 이 책을 읽었음을 증명할 뿐 전체적인 스토리는 기억에서 휘발되고, 강렬했던 몇몇 이미지만 남아 이 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 편의 이야기는 따로, 또 같이 연결된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남편 ‘나’는 직접적인 화자로 등장한다. 사랑이라는 이상에 함몰되지도 않고,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규정한 의무에서도 쉽게 이탈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안위가 가장 우선적이다.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 편안했다.”는 것이 영혜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에게는 자신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결혼의 전제 조건이었고, 영혜가 더 이상 그것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영혜를 버릴 수 있었다.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안위에 충실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인간이다.
‘몽고반점’은 3인칭 그가 등장한다. 그는 세 번째 이야기 ‘나무 불꽃’에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이며, 영혜의 형부다. 그는 사회적 제도나 법, 도덕 윤리적 잣대보다 예술가로서의 표현 욕구가 더 강렬했던 인물이다. 그는 아내 덕분에 비교적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되지만, 문명의 겉껍데기만을 핥고 있는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자신의 작업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게 되고, 아내로부터 영혜의 몽고반점 이야기를 들은 후, 그의 욕망은 이성과 윤리와 도덕의 잣대를 넘어설 만큼 강렬하게 분출된다.
‘나무 불꽃’은 3인칭 그녀의 이야기다. 그녀는 영혜의 언니이며, ‘몽고반점’에서 그의 아내다. 영혜와 남편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한 이후 남편은 그녀를 떠났고, 현실에 대한 모든 욕망을 놓아버린 영혜와 여섯 살 아들을 돌봐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채 살아간다. 그녀는 영혜가 입원한 병원의 간호사가 보호자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이름(김인혜)으로 불리어질 뿐 익명의 그녀로 살아간다.
영혜는 세 편의 이야기에 걸쳐져 있다. 그녀로 인해 남편의 속물성이 드러나고,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표현 욕구에 시달리는 그의 심연의 욕망이 드러난다. 영혜로 인해, 현실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그녀(인혜)의 운명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는 것으로, 폭력에 대한 자신의 저항을 드러낸다. 그녀의 저항 이면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한 폭력과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개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저항이 깔려있다. 이는 강자의 지배원리가 정당화되는 사회에 대한 저항도 담고 있다. 아버지는 강자들의 표상이다. 이는 인간의 질서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과, 동물이 인간의 먹는 행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현대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해 볼 수 있다. 그녀가 나무가 되고 싶은 하는 이유는 인간이 구축해 놓은 문명 이전, 인간중심주의, 가부장적 제도가 뿌리깊이 내리기 이전의 삶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는 생명에 대한 원초적인 본능만이 존재하는 곳으로의 회귀를 영혜는 꿈꾸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자신을 삶을 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영혜가 왜 육식을 거부하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쉽게 ‘채식주의자’로 진단하고 판단할 뿐이다. 그들은 영혜에게 육식을 강요한다. 그것은 영혜의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지인데도 말이다. 육식의 강요는 그들이 구축해 놓은 세계에 영혜 역시 편입되어야 한다는 강제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들은 보편화된 다수들이고 때문에 그들은 강자들이다. 먹는 행위는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위로 작동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강자이고, 강자의 논리가 곧 법이고 진리인 것이다. 아버지의 행위는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는 것으로 강자의 지배 논리에 저항했다. 그는 사회적인 법이나 관습, 도덕이나 윤리 의식을 넘어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다는 예술가 본연의 욕망에 충실했다. 나(영혜의 남편) 역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쉽게 깨트리는,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이 책에서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인물은 그녀(김인혜)다. 그녀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내야 했으며 그 가운데서 가족을 지켜야 했고, 남편이 떠난 후에도 아들과 동생(영혜)의 보호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한 번도 욕망하는 존재로 살아보지 못했다.
나, 그, 그녀, 영혜 그들은 고유명사들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보통 명사다. 때로는 나이고 때로는 타인인 채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한강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누군가의 삶에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판단하고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모든 현상을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우리들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지는 않을까.
저마다의 삶은 저마다의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된다. 세상은 나와 너의 삶, 그와 그녀의 삶이 엉켜있는 곳이다. 그 욕망의 꿈틀거림으로 세상은 흘러간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