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뉴욕인 에세이
라떼라는 단어를 재작년에 남자 친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회사에 들어온 후배의 답답함을 나열하는 나에게, "라떼인데?"라며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내가 이 후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면, 남자 친구는 내게 꼰대 기질이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난 변함없이 그 후배의 마음가짐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 후배를 완벽한 예로 삼아 같이 일하기 힘든 타입을 서술해 보겠다.
때는 재작년 여름, 우리 팀에 신입 사원 하나가 들어왔다. 이름을 애론으로 칭하겠다. 바로 내 옆자리에 "Assistant"라는 타이틀로 들어왔는데, 텍사스에서 디자이너라는 꿈을 가지고 뉴욕에 와 당장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리 회사 스토어로 가서 영업 사원으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스토어에 내 보스가 물건들 체크하려고 들렸는데, 내 보스가 높은 직위에 있는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고 어필을 한 것을 계기로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디자인 학력도 경력도 없는 애론이 취직된 것부터가 미스터리였지만, 인터뷰 때 보여준 공을 많이 들인 포트폴리오가 뽑힌 이유라고 했다. 그러려니 하며 처음 왔으니 잘 도와주려고 한 나의 노력은 얼마 가지 않아 헛수고인 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보고하는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같이 일하는 우리 팀의 성격 상, 하루는 애론의 보스가, 하루는 내가 프로젝트를 내줬다. 아무래도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이 전무한 그는 모르는 부분들이 많아 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곤 했었는데, 내가 나이스 하게 이건 이거다 이렇게 하면 더 빨리 할 거다 알려주면 방어적 혹은 공격적으로 반응 하기 시작했다. 영어로는 passive aggressive라고 라는데 한국 사전에 쳐보니 "수동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는"이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본인보다 3살이 어린 나에게 배우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 건지, 아니면 자기의 부족함을 들키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비교적 만만해 보이는 내 레벨에 라이벌 의식을 느껴서 그런 것인지,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옆사람한테 배우는 게 싫으면 일이나 잘하던가, 일을 하나를 주면 하루 온종일 걸리기 일쑤였다. 손도 느리고 일처리도 느린 그가 처음엔 아무리 passive aggressive 하게 굴어도 나는 바다와도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려 했다. 사실 나는 특히 초반에는 실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어디서든 "시작"하지 않았겠는가? 우리 모두 처음에는 어설펐고, 못했고, 속도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책임감 있는 마음으로 일을 마무리하려 노력하다 보면 실력도 느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그의 무능함을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허나 애론은 치명적인 허점이 있었는데,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work life balance가 보장되는 우리 회사도 미팅 전날이면 팀 전체가 늦게까지 남아 일을 마감하곤 했다. 그해 여름 어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 모두 야근할 생각으로 저녁을 시키기로 했는데 갑자기 본인은 교회를 가야 한다고 5:30 pm 쯤에는 가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날은 주중이었고, 우리 회사 퇴근 시간은 6pm이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가야 한다는 데 보내주었다. 그럼 당연히 내일 아침에는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 본인이 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완수하겠거니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나, 그다음 날 아침에 일찍은 웬걸 9:30am이 출근시간인데 9:40 am 쯤 설렁설렁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교회를 다니는 입장으로서 주중에 교회 간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혹은 아침에 10분 늦에 들어오는 것이 죽을죄라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임하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애론이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었다면, 그 전날 교회를 조금 늦게 가는 한이 있어도 팀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않기 위해 하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갔을 것이다. 아니라면 그 다음날 아침 7am에 먼저 출근해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둘 중 하나의 옵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나와 그의 보스가 마무리 지어 미팅에 들어가야 했다.
이렇게 책임감 없는 팀원은 팀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닌 방해가 된다. 늦은 출근 그리고 이른 퇴근은 애론의 일상이었다.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정말 이해 안 가는 부분이다. 나는 내 첫 직장에서 누가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준비가 안 돼있는 게 싫어 내 보스보다 무조건 1시간 일찍 출근했다. 제일 먼저 오피스에 들어와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을 때, 차 한잔 마시며 새벽에 중국이랑 이태리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천천히 하나하나 읽어놔야 보스가 들어올 때쯤 나 자신이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느껴졌다. 낮에는 이메일을 여유롭게 읽을 시간도 부족했을뿐더러, 저녁까지 계속된 미팅들 때문에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에는 몇십 개가 쌓이는 게 태반이었다. 보스 성격이 거지 같고 VP의 히스테리가 끔찍했는데도 단 하루도 출근 시간에 늦지 않았는데, 처음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정도 마음가짐은 필수 조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애론은 남들이 말하는 데에 끼기를 좋아했다. 미국인의 특성상 저 멀리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고 있어도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 역시 미국 오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친하지 않아도 대화에 끼는 것이 익숙해졌는데, 회사에서도 친화력이 있으면 플러스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물론 본인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전제 조건 후에 말이다. 애론은 위에서 거론했지만, 일의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그래서 나중 가서는 그에게 프로젝트를 내주느니 내가 다 하는 편이 나았다. 아무것도 안 주기엔 뭐해서 그의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들을 내줬는데, 고작 그거 하는데도 몇 시간을 잡아먹더라. 사람이 못해도 열심을 다하면 이뻐 보일 텐데 애론은 그 반대였다. 못하면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할 것이지, 저기 저 다른 팀에서 이야기하는 데 굳이 그 대화에 또 끼어서 수다를 하더라. 와 정말 개념을 어디다가 뒀나 싶었다. 이쯤이었다. 내가 진지하게 보스한테 가서 애론은 더 이상 킵하면 안 될 거 같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말이다.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난 모두 다 행복하기 바란다. 모두 다 마음 편이 일하기 바라고 직업에서 잘리지 않길 바라지만, 애론 같이 책임감 없이 남들한테 보이는데만 신경 쓰는 종자는 인생의 레슨을 한 번은 깨우쳐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남들한테만 보이는데만 신경을 어떻게 썼냐고 물어보신다면... 애론은 본인 나름대로 패셔니스타였다. 아침 늦게 설렁설렁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지 패션은 신경 쓴다고 썼는데, 꼴불견이었다. 하루는 위에서 아래까지 하얀색 쫙 달라붙는 옷을 입었는데 멀리서 보면 간호사인 줄 알았다. 본인 멋에 심취해서 주위 팀 여자들이랑 수다하는 걸 좋아했는데, 게이들이 판 치는 사내에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몇 달간 행복했을 것이다.
결국 6개월 만에 해고를 당했다. 6개월이나 킵 한 게 아이러니했지만, 큰 회사이니 만큼 자를 때 고소당할까 절차를 취하다 보니 꽤나 오래 걸렸다. 나의 건의 때문에만 잘린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한 명이 느끼면 다른 사람들도 느끼기 마련이다.
회사에 내 한 몸 바쳐 일하기엔 현실은 능력 보단 나이나 경력 그리고 정치질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나 역시 깨달아, 돈 주는 만큼만 일하려 한다. 그러나 말 그대도 돈 주는 만큼은 일하려 해서, 일을 하기로 돼있는 한 내 맡은 바 임무는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