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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병 Dec 09. 2020

[축구 좋아하는 여자가 살아가는 법 #2]

#2. 운동장을 뛰어다니다가.

천방지축 말괄량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정말 말 그대로 말괄량이 었다. 높은 곳은 일단 오르고 보고,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등교하고,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공을 가지고 미친 듯이 뛰어놀고, 맨날 남자아이들과 싸우는. 그 왜 90년대생 여자애들 중에 운동 좋아하고 겁 없이 활발하면 한 번씩 가져봤던 별명 있지 않나. '조폭 마누라'(조폭이면 조폭이지 마누라는 왜 붙였을까?) 그게 나였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또래 여자 아이들에 비해 운동신경이 좋았다. 특히 킥이! 롱킥, 파워슈팅(발야구를 하면 내가 있는 팀이 항상 이겼다.) 남자애들도 그런 나를 늘 운동장에 불러줬다. 초등학교 축구장에서는 멀리 차고 세게 차면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줬다. 그래서 체육시간에 여학생들은 피구를 하라고 하는 선생님이 너무 미웠다. 나도 온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열심히 공을 찰 수 있는데. 체육시간에는 늘 남자아이들에게 운동장을 내어줘야 했지만 내가 공을 찰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든 열심히 찼다. 그냥 그게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본격적으로 내가 축구를 배우게 된다. 전국 사회복지 협회는 매년 축구대회를 했었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그 대회에 처음으로 여자 축구 종목이 생겼다. 그런데 내가 축구를 왜 했냐고?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인가. 축구를 정말 좋아하면서 오지랖도 넓은 사람. 매년 아빠는 전라북도 대표로 팀을 모집했으며, 감독직을 수행했다. 그런데 여자 축구는 첫 시행이다 보니 전라북도에 있는 모든 시설에서 여학생들을 데리고 와도 인원이 부족했다. 그렇다. 킥이 좋았던 나는 대회를 치러야 하는 아빠한테 좋은 카드였던 것.


"잼병아, 너 축구대회 한 번 나가볼래?"


예? 뭐라고요 아버지? 저는 그냥 공을 뻥뻥 찰 줄 밖에 모르는데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당시에 나는 내가 공을 좀 잘 차는 줄 알았다.(코쓱)


"응! 나 해볼래! 우승하면 되는 거지?"


라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당차게 말했던 만 11세의 잼병. 그렇게 나는 아빠의 감독 하에 전라북도 아동복지시설 아이들과 함께 대회를 나가게 됐다. 무려 전국대회! 그때부터 잼병이의 좌충우돌 험난한 축구 인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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