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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병 Jan 16. 2021

[축구 좋아하는 여자가 살아가는 법 #5]

#5. 대회 당일에 알게 된 나의 진가

13살의 김잼병은 '잼병이 꺼'라고 새겨진 유니폼, 축구화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꼭 우승을 해서 메달과 트로피에도 '잼병이 꺼'라는 각인을 새기고 말 것이라는 각오와 함께.


대회는 충남 부여군에서 2박 3일간 진행됐다. 대회에는 총 12개의 팀이 참여했으며 경기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대회 전 날에도 우리는 훈련을 했다. 다음날 경기가 있을 운동장에서 "뛰어~! 뛰어~! 열심히~ 뛰어~!"라는 타령 비슷한 구령을 외치며 운동장 5바퀴를 돌았다. 기선제압이었을까? 다른 팀들도 같은 시간에 옆 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어서인지 구령을 외치는 목소리가 다른 날보다 3배쯤 컸다. 그렇게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설렘 반 두려움 반의 이상하고 몽실몽실한 기분을 안고 잠에 들었다.


드디어 대회 당일, 215 사이즈의 손바닥 만한 축구화에 발을 욱여넣고 전쟁에 나가는 장군처럼 비장하게 끈을 묶었다. 우리의 첫 상대는 12개 팀 중에서 최강이라고 꼽히는 서울이었다. 나는 같은 또래의 서울 사람을 잔디밭 위에서 처음 봤고, 그들은 시골 촌년에게 꽤나 위협적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인지 기본적으로 신장이 10cm 이상 차이가 났다. 기선을 제압하는 압도적인 피지컬. 성장기의 아이들은 각자의 성장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지만, 왜 서울애들만 빨리 성장한 것일까?(아마도 인구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큰 애들이 더 많았겠지) 이미 전부터 '서울은 강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고 보니 대진표를 뽑은 아빠가 더욱 야속했다.


삑-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듯 경기는 시작됐다. 나는 선발로 경기에 나섰고, 나의 포지션은 왼쪽 공격수(LWF)였다. 왜냐하면 나는 왼발 킥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왼쪽 윙어에게 중요한 것은 킥 능력이 아니었다. "잼병아! 잼병아! 뭐해! 뛰어야지!" 경기 중 사이드 라인 바깥쪽에서 감독님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라, 이상하다? 나는 열심히 뛰었는데? 공이 왜 이렇게 빠른 거야?'


그렇다. 나는 달리기가 느렸던 것이다.


그걸 왜 이제야 알았냐고? 아니 나는 진짜로 내가 느린 편인지 몰랐다고! 학교에서 계주를 할 때도 제일 빠른 건 아니었지만 중간은 갔단 말이다. 그런데 이걸 경기 당일에 알게 되다니. 이건 나의 능력 부족도 맞지만 감독님과 코치님의 직무유기다. 결국 달리기가 느려 슬픈 잼병이는 전반전 이후 교체가 되었다. 세상 무기력하게 앉아서 경기를 쳐다보고 있으니 "에라~ 달리리가 그렇게 느려서 공도 몇 번 못 건드려봤냐~ 하하하"하는 엄마의 조롱이 내 귀를 때렸다.


그렇게 팀의 에이스(라고 아직까지 믿고 있다.)였던 내가 경기에서 빠지니 경기는 당연히 졌고, 우리의 대회는 첫 경기가 마지막 경기가 되어 끝이 났다. 우리의 상대였던 서울은 모든 팀을 다 이기고 우승을 했다. 그래, 우리가 약한 게 아니라 서울이 너무 막강했던 것이다.


이건 나중에 듣게 된 얘긴데, 달리기가 매우 느린 나의 모습을 보고 감독님이었던 우리 아빠에게 사람들이 "쟤는 누구냐?"라고 물어봤는데 아빠는 모른 척했다고 한다.


아니 아부지, 아부지가 뽑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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