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잼병 Feb 05. 2021

[축구 좋아하는 여자가 살아가는 법 #6]

#6. 내가 남자였더라면

공놀이를 그렇게 좋아하던 여자아이는 어쩔 수 없이 축구와의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여중, 여고에 진학하게 된 것. 아마 축구를 좋아하던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 이후 선수의 길로 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공과 멀어지게 됐을 것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나의 경우에는 90% 타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다니던 여자 중학교의 운동장은 잔디가 무럭무럭 자라나 있었고, 듬성듬성 웅덩이가 있어 비가 오면 물이 고였다. 충격적인 건 운동장에 축구 골대 조차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어려서부터 여성을 운동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사회 때문인지 점심시간에 공을 들고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같이 축구를 할 친구가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축구공을 집 신발장에 처박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불쌍하기도 하지.


내가 중학생일 당시는 2010년 U-17 여자 대표팀이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던 때이다. 그때 나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던 여민지, 지소연 선수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선수가 될 수 없었다. 아빠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하니 시켜보려고 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끝끝내 말렸다. 이유는 이렇다. "여자애가 무슨 축구냐. 공부나 해라." 물론 나도 솔직히 여민지, 지소연 선수처럼 될 수 있다는 자신이 없어서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나름 용기 내서 "엄마, 나 축구선수해볼래!"라고 했지만 엄마를 설득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엄마는 달리기가 느린 내가 축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 '내가 남자아이였어도 안 시켰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건 왜일까?


그렇다고 내가 축구를 아예 안 하지는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씩이라도 동네 남자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물론 제대로 된 축구였을 리는 없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냥 놀라운 일이었고 구경거리였을 뿐이니까. 나랑 같이 축구를 했던 친구들도 그런 여자애가 있다니 호기심에 했던 거지 진지하게 축구를 즐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중2병이었는지는 몰라도 남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남자였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꼭 선수로써 평가받지 않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뭐, 남자였어도 손흥민같은 축구선수는 절대 못 됐을거라고 확신하지만ㅎ

작가의 이전글 [축구 좋아하는 여자가 살아가는 법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