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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병 Jan 11. 2022

[축구 좋아하는 여자가 살아가는 법 #7]

#7. "얘는 여자애야"

혹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본 경험이 있나? 나는 있다.


중학교 2학년 잼병이는 중2병이라는 아주아주 무서운 사춘기병에 걸렸었다. 중2병의 증상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에게는 남들이 들으면 기겁할만한 증상(사건?)이 있었다. 거울 앞에 앉아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 보다가 갑자기 주방 가위를 가져와서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왠지 머리카락이 손에 한 움큼 잡히는 것이 꼭 잘라보고 싶었다. 아마도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위질을 한 5번 정도 했을까? 갑자기 거울 속의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급하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악! 나 머리 어떡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머리카락을 쥐어잡고 등짝 스매싱을 날렸고, 애용하던 미용실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정신 나간 우리 아이 하나 가니까 머리 수습 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그 길로 미용실로 달려갔다. 물론, 모자를 눌러쓴 채로...


미용실에 가서 원장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모자를 벗었다. 선생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대체 왜 그랬냐고 물었다. 나는 마치 '매일 뽀글이 파마만 하셔서 심심하실까봐 재밌는 과제를 가져와봤어요!'라고 말하듯이 웃으며 "그냥 잘라주세요!"라고 했다. 선생님은 어차피 이건 살릴 수가 없어서 머리를 다 잘라야 한다고 했다. 15년 인생에서 두피에 바리깡이 닿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목과 귀가 다 들어나고, 앞머리는 눈썹 위 5cm정도에 자리잡은 멋진 밤톨이가 되었다. 우리 학교가 여중이 아니었다면 교복도 바지만 입고 다니는 나를 보고 다들 남학생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지금 생각하면 편견이지만!)


밤톨이가 된 나는 내 머리통과 비슷한 축구공을 들고 아빠와 남동생과 함께 우리집 앞 체육공원에 나가서 공놀이를 했다. (기승전축구다) 밤톨이가 되기 전에도 했지만 무튼. 우리는 셋이서 패스도 하고, 슈팅도 하고, 공 뺏기 놀이도 하면서 자주 그 공원을 찾았다. 그러다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셋이 공놀이를 하고 있는데 중학생정도 되어보이는 남학생 무리가 공을 가지고 슬금슬금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그쪽 인원은 일곱명. 우리는 셋. 기가막힌 우연이다. 5-5 경기를 할 수 있는 인원이 운동장에 모였다. 우리 아빠의 제안으로 시작된 풋살경기는 약 30분 동안 지속됐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 2년 만에 경기다운 경기를 한 나는 골도 넣고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곧 쉰을 바라보고 있던 우리 아빠... 지쳐버렸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노장 선수의 컨디션 난조로 인해 경기를 중단해야했고 집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집으로 가다 말고 아빠가 뒤돌아서 운동장에 남아있는 남학생들에게 한 마디 했다. 나를 가리키면서. "얘는 여자애야" 마치 깜짝 쇼인냥 준비하고 있던 멘트를 날리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들은 남학생들은 두 눈이 동그래지며 말도 안 된다고 외쳤다. 우리 아빠는 기대한 반응을 확인하고는 즐거워했다. 나도 뭔가 서프라이즈를 한 것 같아서 웃기기는 했지만 동시에 '왜 말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였을까? 여자도 남자만큼 축구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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