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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혁 Dec 04. 2023

아들아, 네 잘못이 아니야


학교에 출근하니 전화가 옵니다. 감기로 학교를 가지 못해 심심해하는 아들의 전화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받아보니 아들이 컴퓨터 비번을  물어봅니다. 요즘 큐브에 빠졌는데 큐브 맞추는 영상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영상은 항상 어른들과 함께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약간 조금 뭔가 찜찜했지만, 생각해 보니 아들도 심심할 것 같아 아침에 아이를 봐주는 분에게 컴퓨터 비번을 알려드렸습니다. 집에 가시면서 꼭 컴퓨터를 꺼달라는 부탁과 함께요.


저녁이 되어 퇴근을 했습니다. 아들이 달려와 저를 반겨줍니다. 감기가 많이 나은 것 같았습니다. 아내도 퇴근을 해서 함께 밥을 먹고 책상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까지는 우리 모두 행복했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가 말을 하던 도중 살짝 허점을 보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영상을 봤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아내가 순간 이상함을 눈치챕니다. 바로 아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도심문에 들어갑니다. "너 어떻게 컴퓨터 켰어? 언제까지 본거야 엄마가 확인할 수 있어 솔직히 말해봐?" 저도 연루되어 있기에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제발....


아들도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조그맣게 대답합니다. "반짝이(아침에 아이를 봐주시는 분을 반짝이라는 별칭으로 부릅니다.)가 가고 한 삼십 분 정도 더 본 것 같아" 하늘이 무너집니다. 이 녀석 부모 입장에서 거짓말을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내는 어른 없이 컴퓨터를 아이 혼자 봤다는 것에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당연합니다. 저희 아이는 자극에 민감한 편이어서 화려한 영상을 오랫동안 보면 안 되거든요. 그리고 진짜 컴퓨터 사용기록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그렇게 컴퓨터를 잘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밝혀집니다. 아들 녀석이 15:30분까지 게임을 했다는 사실까지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내가 왜 그랬지"를 외치고 방으로 뛰어갑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일단 저까지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아 아이를 따라 조용히 들어갑니다. 아들이 울고 있길래 옆에 누워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맣게 말했습니다."왜 그랬어?"


아이가 뒤집어지며 더 크게 울기 시작합니다. 아.. 장난도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는데 순간을 못 참고.. 다시 아이를 꼭 껴안아 줍니다. 반항했지만 상관없습니다. 아직은 제가 힘이 더 셉니다. 등을 토닥이며 다시 말해줍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직 어린데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어찌 보면 아이가 게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인데, 모든 책임을 오로지 아이에게 묻는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저라도 그 시간에 게임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안 그래도 첫째라 책임감도 큰 아이인데, 이 일로 아이가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계속 등을 토닥이니 아이도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고, 아내도 생각을 바꿔 방으로 들어와 아이에게 괜찮다고 다독여줍니다. 제가 말할 때는 계속 울더니 아내가 말하니 울음을 멈추며 살짝 웃습니다. 이 녀석 집안의 권력관계를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아이를 키울 때 조심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너 때문에 ~"라는 표현입니다. 아이가 어리고 그럴 때, 처음 부모가 돼서 힘들고 그럴 때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그런 표현을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그 표현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었고,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건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그런 표현으로 받았을 상처가 행동으로 나오더군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런 생각과 표현을 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네가 있어 행복해", "네가 있어 오늘도 힘이 났어" 요즘에는 아이에게 저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유가 생기면서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도 집에 가면 꼭 안아주며 "네가 있어 고마워"라고 말해주려고 합니다.^^ 아이가 빠져나가려 해도 상관없습니다. 아직은 제가 힘이 더 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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