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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평범한 나의 이야기

보호 종료 아동의 삶

나는 보호를 받다 보호가 종료된, 평범한 24살 보호 종료 아동이다. 9살 때부터 가정위탁으로 보호받으며 이혼한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함께 지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고모의 보살핌 아래 성장해왔다.     


보호아동? 보호 연장아동? 보호 종료 아동? 아마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당사자인 나 역시도 몰랐다. 왜 몰랐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관심을 가질만한 계기가 없었고, 나에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내가 보호 연장아동인지를 알게 되었다. 3학년 때, 다른 애들처럼 휴학하고 필요한 자격증 공부 혹은 공무원 준비를 시작해야지 마음먹었다.

수급비 관련해서 인터넷에 검색했고, '지식인'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휴학 동안 공부에 대해서 학원이나 인강 영수증 등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한시적으로 수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있었다.      


지식인을 믿고 있던 나는 휴학하기 일주일 전에서야 주민센터에 문의했다. 불행히도 내가 휴학하려던 연도부터 해당 방법은 사라진 상태였고, 휴학을 하면 3개월 후 수급이 끊긴다는 안내만 받을 수 있었다. 이미 휴학을 신청했던 나는 그냥 그대로 휴학을 하고 싶었다.

남들 다하는 휴학을 왜 나는 포기해야 해?라는 생각에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학교 3학년부터 수급이 끊기고 주거비와 의료비,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감당할 자신은 없었기에, 결국 휴학을 취소했다.     


이러한 고민으로 힘들 때쯤,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담당 선생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선생님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들어주시고,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시고 조언을 해주셨다.

낯선 선생님이었지만, 전화를 넘어 들리는

선생님의 따뜻한 공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마 혼자 참고 눌렀던 휴학 포기에 대한 슬픈 감정이 표출되었던 것 같다.      


선생님과의 통화 이후, 집에서 혼자 한참을 울었다.

울고 난 후에, '신기하네. 내가 울었구나. 내가 운 게 언제더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울지만, 유독 나에 관해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은 오롯이 나 혼자 감당했어야 했다. 그걸 알기에 진짜 나에 대한 감정은 되도록 외면하고 표현하지 않는 습관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이 통화 이후, 가정위탁아동들의 자조모임에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 작년 이맘때부터 '청년들의 걱정없는 하루'인 청하라는 공동체에 속하여 활동하고 있다. 청하는 보호 종료 아동과 보호 종료 아동이 될 친구들을 위해 노력한다. 문제 인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콘서트를 기획하고 신문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보호아동의 권리증진을 위해 실제로 행동한다.

청하 안에서 다양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나와는 다른, 어쩔 땐 나보다 더 힘들었던 경험을 들으며 보호아동들의 현실에 대해 새롭게 알아갈 수 있었다.


당사자인 나도 잘 몰랐는데

어른들은, 사회는 얼마나 더 모를까.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아동에 대해서는 특히나 그렇다.

아동은 투표권이 없고, 보호자가 대변해주기에,

아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결국, 아동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동 자신일 수밖에 없으니.     


청하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재단 선생님들과 청하 친구들에게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밝히지 못했던 속마음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넌 왜 급식비 영수증을 안 받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글쎄 나도 모르겠네.'라고

애써 모르는 척 넘겼던 경험,

 방학 때마다 문제집이나 멸균우유 한 박스를 교무실에서 다른 친구들 눈치 보며 몰래 받아가던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다니.


항상 이런 걸 편하게 말하는 날이 올까 생각했는데, 청하에선 그게 가능했다. 청하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그 당시의 부끄러움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생각하면서도 술술 이야기하는, 꾸밈없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그리고 청하에 들어간 이후 한 가지 변화가 더 생겼다.

사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아이들 대상으로 멘토링 활동을 가장 열심히 하면서도, 진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청하에서 재단의 선생님을 옆에서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우리를 지지해주는 선생님처럼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정위탁아동으로서 경험한 것들을 잊지 않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이들에게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올해 상반기, 하반기 채용에 지원했고, 하반기에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회경험이 처음이니 어렵겠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고 성장해나가며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분명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행운처럼 청하를 만나고

성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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