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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택주 Mar 16. 2024

아픈 데 마음 두지 못했다!

구슬 어디에 점을 찍어도 그곳이 ‘가온’이다

<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은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2015년 펼쳤던 평화살림콘서트 ‘평화모니’에서 비롯했습니다. 평화모니는 두 가지 뜻이 담겼습니다. 평화를 빚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과 ‘평화가 뭐니?’ 하며 묻는 뜻을 담았습니다. 이걸 보고 불광출판사에서 윤구병 선생께 월간 불광에 ‘평화모니’란 꼭지에 실을 글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태 동안 스물네 차례 실은 글과 결이 닮은 글 몇 꼭지를 묶은 책이 바로 ‘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입니다. 평화모니 연재를 하면서 영세중립을 비롯해 남북 평화 얘기를 했다며 불교 잡지인 불광에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며 못마땅해하는 말도 제법 들려왔습니다. 윤구병 선생은 이 얘기를 듣고 연재를 그만두겠다고 했으나 불광 편집장이 거듭 연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태 동안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불교란 세상 흐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종교, 마음을 놓이게 하는 종교라고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얘기지요. 

<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을 나오게 한 2015년 9월 '평화머니'

짚어보면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사람들이 살아온 흐름이 살림살이에 어긋나니 바꿔야 한다고 흔들면서 일어난 새로운 결입니다. 살림살이에 어긋나는 잘못을 짚고 “저만 알고 살아서는 안 된다. 남도 나 못지않게 세상 가온에 있는 이들이다. 다른 목숨도 내 목숨 못지않게 아깝다. 세상에 나만이 아니라 서로 있으니 서로 도두보며 살리며 살아야 한다. 살림살이하지 않으면 끝내 다 죽을 수밖에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드잡이하고 나선 사람들이 이룬 살림이 종교란 말입니다. 

2016년 11월 평화살림콘서트 왼쪽부터 변택주, 일진 스님, 윤구병 선생님

옛 어른들이 일컫는 사람이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나무 사람’, ‘풀 사람’, ‘늑대 사람’, ‘토끼 사람’ 이렇게 불렀습니다.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대를 잡을 수밖에 없다. 그대 주검을 먹어서 미안하다, 나를 살려줘서 고맙다 그대 죽음에 부끄럽지 않도록 힘껏 살겠다고 다졌습니다. 요즘 우리는 어떻습니까? 밥상머리에서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습니까? 

변산공동체 뒷산 지름박골, 살림집에 계시는 윤구병 선생

땅별(지구)는 둥글지요? 구슬 어디에 점을 찍어도 그곳이 가온, 가운데입니다. 수많은 점이 모두 가온(중심)입니다. 평등하지요? 이 책 제목 <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은 도법 스님이 즐겨 쓰던 “아픈 곳이 세상 중심”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아파하는 이, 앓는 이를 보기가 견디기 힘드니 다들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리잖아요. 모른 척하니까 ‘아픈 데가 중심, 가운데야!’ 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었어요. 부처님에 버금가는 유마 거사는 “세상이 앓고 있으니 나도 앓는다.”라고 했다지요? 

<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을 연주하고 나서 느낀 얘기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

결 고운 동무 몇몇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을 한 해에 걸쳐 연주했습니다. 연주를 마치면서 동무들은 이제껏 가운데가 따로 있고 가장자리가 따로 있다고 여겨왔는데, 알고 보니 “평등, 모두 한 가지인데 여태 그걸 놓치고 살았구나.” 하고 입 모았습니다. 눈 비비고 다시 보니 참으로 앓는 이가 바로 ‘나’라고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을 연주 하기에 앞서 그림책 <하찮은 네 개의 작은 귀퉁이> 연주

윤구병 선생은 “살림은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야. 마음을 보듬기보다 먹을 것을 먼저 주고 숨통을 틔워야 해.”하고 거듭 흔들고 계십니다. “먹을 것을 스스로 지어 제 앞가림해야 해. 목숨 줄을 다른 나라에 맡기고 넋 놓고 있다가 팔던 나라들이 안 팔겠다고 하면 다 굶어 죽어!” 하고 멱살잡이하십니다. 아울러 너만 먹냐? 같이 먹어야지. “평화는 고루 먹기이고 고루 쓰기야! 상생은 두루 살리는 일, 두루 살림이라고.” 하고 목이 터지라 외치십니다. 그런데 상추 한 닢 벼 한 톨 길러 먹을 적이 없는 허깨비인 저는 입으로는 선생 뜻을 따른다고 뇌이면서도 헛짓거리로 세월만 낚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지난날은 돌이킬 수 없으니 다시 힘을 내어 느린 걸음이라도 내디딘다고 내디디고 있습니다만 깊이 찌든 버릇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래도 곁에서 어울려 걷는 동무들이 있으니 그 힘에 얹혀 가는 데까지 가 보렵니다. 타박타박.     

-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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