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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늘 May 02. 2024

(1) 책을 쓴다고요?  

보건교사 전학공에서 책을 쓰기로 하다.

지난겨울 출근길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갑자기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한 생각 때문에 눈이 번쩍 떠진 경험이 있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소설의 주인공 '안진진'이 자신의 삶의 부피에 대해 이야기하던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아있었다. 나는 소설의 내용과는 별개로 그 문장을 통해 내 삶의 부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며칠간의 긴 생각 끝에 나의 결론은 내 삶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글쓰기가 그 방법이었다. 그 깨달음이 그날 그 출근길에 떠오른 것이다. 내가 살아온 경험을 보고 싶었고,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찰이 필요했고, 글쓰기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5개월 째이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소장용 미니북 5권 쓰기에는  현재까지 총 3번 참여했다.  500자 이내의 짧은 글쓰기로, 지금은 나를 위한 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디 내놓기엔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목표가 있는 글쓰기를 하기 전에는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독서기록이나, 생각날 때 끄적거리는 방향을 잃은 글쓰기가 전부였다면 '미니북 쓰기'라는 작은 목표가 생기니 이전과는 다른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블로그에 조금씩 글을 남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몇 년 전부터 참여하고 있는 지역 보건교사회 전문적 학습공동체(교사들은 전학공이라는 용어로 줄여 말한다) 모임인 '도깨비(도전하고, 깨우치고, 비상하라)'의 저녁 식사모임에서 모임을 주축으로 운영하시는 선생님이 24년에는 책 쓰기를 도전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우리 지역에는 이미 책을 17권이나 출간한 작가이자 고등학교 보건교사로 재직 중인 선생님이 한 분 계셨고, 그분을 멘토 삼아 공저 책을 한 권 써보는 것을 도전해 보자는 의견이었다. 이미 글을 써야겠다는 나의 찰나의 깨달음이 이 모임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향이자 숙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책을 쓴다고요?


아직 제대로 글도 써본 적이 없는데 그게 가능할까? 하지만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살면서 내 이름으로 출판한 책이라니..

비록 첫 책은 공저 책일 테지만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없다면 처음부터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식으로 보건수업을 해본 것도 아니고 7년도 안된 내 보건교사 경력으로 어떤 글들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책을 쓰자는 말은 그날 저녁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4월, 작가와의 첫 만남이자 우리 전학공의 첫 모임 날, 우리의 멘토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 쓰기를 위한 목적 있는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목적이 있는 글쓰기, 책 쓰기를 위한 글쓰기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목적이 있는 글쓰기야말로 글쓰기 습관을 지속시켜 줄 수 있고, 구체적인 주제에 맞게 나의 경험, 생각,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전학공에 모인 선생님들의 연령과 삶의 경험은 모두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글을 제대로 써본 경험이 없었다.

이미 공저 쓰기 지도 경험이 있던 작가님은 우리 같은 글쓰기 초보도 얼마든지 책을 쓸 수 있다며 독려하셨다. 다만 본격적인 책 쓰기에 앞서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며, 한 꼭지의 긴 글에 대한 감을 먼저 익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님의 책 중 한 권을 선택하여 매일 한 꼭지의 글을 자판필사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감상문을 보다 남들이 읽는 공적인 느낌의 글로 쓰기 위해 우리는 각자 인스타그램에 필사 인증 사진과 자신의 글을 올릴 계정을 만들었다. 다행히 지난겨울 방학 개인 독서그램을 하기 시작하면서 딸에게 인스타그램 사용법을 배워둔지라 계정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본래 운영하는 계정을 놔두고 오직 필사용 부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한 번도 인스타그램을 사용해보지 않은 선생님들에게는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자판필사보다 SNS 릴스에 푹 빠져버리면 어쩌냐며 하하 호호 한참을 경고 아닌 경고를 서로에게 하며 계정을 만들었다.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길 줄 아는 삶. 벌써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한 달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자판 필사와 감상글을 쓰기만 하면 되었다.



필사란 으레 손으로 쓰는 것으로 생각했다. 펜이 잘 번지지 않은 좋은 질의 종이로 만들어진 필사 노트를 고르는 것은 12월에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힘들지만 꾹꾹 눌러쓴 내 글씨를 보며 다시 돌아오는 연말이 되어서야 내가 1년간 책을 읽고 부지런히 살았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수단인 것처럼 그렇게 손 필사를 3~4년 정도 했었다.


 어느 날 친한 사서 선생님이 책을 읽고 한글 파일에 정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읽은 내용을 편하게 파일로 정리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시기도 하고, 도서 사이트에 서평을 올릴 때면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서 넣으면 되니 파일로 정리하는 것이 아날로그 식 독서기록보다 더 편해 보였다. 그 당시 필사는 당연히 손으로 해야 하는 거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필사하며 겨우 한두 줄의 내 생각만 적는 수준이었으니 자판으로 기록하고 정리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독서 기록의 형태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온라인매체로 바꿔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뀐 건 지난겨울 때쯤이었다. 손 필사를 하다 보면 이미 문장을 따라 쓰는 데 지쳐 조금 더 긴 내 생각을 따라 적기가 쉽지 않았다. 독서 기록을 디지털로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도 자판 필사를 생각지도 못했기에 내게 여전히 필사란 손으로 하는 신성한 영역이었다.  


그런데 책 쓰기 준비를 하면서 자판 필사를 하기 시작하니 자판필사의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자판 필사로는 오래 걸려도 30~40분 이내에 한 챕터는 따라 쓸 수 있으니 새벽 시간이든, 아침에 출근을 일찍 해서 남는 시간이든, 하루 중 어느 때도 쉽게 할 수 있고 매일도 가능하다. 자판 필사 2장을 마치고 나면 마치 내가 직접 쓴 글인 괜히 뿌듯하고 좋다. 뒤에 따라오는 감상문 쓰는 시간이 오히려 필사 시간보다 길 때가 많지만 자판 필사를 하지 않았다면 감상문은 더욱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시작할 땐 ‘좋아요’ 한 문장만 써도 된다고 했는데 필사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선생님들의 감상글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모든 선생님께서 500자가 전후의 긴 감상문을 쓰시는 것만 봐도 자판 필사의 힘이 느껴졌다. 아직도 책 쓰기는 기대감 보다 걱정이 더 크지만 점차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고, 글 속에 선생님들 각자의 생각과 살아온 이야기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단톡방에는 매일매일 좋은 글들이 채워지고 있다. 책 쓰기의 초석이 다져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보건교사 공저쓰기  도전기 (1)  책을 쓴다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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