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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늘 May 05. 2024

선생님  T죠?

T발 C야?


중학교에 근무 중일 때 학생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선생님은 T죠?
선생님은 츤데레예요.



맞다. 난 T다.


MBTI 같은 매우 주관적인 자기 보고식 성향테스트로 인간을 고작 16 유형으로 분류하려 하다니.  

몇 년 전 보건교사 1급 정교사 연수 때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mbti는 최근 3~4년간 자신이 살아온 사회적 얼굴일 뿐 인간의 선천성 성향을 알기엔  백 프로 완벽하지 않은 도구라고 했었다. 얼마든지 사회적 얼굴은 처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 보고식 답안이기 때문에 이것이 진짜 자기의 성향인지 자기가 바라는 사회적 모습이 반영된 건지  모호할 때가 있다.  나 또한  MBTI로 한 인간의 고유 특성을 규정하고, 그 틀 안에 다양성을 구겨 넣는 것이 불쾌했지만 T냐 F냐를 물어본다면 적어도 학교에서는 완전한  T형으로 살고 있다.


천방지축 날고뛰는 중학생들을 상대하기엔 아무래도 F보단 T가 더 낫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찾아와 "선생님 저 아파요, 피가 철철 나요, 저 죽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자기가 아파서 공감받고 싶어 하고 챙김 받고 싶어 함을 아무리 호소해도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응, 긁혔네. 이 정도로는 피 철철 안 나, 안 죽어."


"선생님, 저 아프다니깐요?"


"긁혔으니 아프지, 다쳤으니 아픈 건 당연해,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자 치료받자"


"선생님, 저 그러다 쓰러지면 어떻게요?"


"뭘 어떻게 해. 쓰러지면 119 신고해야지."


"아 선생님~ 저 진짜 과다출혈로 죽으면요 선생님이 책임 지실 거예요?"


"이 정도로는 과다출혈 안돼, 벌써 지혈 다 됐네, 선생님이 너 살려줄 테니 걱정 말고 올라가서 수업이나 들어, 자 다음 사람"


 "아 선생님은 너무 딱 잘라요. 쌤  T죠?"



주 있는 일이다. 중학생들은 오냐오냐 네가 힘들지 그래그래 해주며 틈을 보이면 귀신같이 알고 수업종이 쳐도 늘어지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감은 필수다. 내 모습에 T형 모드를 장착하면 아이들의 빠른 교실 복귀를 도울 수 있고,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해 주는 것은 교사인 나의 의무이므로 나는 1층 구석 보건실에서 매일 학생들과 투쟁했다. 


그래도 애들은 내 말투가 신기한지 아무리 구박해도 웃으면서 찾아오고 또 찾아왔다.



2학년 여학생 중 친해진 학생이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아무리 봐도 극 T인 것 같아요."


극 T선생님도 가끔은 아이들과 농담도 하고 편하게 시시덕 거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괜히 언젠가 본 유튜브 숏츠 영상이 떠올라 나름 트렌디한 보건선생님이란  평가를 받고 싶었나 보다.


"잘 아네. 선생님은 극 T야. 그래서  어디서 보니까 이런 말도 있던데? C 발 T야? 이거"


그 말을 뱉고 난 후 그 학생과 나는 둘 다 순간 당황했다.

아니.' T 발 C야'라는 밈을 써먹으려다가 거꾸로 말해버린 것이다.


"선생님이 실수했다. 너네 그거 있잖아. 영상에서 봤는데. T에게 물어볼 때 'C 발 T야?'라고 하잖아."



아차차.  또 잘 못 말한 것이다. 머릿속에서 엉켜서 말이 계속 잘 못 튀어나왔다.




"아 선생님~ 아무리 친해도 욕을 하시고 너무하시네 ㅎㅎ T 발 C 야로 거꾸로 말씀하셔야죠"


"OO야~ 미안 미안, 선생님이 너네 따라 해 보려다가 머리가 안 따라주니 자꾸 헷갈린다. 선생님 속마음 이거 아닌 거 알지? 잘못 말했네.  ㅎㅎ "


"에이 그럼 알죠 선생님. 소문내고 올게요~" 하고 가버렸다.


보건실에서 항상 우아하고 기품 있게 아이들을 맞이하는 보건선생님이 욕을 했다는 소문이 퍼질까?

나는 이 날 하루 소심 모드로 위축되어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어김없이 그 학생은 나를 또 찾아왔다. 전날 괜히 아이에게 의도치 않게 욕설 아닌 욕설을 하게 된 게 미안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이제는 너네 유행어 함부로 안 해야겠어. 힘들어."


생각보다 그 학생은 쿨했다. 다행히 보건선생님의 욕설 해프닝은 소문내진 않았나 보다.


 "그럴 수도 있죠. 근데요 선생님 이젠 그것도 또 유행 지났어요. 이젠 춤춰야 해요. 이 춤." 하며 숏츠 영상 보고 우리 딸이 따라 하던 현란한 율동과 같은 동작을 보건실 입구에서 한참을 추다 올라간다.



아무리 단호하게 대해도 아이들은 나의 빈틈을 금세 파고들며 나를 피식 웃게 한다. 차갑고 도도한 T형 선생님인척 해도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 덕에 무장해제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다.


중학생. 남들은  중학생들 힘들어서 어떻게 상대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는 아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숨 쉴 구멍처럼 편하게 생각하는 존재가 바로 나, 보건교사다.


T형 보건교사나 F형 보건교사나 그런 아이들이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하기 바라는  모두 같은 마음으로 매일 아침 보건실 문을 연다.






보건실 이야기 -선생님 T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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