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

결론을 말할 수 없는 시점에서 남기는 기록

by Peppone

이 글은

체험수기다.


어떤 사건을 정리한 글도 아니고,

이미 끝난 일을 돌아보는 기록도 아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상태를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남기는 기록이다.



나는 이 일을

선택해서 시작하지 않았다.


어느 날 눈을 뜨자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설명도 없었고,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판단을 유예할 여유도 없었다.


응답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불리해지는 조건만

먼저 작동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나는 결론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다.


지금은 말할 수조차 없다.


판단은 유예되어 있고,

절차는 진행 중이며,

응답은 현재형으로 계속 요구된다.


그래서 이 기록은

결론이 아니라

상태를 남기기 위한 기록이다.



이 상태에서

중요했던 것은 감정이 아니었다.


억울함도,

분노도,

해명의 문장도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했던 것은

언제나 이것이었다.


지금 도착한 이 문서는

무엇을 요구하는 문서인가.


설명서인지,

이의 제기서인지,

사실 정정 요청인지,

아니면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문서인지.


이 구분이 틀리면

아무리 정성스럽게 쓴 문장도

그 자리에서 의미를 잃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


대신

문서를 분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말해야 할 것,

지금 말하면 안 되는 것,

반드시 남겨야 할 사실과

지워야 할 문장.


이 판단을

시간 안에 하지 못하면

다음 문서는

이미 불리한 상태로 도착했다.



이 연재는

해결의 기록이 아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연재는

설명의 기록도 아니다.


설명은

지금 나에게 허락된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에서

사람이 어떻게 작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기억이 남아 있는 동안 적어두는 기록이다.



연재에 앞서


이 글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의 판단이나

결론을 다루지 않는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결론이 유예된 상태에서도

응답이 요구되었던 조건과 시간감각에 대해서만

체험한 범위 내에서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