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 und Du-관계
좀 힘든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아래 썼던 글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때였다.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악보를 보면서 악기들의 구성과 소리를 머릿속에 그려갈 것이다
여기서는 이 악기들이 소리를 적게 내지만 관객들의 숨 멎을 듯한 호흡과 관심을 끌어줘야 해
그리고 여기서는 이 악기들이 강렬한 소리로 관객들의 가슴을 강제로 흔들어 줘야 해
그리고 여기서는 모든 악기들이 더욱더 웅장하고 힘찬 협화음을 내줘야 해
지휘자는 대체로 같은 크기의 지휘봉을 쓴다.
누구에겐 큰 지휘봉을 휘두른다거나 누구에겐 조그마한 지휘봉을 흔들지 않는다.
지휘자는 악보와 상관없이 누구더러 내내 강하게만 혹은 약하게만 연주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지휘자는 연주자들에 대해 성별과 사적인 호감으로 대하며 시선과 지휘봉을 휘두르지 않는다.
좋은 지휘자는
누구보다도 악보를 잘 해석할 줄 알고
누구 못지않게 악기 소리의 특성과 강약을 잘 이해하고
누구보다는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는 동작으로 비칠지 몰라도
누구보다 더 무대에서 빛이 난다
좋은 지휘자는
하나의 곡을 명곡화 시킨다
좋은 지휘자라야
하나의 명곡을 해치지 않는다
그 당시엔 산, 책 그리고 산책을 주창하며 한창 즐기던 때라 어느 주말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쓴 『니체와 함께 산책을』을 도서관에서 읽고 있었다. 그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제목만 보면 산책은 당연하고 온통 니체 얘기일 줄 알았는데, 정작 책의 주요 내용은 여러 사상가들의 산책과 그를 통한 사유, 명상을 다루고 있었고, 니체의 비중은 의외로 작았다. 그 가운데 유독 내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 있었으니, 괴테도, 포름도 아닌 유대계 철학자 마르틴 부버였다.
읽던 책 속에서 일부 언급된 『나와 너』라는 책이 이상하게 마음을 움직여 성미 급한 나로 하여금 곧바로 대출하게 만들었다. 다시 『니체와 함께 산책을』을 마저 다 읽은 후 그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당시에 내 블로그에 리뷰도 올렸었다. 근데 최근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고 출판사와 번역자는 다르지만 깨끗해 보이는 책으로 다시 구매해 읽었다.
각설하고 작가와 작품부터 소개해 볼까 한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20세기 사유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대화 철학의 창시자이자, 인간 존재를 '관계'라는 근원적 차원에서 다시 사유하게 만든 사상가다. 그의 관계철학은 그가 평생 주장한 유대인–아랍인 공존 모델(바이내셔널 국가, 이중민족국가)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그의 대표작 『나와 너』(1923년 作)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만나고, 타자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지가 곧 우리의 존재 방식을 규정한다는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부버는 대상화와 계산의 차원을 넘어,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너'로 호명하며 마주치는 순간에 삶의 본질적 깊이가 열린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결국, 세계를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응답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근원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그 당시에 읽은 책과 번역이 다르지만 『나와 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기본개념과 특히 '나-너'와 '나-그것'의 개념에 대해서만 깊이 얘기해 볼까 한다.
사람에게 세계는 두 겹이다. 세계를 맞이하는 사람의 몸가짐이 두 겹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가짐은 그가 말할 수 있는 근원어가 둘임과 발맞추어 두 겹이다.
근원어는 홀로 있는 낱말이 아니요, 어울려 있는 낱말이다.
근원어의 하나는 복합어 ‘나-너’(Ich-Du)이다.
근원어의 또 하나는 복합어 ‘나-그것’(Ich-Es)이다. 이 경우에는 ‘그것’의 자리에 ‘그’(Er)나 ‘그녀’(Sie)를 앉혀놓아도 그 의미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근원어가 둘일 때에는 사람의 ‘나’도 두 겹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근원어 ‘나-너’에서 ‘나’와 근원어 ‘나-그것’의 ‘나’는 서로 그 속셈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p12~13.
핵심은 '나'라는 존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말하느냐 '그것'을 말하느냐에 따라 ‘나’의 본질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나-너'의 '나'가 아닐까 한다.
1. 처음에는 관계가 있다. 관계야말로 존재의 범주요, 남을 맞아들이려는 준비 태세요, 물건을 파악하는 그릇이요, 혼의 꼴틀이다. 2. 처음에는 관계의 아프리오리, 즉 ‘타고나온 너’가 있는 것이다. ‘타고나온 너’는 만남의 상대인 ‘너’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관계 안에서 현실화한다. 3. 우선 어린아이와 마주서 있는 상대가 ‘너’로서 인정되고, 그다음에는 ‘나-너’ 외의 다른 어떠한 것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독존적 관계가 생겨나며, 마지막으로 그 상대에게 근원어를 건네게 된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바로 관계의 ‘아프리오리’에 근거하고 있다. 4.‘타고나온 너’는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어린아이의 본능에 의해 –즉 처음에는 타자(他者)를 ‘손으로’ 접촉해 보고, 그다음에는 타자를 ‘눈으로’ 접촉해 봄으로써-마침내 그 자태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p57~58.
마르틴 부버의 '관계의 선험성(先驗性, A Priori)'과 '타고나온 너(das eingeborene Du)' 개념을 가장 밀도 있게 담고 있는 문단이다. 이 구절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 경험(‘Ich-Es’)이 아닌 관계(‘Ich-Du’)에 있음을 증명하는 핵심 논거이다.
1. 관계의 선험적 지위와 본질
"처음에는 관계가 있다. 관계야말로 존재의 범주요, 남을 맞아들이려는 준비 태세요, 물건을 파악하는 그릇이요, 혼의 꼴틀이다.“
이 문장은 관계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구조임을 천명한다.
●존재의 범주: '관계'는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나 칸트의 '시간/공간'처럼, 세계를 이해하고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틀이라는 뜻이다. 나는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나'가 성립한다.
●남을 맞아들이려는 준비 태세: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마치 씨앗 안에 싹틀 잠재력이 있듯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대화적(Dialogical) 존재로 설계되어 있다는 의미다.
●혼의 꼴틀:인간의 영혼('혼')은 관계를 통해 빚어지고 형성된다. 개인의 정체성과 인격은 외부 대상과의 관계를 맺고 그 안에 참여(참견)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지, 홀로 고립되어 정립될 수 없다.
2. '타고나온 너' (관계의 A Priori)
"처음에는 관계의 아프리오리, 즉 ‘타고나온 너’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부버의 가장 중요한 독자적인 개념이다.
●아프리오리 (A priori):경험에 앞서는 것, 즉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을 뜻한다. 부버는 '나-너'의 관계를 맺으려는 충동은 학습되거나 경험된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본래부터 내재하는 본능적이고 선천적인 성향이라고 주장한다.
●'타고나온 너(das eingeborene Du)':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막연하지만 강렬하게 '나를 완성시켜 줄 어떤 너'를 갈망하는 존재다. 이는 태아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분리된 후에도 이어지는 연결에 대한 근원적인 갈망을 의미한다.
"‘타고나온 너’는 만남의 상대인 ‘너’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관계 안에서 현실화한다."
●잠재력에서 현실로:'타고나온 너'는 그 자체로는 잠재적인 힘일 뿐이다. 이 잠재력이 현실의 특정한 상대(너)와 마주할 때, 비로소 생생한 '나-너'의 관계로 발현된다.
●생생한 관계:이는 과거의 지식이나 미래의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온 존재를 걸고 이루어지는 만남을 뜻한다.
3. 관계의 세 가지 단계 (A Priori의 근거)
"우선 어린아이와 마주서 있는 상대가 ‘너’로서 인정되고, 그다음에는 ‘나-너’ 외의 다른 어떠한 것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독존적 관계가 생겨나며, 마지막으로 그 상대에게 근원어를 건네게 된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바로 관계의 ‘아프리오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 문장은 '타고나온 너'가 현실화되는 역동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을 세 단계로 보여준다.
●'너'로서 인정: 대상을 단순한 물건이나 수단(그것)이 아닌,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격적 주체로 받아들이는 최초의 순간이다.
●독존적 관계:'나-너' 외의 어떠한 것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관계, 즉 모든 목적이나 분석을 배제한 순수한 몰입의 상태이다. 이 관계는 다른 모든 '그것'을 뒤로 미루고 오직 둘만의 만남에 집중한다.
●근원어를 건넴:'나-너'라는 근원어를 온 존재를 걸고 말하는 순간이다. 이는 단순한 발언이 아니라, 상대에게 존재적 확언을 하는 행위이다.
이 세 가지는 학습된 것이 아니라, '타고나온 너'라는 선험적 구조에 따라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관계의 형식이다.
4. '타고나온 너'의 초기 발현
"‘타고나온 너’는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어린아이의 본능에 의해 –즉 처음에는 타자(他者)를 ‘손으로’ 접촉해 보고, 그다음에는 타자를 ‘눈으로’ 접촉해 봄으로써-마침내 그 자태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
이는 '타고나온 너'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발달 심리학적 예시이다.
●본능에 의해:아기가 지적 판단 없이도 자연스럽게 타자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선험적인 관계 본능의 증거이다.
●'손으로' 접촉:언어나 지각이 발달하기 이전, 아기는 타자에게 물리적으로 닿으려 한다. 이는 대상을 파악하는 동시에 교류하려는 초기적 관계 방식이다.
●'눈으로' 접촉:아기가 엄마의 눈을 응시하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활동이 아니라, 상대방의 영혼을 읽고 관계를 확인하려는 가장 강력한 비언어적 대화이다. 부버에게 있어 눈맞춤은 '나-너' 관계의 가장 중요한 첫 단추이다.
관계가 자아를 형성한다는 위 단락의 내용은 "나"라는 자아는 홀로 독립된 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너"를 향한 선천적인 충동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형성되고 완성된다는 부버의 핵심 논리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1. 사람은 경험을 매개로 하여 자기의 세계를 인식한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은 사물의 표면을 두루 다니면서 사물을 경험한다. 사람은 사물로부터 사물에 관한 지식을 끌어낸다. 즉 사물로부터 한 경험을 얻어내는 셈이다. 이렇게 사람은 사물에 속해 있는 것을 경험한다. 2. 그러나 세계가 경험적 인식만으로 사람에게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에 의해서 사람에게 제시되는 것이라고는 ‘그것’과 ‘그’와 ‘그녀’, 즉 ‘그것’의 세계가 있을 따름이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그것’ 일뿐이다. 3.-만일 우리가 여기에 ‘외적 경험’ 외에 ‘내적 경험’을 덧붙인다 하더라도 경험은 여전히 경험일 뿐이다. p16.
마르틴 부버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두 근원어 중 하나인 '나-그것(Ich-Es)' 관계의 성격과 한계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부분이다.
핵심적으로 이 구절은 "우리가 '경험'이라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할 때, 우리는 결코 세상의 전체적인 존재(너)를 만날 수 없으며, 단지 조각나고 객관화된 '그것'만을 파악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1. 경험의 본질: 피상성과 추출
"사람은 경험을 매개로 하여 자기의 세계를 인식한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은 사물의 표면을 두루 다니면서 사물을 경험한다."
●표면적 인식의 한계: '경험'은 사물의 깊은 내면이나 전체적인 존재에 닿지 못하고, 그저 표면(겉모습) 위를 맴도는 행위이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할 때, 우리는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지각에 포착되는 한정된 측면만을 파악한다.
"사람은 사물로부터 사물에 관한 지식을 끌어낸다. 즉 사물로부터 한 경험을 얻어내는 셈이다. 이렇게 사람은 사물에 속해 있는 것을 경험한다."
●지식의 추출과 소유: '경험'의 목적은 사물 자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관한 지식이나 속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부분적 인식: 우리는 사물 전체가 아니라, 사물에 '속해 있는 것(예: 색깔, 무게, 기능, 분류)'만을 파악한다. 사물이 지닌 잠재적인 신비함이나 살아있는 현존은 지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렇게 얻은 지식은 '나의 것'이 되어 내면으로 들어와 소유물이 된다.
2. 경험의 한계: 오직 '그것'의 세계만 제시
"그러나 세계가 경험적 인식만으로 사람에게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에 의해서 사람에게 제시되는 것이라고는 ‘그것’과 ‘그’와 ‘그녀’, 즉 ‘그것’의 세계가 있을 따름이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그것’ 일뿐이다."
이것이 이 구절의 핵심적인 철학적 결론이다.
●대상화의 과정: '경험'이라는 매개는 본질적으로 대상을 객관화한다. 내가 대상을 분석하고 지식을 추출하는 순간, 그 대상은 주체적인 '너'로서의 지위를 잃고, 객관적인 '그것'으로 전락한다.
●인간관계의 위험: 부버는 단순히 사물뿐 아니라 인간('그'와 '그녀')에게도 이 논리를 적용한다. 우리가 타인을 오직 경험의 대상으로만 대하면(예: 능력, 배경, 외모, 역할 등으로 평가), 그 사람은 더 이상 살아있는 '너'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속성으로 규정된 '그것'이 된다.
●세계의 제한: 따라서 경험에 의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오직 조각나고, 분석 가능하며, 이용 가능한 '그것의 세계'일뿐이다.
3. 내적 경험의 부정
"-만일 우리가 여기에 ‘외적 경험’ 외에 ‘내적 경험’을 덧붙인다 하더라도 경험은 여전히 경험일 뿐이다."
이 마지막 문장은 경험의 근본적인 한계를 더욱 명확히 한다.
●외적 경험: 외부 사물을 감각하고 관찰하는 것 (과학적 경험, 감각론적 경험).
●내적 경험: 자신의 감정, 사고, 의식을 스스로 성찰하고 관찰하는 것 (심리학적 경험, 내성).
부버는 이 두 가지 경험 모두 결국 주관적인 틀 안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여전히 경험일 뿐: 외적 경험이든 내적 경험이든, 둘 다 '나(주체)'와 경험의 내용(객체)'을 분리시키고, 그 내용물을 '나의 속'으로 끌어들여 지식으로 소유하는 과정이다.
●'사이(Das Zwischen)'의 부재: 진정한 만남(나-너)은 '나'와 '너' 사이의 공간(Das Zwischen)에서 상호 작용하며 발생하지만, 경험은 모든 것을 '나의 속'으로 끌어들인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경험이든 나와 세계 사이의 생생한 연결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공유한다.
위 내용은 부버가 '나-그것' 세계를 규정하는 방식이며, 현대인이 '지식의 소유'와 '객관화'를 통해 참된 관계와 생명을 잃어버리고 고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현실을 지적하는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이다.
오늘은 힘든 시기에 썼던 글과 마르틴 부버의 근원어에 대해 좀 철학적이지만 개념 위주로 깊이 있게 알아보았다. '나-너'와 '나-그것'이 고정적인 것은 아니기에 다음에 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