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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고즈넉 Dec 01. 2022

나의 과민한 대장님께

많이 미워했어요. 하지만 고마워요.

내가 너 같은 장(腸)을 가졌으면 세계 정복을 했을 거야!!


나의 배우자는 무쇠와 같은 소화기관을 가졌다. 웬만큼 상한 걸 먹어도 탈이 나지 않고 십 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체한 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체 했다는 소리에 죽을 쑤어 주려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그: 죽을 왜 먹어?
나: 체 했다며? 명치가 아프다며?
그: 근데 왜 죽을 먹어?
나: 체했으니까 죽 먹어야지.
그: 아냐.. 아까 한 끼 건너뛰였더니 이제는 괜찮아.
나: .... (뭐야.. 또 나만 쓰레기야? 내 위장만 쓰레긴가?)


나에게 체한다는 의미는 병원 가서 진료받고, 약 타서 3~4일 이상 먹고, 죽이나 소화 잘 되는 음식만 골라 조심조심 먹어도 빨라야 일주일 안에 낫는 게 체한 건데.. 그에게 체는 그냥 약간의 과식이 유발한 소화불량으로 한 끼 정도 건너뛰면 깔끔하게 해결되는 증상에 불과하다.


나는 꼬맹이 때부터 자주 배가 아팠다. 지금도 아무 이유 없이 배가 아플 때가 많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네 식구(나, 신랑, 큰 꼬맹이, 작은 꼬맹이) 중 나만 아픈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히려 먹는 걸 조심하는 건 난데, 늘 탈이 나는 건 나다.

이런 장(腸) 차별적인 상황에서 늘 혼자 투병하고 혼자 분개한다.

'아니 왜 다 같이 먹었는데 나만 아프냐고!!!'


초조하다. 이마와 두피의 경계선에 살짝 식은땀이 배어 나온다.


그나마 음식을 먹고 배 아픈 경우면 억울함이 덜하다.


싸르르르 아랫배에서 익숙한 통증이 느껴진다. 또 시작이다.

'익숙'이라 표현했지만 평생 익숙해지지 않는 과민한 나의 대장..


무언가 또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나의 의식이 인지하기도 전에 이렇게 가끔 나의 장이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민한 나의 대장은 질병을 넘어 신기(氣)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렇다. 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앓고 있다. 무려 30년 가까이 투병 중이다.

혹시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모르는 행복한 분들을 위해 쉽게 표현하자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장 트러블(腸 trouble)'을 의미한다. 과민한 대장은 체한 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영역이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 주목받는 상황,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 대장의 과민함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는 다양하다. 과민함은 긴장의 정도와 비례한다. 긴장도가 높을수록 과민함은 증폭된다.

그런데 이제는 긴장해서 과민해지는 건지, 과민해서 긴장을 하는 건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선후관계가 모호해질 지경이다. 삼십 년 정도 과민한 대장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 보니 이제는 인과관계를 명쾌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혼자 산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갈 거 아닌 다음에야 현대사회에서, 특히 직장생활은 매일매일 긴장의 원투 펀치가 일상이다. 그리고 긴장이 유발되는 상황들은 그 사람에 대한 소소한 평판들이 결정되는 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보고를 하러 가기 전에도 싸르르, 어려운 회의 자리를 가게 돼도 싸르르, 친하지 않은 동료와의 어색한 점심 자리에서마저도 나의 과민한 대장은 어김없이 발동한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화장실을 다녀오면 되잖아!

훗..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가소롭다.

화장실? 안 다녀왔을까 봐?

고시 2차 시험 때 고사장 입실 후 시험 시작 전 1시간 동안 화장실을 11번 간 적도 있다. 남들은 요약노트에 코를 박고 있을 때 나는 교실, 화장실, 교실, 화장실,, 혼자 뫼비우스의 무한루프를 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교시 내내 배 속에서 혼자 불꽃축제가 벌어지는 게 과민한 대장의 주인이 겪어야 하는 무게이다.


과민한 대장은 언제나 나의 발목에 묶인 긴 사슬과 같았다.

세상을 향해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진취적으로 포효하기에는 내 속에 있는 통제 불가능한 시한폭탄의 존재가 너무 컸다. 아이돌 스타의 숨겨둔 자식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이른 아침 출발하는 엠티 신청을 주저하게 만들었고,

(아침은 과민함이 피크를 찍는 시간대이다)

마음에 드는 소개팅남의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는 호의에 철벽을 치게 만들었고,

(얼른 지하철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단 말이야)

사회 초년생 시절 간담회 사회를 보라는 과장님의 지시가 사형선고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사.. 사.. 사회라뇨? 제가요??)


예전에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머~ 내 병이잖아! 번듯한 이름으로 기사에까지 나오는 모습에 반가워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읽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원인과 증상 등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생명에 지장은 없으나 삶의 질을 매우 떨어뜨린다'라는 마무리 말에서 '객관적인 어조로 남의 말하듯이 적었지만 이 기자는 분명 과민성 대장증후군 당사자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진정 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거 같다.

그렇다. 생명에 지장은 없다. 하지만 사회적 매장을 진심으로 걱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늘 함께한다.


아.. 과민한 나의 대장만 아니었다면..
나는 얼마나 다채롭고도 화려한 삶을 살았을까..

젊고 어렸을 땐 그런 원망 섞인 상상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민한 나의 대장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다.


과민한 나의 대장 덕에 양다리, 문어다리는 상상도 못 했고 우려하는 거보다 정갈한 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시험이든 1교시는 다리를 최대한 꼬고 엉덩이는 의자에 반쯤 걸친 상태로 시험을 봐야 했기에 최대한 완벽한 시험 준비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고 덕분에 우수한 학업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 속은 긴장과 소심함에 쭈구리가 되어 있지만 보기보다 진중하다는 인물평을 받기도 하고, 사람을 가려 만나는 탓에 의도치 않은 신비주의 아우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웃사이더의 속사포랩 같은 주기도문과 자발적인 회개로 종교에 대한 끈을 놓지 않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늘 절절한 겸손함을 마음 깊이 간직하게 하였다.

그렇다. 과민한 대장은 나에게 이불 킥 흑역사만 안겨준 것은 아니다.


나에겐 과민한 대장이지만 누군가에겐 가난한 어린 시절, 스스로 부족하다 느끼는 학벌이나 집안, 쉽게 말하기 어려운 이런 저런 질환 등.. 다양한 그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그것 때문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그 덕에 얻은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분명히!!


*출처: 그림왕 양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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