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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고즈넉 Nov 22. 2022

엄마, 난 타코야키가 아니라 탕수육이었어

다음주 일본으로 출장을 갑니다.

코로나로 일시 멈춤 되었던 행사, 출장 등이 슬슬 재개된 덕에 이번에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

도코에 업무 관련 지원센터를 새로 열고, 현지 진출기업 간담회를 하고 오는 2박 3일의 단출한 일정이다.


마지막으로 간 해외출장이 둘째 가지기 전에 갔던 광저우 출장이었으니 근 9년 만의 해외출장이다. 둘째를 가지고는 해외출장을 피하였고, 낳고 나서는 휴직을 했고, 복직을 한지 얼마 안 돼서 유학을 다녀오고, 다시 잠시 휴직을 하고 돌아와 보니 코로나로 인해 구한말 쇄국정책에 버금가는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는 사이 9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진정 참으로 오랜만에 가는 출장이다.

다행히 복잡하게 꼬인 일을 풀거나 중요한 결정을 하러 가는 무거운 출장은 아니다. 그래서 오랜만의 출장이지만 준비할 일이 많지는 않다.


일본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워낙 가까운 나라이기도하여 코로나 전에는 일본 여행을 가볍게 많이들 갔었다. 특히, 내가 한창 놀 나이인 20대 때는 겨울연가의 욘사마 열풍으로 이제 막 한류가 꿈틀대는 정도였고, 오히려 일본 가요, 드라마, 영화, 소설이 지금보다 훨씬 힘을 내던 때라 무박 3일 도깨비 여행 같은 게 엄청 유행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오늘 공교롭게 이 단어를 두 번이나 쓴다) 일본을 간 건 딱 한번뿐이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가는 도쿄, 교토, 후쿠오카 같은 데가 아니었다.


육하원칙에 맞춰 일목요연하게 써본다.

 누가: 나와 엄마는

 언제: 근 20년 전, 나는 솜털 뽀얀 대학생이고, 엄마는 아직 쇼핑 활력이 충만하던 시절

 어디서: 일본 아키타 현으로

 무엇을: 일본 여행을

 어떻게: 단체 성지순례팀에 끼여

 왜: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다녀왔다.


아~ 다시 생각해도 참 건전하다. 친구와 신주쿠 거리의 불타는 밤도 아니고, 엄마를 비롯한 다른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로 다녀온 게 일본 여행 이력의 전부이다. 하지만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이었고, 성지순례라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재미있게 다녀왔었던 여행이었다. 그때는 전혀 인식하지 않았지만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어렸고(20대 초반), 엄마는 참 젊으셨다.(40대 후반) 그래서 더 아련하고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엄마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한 움큼 보태서 이 일본 여행 이야기를 불쑥불쑥 꺼내시곤 한다. 해가 갈수록 마음에 더 남으시는지 그 빈도와 농도가 더해지고 있다. 큰 일도 아니었다. 그냥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그냥 그런 일이었는데 엄마 마음에 왜 그렇게 진하게 맺혀있는 건지 모르겠다.


성당으로 순례를 다녀온 후 단체로 근처 쇼핑몰을 갔었다. 당시 쇼핑할 때 날아다니셨던 엄마 덕에 우리는 정신없이 쇼핑몰을 구경했었다. 그러다 쇼핑몰 뒤편에서 타코야키 파는 곳을 발견했다. 타코야키는 일본 만화에 간식으로 자주 등장한다. 틀에 문어 한두 조각을 넣고 반죽을 부은 후 송곳 같은 꼬챙이를 가지고 빠른 손놀림으로 동그란 틀 안에 밀어 넣어 굽는다. 만화에서 볼 때마다 늘 그 맛이 궁금했었다. 요즘은 국내에도 타코야키 파는 노점이나 전문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설혹 있었다 해도 일본 현지의 타코야키를 맛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타코야키 만드는 짱구    *출처: 짱구는 못 말려


내가 눈을 반짝이며 엄마에게 사 먹자고 했다. 얼마였는지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이걸 꼭 먹어야겠냐는 눈빛으로 머뭇머뭇 주저하셨다. 나는 물론 일본 현지의 타코야키를 정말 맛보고 싶었다. 그런데 성지순례라 다른 여행상품과 달리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건지 매 끼 식사가 정말 잘 나왔다. 배가 출출했다면 나도 사달라고 엄청 졸랐을 거다. 그런데 배도 좀 부른 상태였고 엄마의 반응도 소극적이셔서 사 먹자고 마구 조르거나 하진 않았다. 엄마와 침묵 속에 타코야키를 만드는 현란한 꼬챙이 춤을 잠시 구경하다가 집합시간이 다 되어 흐지부지 그냥 돌아섰었다.


*출처: 푸디 트랩(YouTube)


나에게 타코야키는 크게 서운하거나 속상한 감정이 전혀 없는 기억이다. 만화에서 보던 타코야키를 실제로 봤고 그래서 먹어보고 싶었지만 이러저러한 상황 때문에 안 사 먹었다 정도이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도 그때 타코야키를 사주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고 속상해하신다. 엄마 기억엔 내가 무척 먹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 기준에서는 길에서 파는 탁구공 만한 풀빵 몇 개에 그 돈을 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 당시 진심으로 돈이 아까워서 안 사주셨나 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마음 아파하실리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돈 몇 푼 아깝다고 사주지 않고 그냥 돌아섰던 게 마음에 걸리시는 거다.


그때 그 다코야킨지 뭔지 그거 못 사준 게
아직도 애 돌아..


엄마의 회한과 한탄에 젖은 타코야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손까지 내저으며 괜찮다고 거듭 말씀드린다. 엄마는 나의 그런 반응을 볼수록 내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하는 거라 생각하시는지 한층 더 속상해하신다. 그럴 때마다 '엄마, 나는 타코야키가 아니라 실은..'이라는 말이 편도선 근처에서 맴돌다가 꿀꺽 삼켜진다. 이런 부류의 추억들 중에 내가 정말 속상해하는 일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였다. 첫째에 비해 둘째와 관련된 행사는 가족들에게 그 감동과 의미가 상대적으로 퇴색되기 마련이다. 나의 졸업식 또한 그랬다. 아빠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냥 출근을 하셨고, 오빠는 학교에 갔고, 그래서 엄마만 졸업식에 오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더 한 경우 삼촌, 고모까지 와서 북적북적 가족들에 둘러싸인 친구들에 비해 나의 1인 축하단은 매우 조촐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당시 똘똘한 꼬맹이였던 나는 그런 거에 속상해하지 않았다.

문제는 졸업식 후였다.


졸업식이 무엇이냐! 졸업식 후 가족 식사는 짜장면에 탕수육이 국룰 아니던가?

지금은 탕수육을 짜장면 세트에 묶어 매우 흔하게 먹는다. 하지만 당시 우리 집에서 탕수육은 아주 드물게 가끔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똘똘한 꼬맹이였던 나는 졸업장 외에도 개근상과 1등에게 주는 성적 우수상까지 받아 1인 축하단의 기를 바짝 올려드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연히 졸업식이었다. 비록 축하단은 1인이었지만 나의 소중한 첫 졸업식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탕수육을 먹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 생각은 아니셨던가 보다. 엄마랑 나랑 둘이 먹는데 탕수육은 양이 너무 많다는 논리로 탕수육을 시켜주지 않으셨다.


나는 그게 지금까지도 너무너무 서운하고 속상하다.

나는 충분히 탕수육을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고, 먹다 남을지언정 오늘 하루는 나를 위해 탕수육을 시켜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바랬다. 그런데 엄마는 탕수육을 사달라는 나를 약간은 엄하게 꾸짖듯이 단념시키셨던 걸로 기억한다. 누구는 패밀리 레스토랑(당시 우리 동네에 '코코스'라고 국내에 처음 상륙한 미국발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이 있었다) 가서 스테이크를 먹는다는데 나는 탕수육 하나 못 먹는 건가?라는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나아가 이 집에서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까지 들었다. 그래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에는 한 많은 졸업식 탕수육으로 남아있다.


엄마에겐 타코야키가, 나에겐 탕수육이 각자의 기억 속에 그렇게 아프게 새겨져 있다. 지금은 타코야키도 탕수육도 내 돈으로 배 터지게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 졸업을 맞은 꼬맹이에게, 엄마와 첫 해외여행을 온 딸에게 사주지 못 한 그것은 지금에 와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에 안타까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꼬맹이들이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를 때 심히 번민한다. 혹시 내가 또 다른 탕수육을 아이에게 새기는 건 아닌지, 내 가슴에 또 다른 타코야키로 남는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거기에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보이는 태도가 아이에게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질까 봐 걱정도 된다. 우리 엄마도 그 때 내게 깊은 마음의 웅덩이를 만들 생각으로 탕수육을 안 사주신 건 절대 아닐 테니까.


이제 와서 엄마께 탕수육 이야기를 꺼낸다고 타코야키의 안타까움이 묻힐 거 같진 않다.  

그냥 이번 출장 가서 그 타코야키 엄청 많이 사 먹고 왔다고 말씀드려야겠다.


오늘 저녁은 탕수육 '대'자 같은 '소'자 하나 시켜야지     *출처: dodnet.tistory.com/1431



* 대문사진 출처: www.ycrowdy.com/r/hotsuje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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