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하라. 두려움 없이. 부끄러움 없이.
지루하면 죽는다
조나 레러 지음, 이은선 옮김
윌북, 2023
비디오 스타는 라디오 스타를 죽였고,
유튜브 스타는 TV 스타를 죽이고 있다.
이제는 10분짜리 동영상도 길게 느껴지는 세상.
사람들은 30초 내외의 쇼츠에 길들여지고 있다.
비밀이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표지의 카피는 '지루하면 죽는다'라는 제목과 함께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문학작품이 아닌 실용서는 오랜만에 읽어본다.
다행히 책을 보며 큰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지금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구태의연함을 날려버릴 해독제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을 펼치시라.
자신만의 미스터리 병법을 갖추게 될 것이다.
책표지 바로 뒷장 하단에 있는 문구이다. 제목에 혹해 책을 집어들어 만지작 거리는 독자를 계산대로 몰고 가보겠다는 의지가 강력히 담겨있다.
이 한 권으로 자신만의 미스터리 병법을 갖추려는 건 욕심이지 싶다.
이 책이 마법서는 아니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창작자의 필독서까지는 모르겠고 생각을 깨우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는 있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당연한 결말에 환호할까? 골리앗을 이긴 다윗에 환호할까?
언제나 승리하는 팀의 경기를 손에 땀을 쥐며 보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긴장관계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분명 실력 있는 선수가 보상을 받길 바라지만, 뜻밖의 반전이나 예상 밖의 승리가 주는 짜릿함을 갈망한다.(p55)
1.5미터가 살린 미국 야구
1890년대 미국 야구는 투수의 역량이 팀의 우승으로 바로 직결되었다. 훌륭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그 팀이 거의 100퍼센트 승리했다. 이러한 확실성은 관객들의 흥미를 떨어뜨렸고 관객 수가 급감하면서 경기 수익성, 구단의 존속문제로까지 이어졌다. 고심하던 미국 야구계는 1893년 투수와 홈플레이트 사이의 거리를 17m에서 18.5m로 늘리게 된다. 겨우 1.5m 차이이지만 이 간격이 실력과 운의 균형을 완벽에 가깝게 맞추게 된다. 이 규칙 변화가 근대 야구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결과를 단정할 수 없는 최적의 미스터리 지점을 찾은 덕에 당시 막 등장한 야구라는 신생 스포츠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으로 자리잡게 된다.
야구의 역사는 이 미스터리를 사수하려는 노력의 역사였다고 봐도 무방하다.(p57)
몇몇 스포츠가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가장 실력 있는 선수를 선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제한하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p60)
인간의 호기심과 불확실성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는 이상적인 미스터리 박스를 찾는 과정은 스포츠, 예술, 문학, 방송 등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난다.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영화, 음악, 스포츠, 그리고 명작이라 불리는 건축물, 미술작품 등
결론적으로는 모두 이상적인 미스터리 박스를 훌륭하게 만들어낸 결과들이다.
저자는 인간이 미스터리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러한 문학적, 예술적, 의학적 사례와 근거로 뒷받침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시된 다양한 사례와 근거들은 매우 흥미롭다.
다만, 대부분 미국 중심의 서술이기에 시, 영화, 드라마, 노래 등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을 때 한국 사람인 나는 술술 읽히지 않는다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러한 미스터리에 대한 탐구 뿐만 아니라 의외로 내 눈길을 끈 건 책 후반부이다.
인간의 삶에 왜 미스테리가 필요한지, 미스테리가 인간의 삶과 교육에 어떤 시사점을 가지는지를 보여준다.
뉴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인 제임스 카스는 세상에는 한계가 있는 게임과 한계가 없는 게임, 이렇게 두 종류의 게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한계가 있는 게임은 전문 선수들이 뛰는 프로야구, 한계가 없는 게임은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하던 동네야구로 비유한다.
한계가 있는 게임 vs. 한계가 없는 게임
한계가 있는 게임은 흔히 볼 수 있다. 카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건 규칙과 규정을 따라야 하고, 막판에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결정되는 게임이다. 이런 게임이 한계가 있는 이유는 참가자들의 목표가 승리이기 때문이다. 한계가 있는 게임에는 엄격한 규칙과(이걸 어기면 부정행위다) 명확한 승리의 요건이 있다. 요건을 충족시키면 게임은 끝난다.(p218)
반면 한계가 없는 게임은 동네 야구에 가깝다. 이 게임의 유일한 목표는 플레이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한계가 있는 게임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지만, 한계가 없는 게임의 참가자들은 종종 그 규칙을 무시해가며 게임을 계속한다. 예컨대 동네 야구의 경우, 경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선수들이 서로 팀을 바꾸곤 했다. 플레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다.(p219)
그는 플레이 자체를 위해 임하는 게임이 가장 훌륭한 게임이며, 그 안에서 참가자들의 진가가 가장 크게 드러난다고 확신한다.
인생을 한계게임으로 볼 것인가? 한계없는 게임으로 볼 것인가?
삶은 한계게임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한계없는 게임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모두들 대답은 한계가 없는 게임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특히, 우리의 교육 현실은 너무나도 명확히 한계게임으로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내가 출판사 마케팅팀이었다면 오히려 이러한 시사점을 강조하는 홍보문구를 고민했을 거 같다.
카스의 설명에 따르면 한계가 있는 게임을 통해 자존감을 구축하는 사람은 평생 실망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아무리 승리를 거두어도 부족하거든요."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 한계 없는 게임과 미스터리가 필요한 이유다. 한계 없는 게임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고 오로지 플레이어만 존재하므로 그 구조를 통해 경험 자체를 즐기며 현재를 사는 법을 배울수 있다. 중요한 건 이기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겹겹이 싸인 베일에 감탄하며 미지의 세계를 즐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카스는 말한다. "동네 야구를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점수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 어린 나이에도 진짜 재미가 뭔지 알았거든요. 이기는게 아니라 게임 자체라는 걸."(p240)
권태로부터 해방되면 그야말로 이루지 못할 게 없다. 그것이야말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비결이다.
호기심은 권태의 해독제이다.(p267)
앞으로 AI가 발달할수록 정답을 찾는 능력은 AI보다 인간이 뛰어나기 힘들 것이다.
AI시대를 대처하는 교육의 방향성은 결국 정답없음을 즐길 줄 아는 능력, 미스테리를 즐길 줄 아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쪽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