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 MICKEY7

by 조고즈넉

더 이상 소모품으로서의 삶을 거부한다.

응, 내가 본질이야.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배지혜 옮김

황금가지, 2022


# 생쥐인간 전래동화의 유니버샬 고급 버전

어려서 읽었던 전래동화 중에 이 이야기는 도대체 왜 만들어진걸까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인간의 손발톱을 먹은 쥐가 그 사람과 똑같이 변신하여 그 사람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그 전래동화는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걸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갑자기 나타난 나와 똑같은 도플갱어 생쥐인간이 나를 왕따시키고 반미치광이로 만들어 내쫓아버린다는 공포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자르고 난 손발톱을 잘 치우자. 방 청소를 잘하자..의 과격버전으로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옛날에 손톱깎기도 없었을 테고 커다란 가위같은 걸로 손발톱을 잘랐다 하는데 한번 자르면 손발톱이 사방으로 튀였겠지. 사방으로 튄 손발톱이 꼴 보기 싫었던 어느 엄마가 갱년기의 힘을 빌어 저주에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거 아닐까. 음 신분제 사회였으니 엄마가 아니라 누구네 집 언년이나 삼월이일 수도 있겠다.


이 생쥐인간 전래동화의 유니버샬 고급 버전이 바로 미키7이라 하겠다.


# 그 생쥐인간이 현실화된 먼 미래의 이야기

탈도 많고 말도 많던 지구는 결국 기후문제와 갈등, 전쟁으로 박살이 났고 인류는 각자 살 길을 찾아 지구 밖 먼 행성으로 뿔뿔히 흩어진다. 지구에서의 인구밀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무리만이 살아남아 고군분투 끝에 각자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여 살아간다. 첫 개척이 역사서에 기록되고도 몇 백년이 지난 어느 시점이다. 미키가 살던 미드가르드 행성에서는 다시 또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떠나는 선발대를 모집한다.


선발대를 싣고 가는 우주여행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우주선의 공간적, 물리적 한계로 인해서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선별하여 싣고 가야 한다.

특히 인적자원은 개척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자원이면서 또 유한한 자원을 무섭게 소비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조종사, 경비대, 의료진, 연구자 등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만을 태우고 그 외 인력은 미래 개척민 확보를 위해 배아상태로 냉동하여 싣고 가야 할 정도로 개척활동은 녹록치 않다.

이렇게 엄선된 선발대 중에 "익스펜더블"이라는 자리가 하나 있다.


개척지로 향하는 긴 우주 여행동안 선발대의 존폐를 위협할 사건과 사고는 항시 도사리고 있다.

어렵게 도착한 개척 행성에는 어떤 미생물과 바이러스, 토착생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치사량의 우주방사선 노출, 개척지 바이러스에 맞설 예방백신 개발을 위한 인체실험, 상상 속에서도 그려본 적 없는 기괴한 토착생명체에게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길 위험..

이 모든 위험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갈아넣을 인간 소모품이 바로 익스펜더블이다.


바이오 프린팅 된 육체에 죽기 전까지 백업된 인격정보를 투입하여 만들어지는 복제인간

그게 바로 익스펜더블이다.


# 테세우스의 배.. 복제된 미키는 미키인가? 미키가 아닌가?

선발대 출발 전 미키는 익스펜더블 교육을 받으며 교관인 젬마와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맞아요. 테세우스는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전 세계를 항해했어요. 그동안 배 여기저기가 망가지고 뜯어져 배를 고쳐야 했어요. 몇 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원래 선체를 구성했던 목재는 모두 교체되고 없었어요. 이 경우에 테세우스의 배는 출발할 때와 같은 배일까요? 아닐까요?"
"명청한 질문이네요. 당연히 같은 배죠."
"좋아요. 만약 배가 푹풍을 만나 산산조각이 나서 다시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완전히 새로운 배를 지어야 하면요? 그래도 여전히 같은 배인가요?"
"아니요. 그건 완전히 다른 경우죠. 배 전체를 다시 지었다면 테세우스 2호가 되겠죠. 후속작인 셈이니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세우스가 전 세계를 항해하는 긴 여정을 떠난다. 여정 중 망가진 선체를 부분 부분 수리하다 몇 년 후 원래 선체를 구성했던 목재가 모두 교체된다면 이 배는 기존 배와 같은 배인가? 아닌가?

만약 출항 전 배가 산산조각이 나 완전히 새로운 배를 만든다면, 이 배는 기존 배와 같은 배인가? 아닌가?

젬마는 그 배도 이 배도 저 배도 다 같은 배라고 말한다.

"이 임무를 맡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에요. 당신이 바로 테세우스의 배라고요. 사실 우리 모두 그렇죠. 지금 내 몸을 이루는 세포 중에서 10년 전에도 존재했거나 몸의 일부였던 세포는 없어요. 당신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 지어져요. 한 번에 한 부분씩 수리되는 셈이죠. 당신이 이 임무를 맡게 된다면 당신은 한꺼번에 새로 지어지는 셈이에요. 하지만 결국 똑같지 않나요? 익스펜더블이 재생 탱크에서 나오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천천히 진행될 일을 한번에 처리하는 셈이에요.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진짜 죽은 게 아니에요. 비정상적으로 빠른 리모델링을 할 뿐이죠."
(p132-133)


# 그런데.. 배가 여기에 또 있는데요? 미키7과 미키8의 공존

개척지 탐험에 투입된 미키7(미키1이 본체, 미키7은 여섯번째 복제된 미키)은 깊은 동굴로 실족하고 상부에 사망으로 보고된다. 다음날 우여곡절 끝에 본부로 돌아온 미키7은 자기 침대에서 자고 있는 미키8을 마주한다.


젬마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출항 전 배가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새로 지어진 또 다른 배의 공존.

이 때 두 배가 동일한 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동 시간에 고유한 주체가 복수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상식 하에서는 이 두 배가 같은 배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복제인간을 혐오하는 사령관때문에 미키7과 미키8은 공존 사실을 숨기게 된다.

하지만 20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하루종일 좁은 베이스캠프에서 지내는 상황에서 그 비밀은 오래 가지 못한다.


#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배는 제 배가 아닌 거 같은데요?!

선발대에서 불가촉천민 대우를 받으며 6번이나 죽어야 했던 미키7.

일부 사람들은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는 개척생활에서 익스펜더블은 영생을 보장받은 거 아니냐며 미키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6번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겪고 기억하는 미키는 혼란스럽다. 이게 과연 영생이라 볼 수 있는가?

더구나 눈 앞에 있는 미키8을 보며 제대로 현타가 오게 된다.

미키8과의 공존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한 명씩만 대외활동을 하게 되고,

각자 다른 경험과 기억을 쌓게 되면서 그러한 혼란은 더 심해진다.


좋다. 에잇은 나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p364)

# 두려움.. 시간.. 미키7.. 더 이상 소모품으로서의 삶을 거부한다.

토착 생물 클리퍼의 제거를 위해 함께 투입된 미키7과 미키8.

미키7은 조종사이자 오랜 친구이자 넘사벽 엄친아 베르토가 클리퍼에 대해 느꼈던 두려움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개척지 정착에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클리퍼와의 공존을 도모한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쓰고 버리고 다시 쓸 수 있는 부속품으로 취급되던 자신의 역할을 거부하고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키맨(keyman)으로 거듭난다.


"사이클러에 들어갈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숨긴 건 나, 마샬, 그리고 너 자신한테 인정할 수 없어서지? 밖에 널 공포에 떨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던 거야"(p362)
처음 개척민들이 착륙했을 때 이들은 과학 기술이나 문화 면에서 미개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실제로 활용하는 능력은 농업이 발달하기 이전의 인류보다 크게 앞서지 못한 상태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다. 내가 본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원래 인간이 무기와 거주지, 플리터와 우주선을 발전시키게 된 이유가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너무 서툴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p372)
이들의 만남이 왜 다른 거점과는 달랐는지까지 역사책에서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설은 세워 볼 수 있다.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개척민들은 끊임없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성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 시간이 열쇠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p372)


# 우리가 네 부속물을 파괴했다. 네가 본질이야?

그 동안 미키7은 그저 미키7일 뿐이었다.

시계 속 건전지처럼 언제든 너무나 쉽게 미키8이나 미키9으로 대체되어질 존재.

잠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미키 중 하나.

미키1이 선택한 길이었다.


이제 미키7은 다른 길을 선택한다.

부속물인지 본질인지를 묻는 클리퍼의 질문에 미키7은 본인이 본질이라 대답한다.

더이상 소모품으로 살지 않겠다는 결심의 순간이다.


미키7은 허울뿐인 영생을 버리고 스스로 고유성을 얻는다.


[Mickey8]: 응, 내가 본질이야.(p370)



미키7을 원작으로 한 봉감독의 영화 미키17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었을까.

기대보다 저조한 흥행성적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이번 주에 간판을 내린다고 한다.

미키17이 넷플에 나오면 꼭 봐야지.

궁금하다. 봉감독은 원작 속 미키7의 본질찾기를 어떻게 해석했을지..

그리고 생각 좀 해봐야겠다. 수많은 월급쟁이 속 하나인 나의 본질은 어떻게 찾아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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