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은 밝히지 못 한 거 같습니다.
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약국
고혜원
한끼, 2025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난 뒤에 읽어서 그런가?
아쉽지만 나에겐 드라마틱한 감동도 먹먹한 울림도 없었다.
다만, 어둔 밤 길고 긴 그 시간이 적적하다 느껴질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 하다. 깊은 밤 혼자라는 외로움이 쓸쓸함으로 번지는 파장을 잡아주는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한다.
이 책을 읽고 책 속의 야간약국이 마치 우리 동네 어딘가에도 존재할 거 같은, 그래서 이 밤 홀로 있는 내 곁을 함께 하고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상당히 성공적인 투자라 할 듯 하다.
그냥 가볍게 읽기에 나쁘지 않다.
# 어디서 본 듯한 이 기분은.. 그냥 내가 예민한 탓인가?
몇년 전부터 이런 따뜻한 감성의 일러스트를 표지로 쓰는게 유행인 거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의 일러스트 표지는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으로 처음 접했다. 큰 기대없이 펼친 책에서 튀어나오는 매력적인 인물들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거 같다. 김호연 작가의 위트에 감탄하며 '망원동브라더스', '불편한 편의점2'도 일부러 찾아 읽었던 경험이 있다.
(역시 전편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듯 하다. 불편한 편의점2는 기대보단 좀...)
그 때의 좋았던 기억 때문일까.
다시 한번 일러스트에 혹해서 이 책을 골라보았다.
그런데.. 좀.. 다소 많이 아쉽다.
악의없이 그냥 느낀 바로만 적는다면..
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약국은 불편한 편의점의 포맷을 상당히 많이 차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간적 배경이 편의점에서 약국으로,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이 약국을 찾는 손님으로 바뀐 점..
시간적 배경도 편의점이라 24시간 운영되고 야간에 운영하는 야간약국이라 밤 시간대가 자주 나온다는 점도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사연도, 인간적인 매력도, 미스테리로 깔고 가는 야간약국 약사의 과거사도 생각보다는 많이 밋밋하고 싱거웠다.
더구나, 최근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오타를 내 막눈으로도 2군데나 잡았다. 편집자분은 나보다 좀 더 막눈이셨나보다. 오타를 정겨움으로 넘기려 마음 먹었으나, 중간 중간 수동태와 능동태가 잘 못 씌여진 듯 한 눈에 확 읽혀지지 않는 몇몇 문장들이 작품의 몰입을 방해한다. 그래서 아쉽다.
#1_언젠가 그 방법도 내성이 생길지 몰라요. 그러면 그땐 다른 방법이 필요한가 보다 해요.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상습적인 두통, 잦은 체기와 배탈, 원인모를 불면증..
무쇠팔 무쇠다리가 아닌 다음에야 내 몸을 괴롭히는 만성질환 한두가지 쯤은 있다. 몸에 문제가 있는건지, 정신에 문제가 있는건지 불확실하지만 통증과 불편함만은 확실하다.
야간약국을 찾는 손님들도 그러하다. 익숙해진 통증과 불편함에 적극적인 치료 의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야간약국 약사 '보호'(주인공 이름이다)는 그러한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법을 찾아주고자 애쓴다.
여기서 끝났으면 하수였겠지만, 보호는 다르다.
지금은 최선의 방법이지만 그 방법이 영원할 수 없음을, 그리고 좌절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언젠가 그 방법도 내성이 생길지 몰라요. 그러면 그땐 다른 방법이 필요한가 보다 해요.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p.104)
#2_그러니까 고맙다고 해줄래?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야간약국의 첫 손님이였던 지환에게 보호는 잠시 '보호자'가 되어준다.
다쳐도 늘 괜찮다고만 해야 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지환은 보호에게 뒤늦게야 보호자다운 말을 듣게된다.
아파도 다쳐도 늘 괜찮아야 했던 상황들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감정의 통점도 두껍게 덮어버린 거 같다.
"네가 뚫은 이 상처가 너를 어떻게 만들지도 모르면서 괜찮다니. 어쩜 그렇게 겁도 없이. 오히려 잔뜩 겁내고 엄살을 떨어, 그래야 다들 네가 다쳤다는 걸 알아줄 거 아냐."
"글쎄요. 약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진 않은데요."
"다친건 약한 게 아니야.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 거지.(p191~192)
#3_결국 다시 돌아왔으니, 그건 '도망'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돌아오면 도망도 여행이 될 수 있다. 이 문장을 보고 누군가에게 도망이라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도망이 될지, 여행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열린 결말인 것이다.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도망이 아니라 여행일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길어지는 여행은 미쳐 돌아오기도 전에 도망이라 단념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
누군가에게는 용기로 보이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도망이었다. 하지만, 예서는 끝내 그 도망에서 다시 돌아왔다. 결국 다시 돌아왔으니, 그건 '도망'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p.24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