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 중에도 동해바다 다녀온 여행에 미친 여자의 여행이야기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참 좋아했다. 먹고살기 바빴던 부모님은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고 가끔 친척집에 놀러 가는 것이 그나마 나에게는 여행이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풍경들과 낯선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괜히 설레고 좋았다.
중학교 때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책을 읽고 나서 한비야 씨가 나의 멘토가 되었다. 언젠가 나도 한비야 씨처럼 꼭 세계여행을 해야지하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 드디어 그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꿈꾸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첫 해외여행을 배낭여행으로 게다가 여자 혼자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용감했다. 영국으로 입국했는데 때마침 그때 알카에다의 폭탄테러로 영국의 모든 지하철과 버스가 중단되고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가족들은 뉴스만 보고 나를 엄청 걱정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의 나의 룸메이트도 너는 영어도 못하고 돈도 없는데 도대체 뭘 믿고 여기까지 왔냐며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엄청 혼을 냈다. 그렇게 좌충우돌
했던 첫 해외여행이 지금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실 내가 이토록 여행에 목메개 된 데는 20대 시절의 사법고시 공부가 한몫했다. 22살부터 27살까지 나의 꽃다운 시절의 대부분을 어두컴컴한 고시원과 독서실에서 보냈다. 자발적인 선택이기는 했지만 피 끓는 20대의 놀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법고시 1차 시험을 합격하고 코레일 내일로 기차여행으로 강릉부터 순천까지 전국일주를 하기도 했다.
법원행정고시와 사법고시의 연이은 시험 속에 점점 나는 지쳐만 갔고 결국 무시무시한 우울증이 나를 찾아왔다. 시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고민 끝에 여행가이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가이드일은 정말 나에게 잘 맞았다. 일하는 것 같지 않고 매 순간순간이 여행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장거리 연애 끝에 지방에서 남편과 결혼하게 되면서 행복했던 여행가이드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매주 주말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던 내가 집돌이 남편을 만나 타지에서 집에만 있으려니 정말 좀이 쑤셨다.
외출하자고 남편을 조르고 눈치를 보는 일도 지겨워
운전을 배우고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를 갖기 전에 해외여행 한번 다녀오자고 남편과 실랑이하는 중에 운 좋게 회사 연수로 오스트리아에 가게 되었다. 출국 전에 테스트기를 했고 임신이 아니길래 편안한 마음으로 비행기도 타고 매일 저녁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아뿔싸 여행 후 배란일을 받기 위해 찾았던 산부인과에서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장난으로 태명을 마살이로 하자고 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유럽여행을 다녀온 엄청난 역마살의 아이라고
걱정했지만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나 역시 건강했다. 도우미이모님이 오시는 마지막날 나는 당분간 여행을 하지 못할 것을 생각해 과감하게 영덕으로 떠났다.
왕복 5시간 운전에 젖가슴은 퉁퉁 불었지만 잠깐 본 바다로도 행복하고 힐링이 되었다. 이 정도면 내가 여행에 얼마나 진심이고 여행에 미친 여자 인지 알겠는가?
앞으로 내가 들려줄 여행이야기 함 들어보실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