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발견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따라 영상을 보다 '유 퀴즈 - 나영석 PD 편'을 보게 되었다. 국내 대표 PD 답게 툭툭 내뱉는 말에서도 그의 저력과 내공이 묻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대중문화 스타가 있다면?"
이 질문에 나영석 PD는 강호동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 녹화하면서 형이 노랗게 분장하고 코끼리 코를 도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형이 옛날엔 뭐 했지? 아, 나랑 1박 2일 했지.
그전엔 뭐 했지? 아, 씨름 선수였지.
천하장사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연예계에 입문해서 고생도 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국민 MC가 되셨죠.
예전엔 대단한 사람이 대단해 보였는데, 요즘은 오랫동안 꾸준한 사람이 더 대단해 보여요.
저렇게 많은 부침도 있고 힘든 시간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이전 같았으면 그냥 "그래 맞지, 그치"하고 단순히 넘겼을 말. 이번에는 내 주변의 한 사람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회사에서 일하는 보통의 직장인이자, 영화 칼럼니스트, 작가, 강연 초청 강사로도 활동 중인 나의 지인. 그와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제법 큰 대학 연합 동아리에서 알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동아리 회장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언변이 화려하다거나 눈에 띄는 행동과 제스처를 많이 하는, 유별나게 튀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또 하는 일에 성실했던 선배였다.
영상 또는 영화나 문화 관련 전공도 아닌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나름 이 영화 블로그, 평론 계에서 눈에 띌 수 있었던 건 아마 그의 꾸준함이 가져다준 결과가 아닐까. 대학 졸업 즈음에 우연히 수강한 영화 관련 교양수업을 시작으로 지인은 어느덧 영화에 푹 빠져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기록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기까지 지속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하루도 빠짐없이 영화 리뷰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영화 마니아들이 한 번쯤은 들르는 인기 블로그가 되어 있었다. 유려한 문장도 아니고, 처음엔 눈에 띄는 글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특유의 성실함은 그의 글솜씨, 말맛을 나날이 늘게 했다. 마치 잘 되는 가게가 소문이 난 뒤 계속 사업을 확장하듯, 블로그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로 플랫폼을 넓히더니, 어느새 몇 년 전부터는 영화 시사회에 초청받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언제 이렇게 작가도 되고, 나름 유명인이 됐지? 오빠 보면서 느끼는 건 꾸준함이 진짜 큰 재능인 것 같다는 거예요.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혼자서 계속 뭔가 하더니 결국 작가가 되었잖아요. 요즘엔 재능 있는 사람보다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더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좋아하는 걸 꾸준히 기록하고, 취미에서 더 나아가는 그게 진짜 대단해요.”
그러자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수업 듣고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기록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
강호동도, 나영석 PD도, 그리고 내 지인도 지금의 모습만 보면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한결같이 꾸준히 노력하고 자신을 발전시킨 시간이 있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해본 사람은 안다. 수많은 장애물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첫걸음은 내디뎠지만 조금 나아가다가 중단하게 된다. 어쩌면 대단한 성취라는 건 작은 시도와 실천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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