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야 놀자
살면서 처음으로 번아웃을 겪어 보았다. 이전에도 힘든 순간들은 있었고, 그때마다 '어!? 나 번아웃인가?'싶었는데, 짧게 설명하자면 스펀지를 눌렀는데 원래대로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눌린 느낌이었다. 힘들다는 말도 안 나왔고, 눈물조차 안 나올 정도로 건조한 느낌이었다. 인류애가 0%였다. 그렇게 내 나이 24살, 2022년 1Q 삶에 위기가 찾아왔다.
삶에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일과 커리어, 개인적인 인간 문제가 한대 어우러져 나를 흔들었다. 하나씩 와도 힘든 일들인데,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 나온 말처럼 불행은 하나씩 오지 않고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떤 사전 공지나 조짐조차 없이 도둑처럼 찾아왔다.
외로웠다. 처음으로 역삼 자취방이 외롭게 느껴졌다. 인구 1,000만에 달하는 서울,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역삼은 서울에서도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사람들은 많은데 말할 곳이 없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될까? 어디에 의지하는 성격은 아닌데, 잠시 기댈 곳조차 없었다.
이 기간에 술을 좀 많이 마셨다.(끊은 담배는 다시 안 피운 나 칭찬해) 보통 싱글몰트 1병을 2~3달 정도 마시는데 1달 동안 3병 정도를 마셨으니 퇴근 후 거의 술에 절어 살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위스키는 천천히 음미하면 혼자 마셔도 절대 외로운 술이 아닌데, 그 귀한 술들 맛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냥 취하고 싶어서, 현실도피 차원에서 꿀꺽꿀꺽 마신 거 같다.
하지만 어쩌겠냐, 맨날 술 마시고 꿈속으로 도피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한번 사는 인생... 갓생 살아야지... 20대 귀한 시간을 언제까지 낭비할 수도 없었고, 면도 안 한 꼬질꼬질한 얼굴도 꼴 보기 싫었다. 3병 하고 4병째로 넘어갈 시점부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한 거 같다.
한 달 정도 나니(망나니)로 살았다.
여기까지가 빌드업이고, 사실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과 상황이 정리된 상황이다. 나는 그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나의 회복탄력성이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을 해결하며 커리어 부분에서는 용기를 내어 예전부터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던 이직을 실행하게 되었다. (이직 관련 글은 따로 작성하겠다.)
이미 술과 잠은 번아웃 기간에 충분히 했기 때문에 온보딩까지 휴식 기간을 그렇게 길게 잡지 않았다. 달력을 보며 세어보니 11일 정도 나오더라. 11일... 도대체 뭘 하면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까? 고민이 많았다.
평소 같으면 한강이나 양재천, 탄천 산책 좀 다니고, 밀린 아티클도 여유롭게 읽고, 책도 읽고 개인 공부 좀 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텐데. 이번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잠시 역삼 자취방을 떠나고 싶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공간이 계속 느껴졌기에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나는 서울 촌놈이라 안 가본 곳이 많다. 그 흔한 제주도, 부산 이런 곳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일까? 문득 자기 전 숲 속과 절이 떠올랐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절에 들어가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결제가 끝나 있더라. 절이 나를 불렀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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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번뇌에 가득 찬 일시적 백수는
심적, 영적 수련을 위해
디자인 커리어를 돌아보기 위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회고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계획하기 위해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입산하게 된다.
입산부터 쉽지 않았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가평 부근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 30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 바람에 우산살이 부러져 비를 맞으며 올라갔다. 몰골이 거의 속세에서 패싸움하고 절로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절의 첫 모습은 신비로운 인상이었다. 우아하게 생긴 건물들이 간격을 두고 있었고, 분홍분홍 한 연등에는 사람들의 소망과 염원이 담긴 작은 종이들이 붙어있었다. 안내센터에 말하니깐 소림사 같은 옷을 줬다. 이 바지가 생각보다 편해서 놀랐다. 나중에 개량한복이나 절 옷을 따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편식을 좀 한다. 김치, 토마토, 오이 등을 안 먹고, 풀이랑 안 친하다. 절밥은 그런 나에게 도전 그 자체였다. 라인업부터 쉬어갈 타선이 없었다.
보리밥(질다) - 김치(빨간 거) - 김치(초록색) - 김치(하얀색) - 시금치나물 - 전 - 무조림 - 된장국
먹기 힘들었지만 이것 또한 수련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먹었다. 김치가 조미료 김치가 아니라 찐김치라 정말 죄송하지만 먹다 토할 뻔했다. 그리고 문제의 전! 옛날 소세지 전 같이 생긴 게 있어서 아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생각했는데,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당근이었다. 영화 천사와 악마 이후로 최대 반전이었던 거 같다. 먹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감자전을 더 많이 담아올걸...
예불이란 무엇인가? 천주교의 미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미사를 모른다고? 음..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예불 시간으로 예정된 오후 6시 반 딱 봐도 뭔가 제일 웅장한 절로 들어가 기다렸다. 잠시 후 도사님 같은 옷을 입은 스님이 들어와 말했다. '절하라!', 나는 반사적으로 명절 때 제사상에서 하는 절을 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절부터 다시 배워야겠구나.'
불교식 절은 조금 특이하다. 합장(손을 모은 상태)한 채로 무릎을 꿇고 앉아 이마를 땅에 대고 손을 양 귀 위로 뒤집어 올린다. 일어설 때는 역순. 생각보다 힘들어서 놀랐다. 3번 하고 예불을 시작했는데 발바닥이 아프더라.
종을 치고, 반야심경과 알 수 없지만 신비로운 기도문을 외우고, 예불은 20분 정도로 끝났다. 그리고 스님께 카르마와 번뇌, 사유, 윤회, 공의 사상에 대해 속성 강의를 듣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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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씨에 절에 자진해서 올라온 젊은 사람 치고는 정상인 사람이 없는데 그대는 무슨 사연으로 왔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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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의 대담, 108배, 돌탑 쌓기, 숲 속 수련 등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