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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원 Jun 03. 2024

산세베리아



2년 대여한 산소호흡기의 계약이 끝나기도 전,

아버지는 먼저 떠나셨습니다.


산소호흡기는 치열하게 숨을 쉬었습니다.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고통받던 아버지 곁에서

세상 가장 서글픈 어미처럼

이따금 증류수로 목을 축이며

당신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당신이 떠나간 날,

젖 먹일 자식 잃은 듯

산소호흡기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고요 속에 잠들었습니다.


지금은 자유로우신가요?

무엇을 호흡하시나요?

폐 가득 오월의 신록을 머금고

천천히 뱉으며 그 향기를 느끼시나요?


한 사람이 누워있던 자리,

산소호흡기가 숨 쉬던 자리,

좁은 호스를 통해 누군가 살아있던 자리에

이제 산세베리아 화분 하나 숨 쉽니다.

공기 정화 식물이라지요.


당신이 내려놓은 숨을

화분 하나가 대신 쉽니다.

살아있는 한 숨쉬어야 한다는 듯,

누구나 숨쉬어야 한다는 듯,

만성폐쇄성폐질환이 있던 자리에

산세베리아 잎 그림자가 물고기처럼 몰려들어

당신의 날숨을 떼어 먹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는 늘 제 마음속에 깊은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는 병마와 싸우며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힘겹게 숨을 쉬셨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제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산소호흡기에 증류수를 채워주며 마치 아버지를 돌보는 것처럼 애틋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산소호흡기마저 멈추는 날이 왔고, 그 순간 저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자리에 산세베리아 화분을 놓았습니다. 공기 정화 식물이라는 산세베리아는 마치 아버지가 남긴 숨을 대신 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푸른 잎들이 햇빛을 받아 싱그럽게 빛날 때마다, 저는 아버지가 자유롭게 숨 쉬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산세베리아 화분을 바라보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던 어느 날, 문득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 산소호흡기의 숨소리, 그리고 산세베리아의 푸른 잎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시의 형태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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