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hurry, No worries 모슬 베이.

지붕 없는 식당 KAAI4.

by 유버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가든 루트'를 달리고 있을 때, 나는 분명 지쳐있었다.

첫 해외여행지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고른 것이 잘못이었을까? 이별의 후유증을 미처 다 치유하기도 전에 떠나 온 것이 문제였을까? 충동적으로 사표를 내고 얼마 되지도 않는 퇴직금을 들고 떠나온 가난한 여행자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시작하고 남아공의 오지를 탐험했던 초반 보름 정도는 편하게 쉬어본 날이 없었다. 좋지 않은 도로 사정으로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고, 숙소를 구하지 못하는 날엔 갓길에 차를 주차해 놓고 잠을 잤다. 내가 빌린 작은 마즈다 2는 이미 한차례 펑크가 나서 보조바퀴로 힘겹게 버티는 중이었다.


도시로 가고 싶다. 아침 일찍 일어나 휴게소에 들러 차에서 먹을 미트파이와 머핀을 사들고 가든 루트에 들어섰다.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모래사장과 드넓은 바다, 길옆으로 이어지는 와이너리의 향긋한 포도향은 모른 척 한채 달리고 또 달렸다. 쉬지 않고 달려서라도 케이프타운으로 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모슬 베이항에 들어간 건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들어간 작은 항구마을에 나는 금세 푹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KAAI4 식당을 만났다.





모래사장 위에 대충 울타리를 쳐놓고 해적 영화에나 나올법한 커다란 나무 대문을 세워놨다. 작은 입간판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식당일 것이라고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토록 신비로운 식당을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모래 위에 삐뚤빼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테이블과 낡은 의자를 놓고 나뭇가지를 엮어 그늘을 만들어 두었다. 남아공의 파란 하늘이 식당의 지붕이고, 고운 모래사장은 카펫이며, 바다는 커다란 창이 된다.

카이의 아름다운 풍경은 바닷바람에 녹슨 프라이팬과 랜턴도 운치 있게 느껴지게 하고 부서진 뱃머리는 앤티크 한 그릇장처럼 보이도록 마법을 부린다.




가게 한복판엔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불이 꺼진 숯 위에서 KAAI식당의 요리가 만들어진다. 하루 종일 커피가 끓고 있는 거대한 화덕 위에 특별할 것도 없는 밀가루 반죽을 턱턱 얹어놓으면 밀가루와 물로만 반죽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맛있는 빵이 구워진다. 버터와 잼을 발라 입에 넣는 순간 쫄깃하고 담백한 맛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다.



홍합이 많이 나서 이름이 모슬 베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하니 이곳에 가면 홍합요리는 꼭 먹어봐야 한다. 홍합, 화이트 와인, 버터, 크림, 마늘이 들어간 모슬 팟이라는 메뉴를 골랐다. 홍합이 잔뜩 들어간 크림스튜를 밥과 빵에 곁들여 먹는 요리다. 한입 먹는 순간 보름간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홍합을 볼 때면 종종 이 요리를 추억하게 되는데 딱히 시도해보고 싶지는 않다. 모슬 베이의 바다와 바람이 만들어 낸 맛을 감히 인간인 내가 따라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왜 더 나를 내려놓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조바심을 냈을까?

기회가 된다면 다시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다. 바퀴가 튼튼한 차를 빌려 가든 루트를 달리고 싶다. 아름다운 항구 마을로 달려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프리카산 와인에 매일매일 취하고 싶다.

'No hurry, No worries' 모슬 베이 항구에 쓰여있던 표어처럼 아무 걱정 없이 서두르지 않고 다시 떠나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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