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빠진 SF는 Space Fantasy일 뿐
SF(science fiction)은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논문이 아니고 소설이기에 입증되지 않은 과학적 주장이라도 논리적으로 부합된다면 SF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는 환경에서 적용되는 과학적 현상은 최대한 정밀하게, 정확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SF가 긴장감을 유지하고 스토리를 완성시킬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역사소설이 역사적 고증을 무시한다면 역사소설이 아닌 역사 판타지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고요의 바다', 찬사와 혹평이 엇갈리고 있지만 나로서는 곳곳에서 등장하는 비과학적 전개로 인해 짜증을 내야 했다. 이야기의 전개나 배경적 서사는 다 떠나서 과학적인 팩트만 가지고 영화의 오류를 찾아보자. 스포일러는 아마 없을 듯하지만 읽는 분들이 조심하셔야 할 듯.
1. 우주선
드라마에 등장하는 우주선은 우주왕복선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왕복선 본체와 본체가 매달려 있는 외부 연료탱크와 양옆의 부스터 엔진은 미국에서 개발하여 운용하던 우주왕복선을 그대로 닮아 있다. 왕복선을 제외한 부스터 엔진과 커다란 연료탱크는 지구의 중력과 대기권을 탈출하기 위함이며 대기권을 벗어나기 전에 분리된다. 대기권을 벗어나면서 왕복선 혼자 우주로 나아가게 된다.
달은 대기도 거의 없는 진공에 가까운 상태이고 중력 역시 지구의 1/6에 불과하다. 부스터 엔진과 연료통이 없어도 왕복선 자체 엔진의 추력만으로 충분히 다시 이륙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연료통과 부스터 엔진을 달 표면까지 달고 가다 연결장치 고장으로 불시착하게 된다. 왜? 엄청난 짐을 싣고 오는 것도 아니고 고작 팔뚝만 한 샘플 몇 개 가지고 돌아오는 건데?
진즉에 지구 대기권에 떨궈놓고 갔어야 할 물건들을 굳이 달까지 달고 가서는 사고를 내버리는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주왕복선을 모델로 삼을 생각이었으면 그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잠깐이라도 살펴보았어야 하지 않을까?
2. 중력
우주선이 불시착한 이후 별다른 중력 발생 장치가 있지 않다면 우주선 안에서는 지구의 1/6에 불과한 달의 중력이 작용한다. 엔진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우주선에서 중력 발생 장치라고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하지만 불시착한 우주선 내부에서 승무원들은 너무나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걸음을 걷는다. 마치 지구에서 걷는 것처럼. 달 탐사 영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달에서는 낮은 중력 탓에 둥둥 떠다니며 걷는다.
게다가 기울어져 가는 우주선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승무원들은 무게를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구에서 100Kg의 무게는 달 표면에서는 17Kg 정도가 된다. 우주복이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17Kg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버둥거리고 애쓰는 모습은 차라리 안쓰럽다. 20Kg도 안 되는 다친 황차장을 두 사람이 낑낑대며 부축하는 모습이라니.
3. 환풍구를 막은 얼음
일단 환풍구가 아무런 감압장치나 차단장치 없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다는 허술한 설정은 이야기하지 말자. 드라마에서는 환풍구로 뿜어져 나와 달의 대기에 노출된 물이 얼어붙어 버린다. 얼음으로 막혀버린 환풍구, 이들이 발해 기지를 버리고 탈출해야 하는 긴박한 이유가 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달의 표면은 거의 진공에 가까운 상태이다. 기압이 낮아지면 물이 끓는 온도도 낮아진다. 진공상태에서 물은 더 이상 액체나 고체로 존재할 수 없고 수증기로 증발해 버린다. 그러니 환풍구로 뿜어져 나온 물은 바로 끓어 증발해 버릴 뿐 위의 장면처럼 얼어버리지 않는다. 차라리 기지 내부 어디쯤 기압과 온도가 낮아지는 어느 지점에서 얼어버린다면 그나마 가능한 이야기일 텐데...
마무리
석연치 않은 이야기 전개 과정이나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의 전개는 시즌2를 위한 떡밥이라고 너그럽게 넘기기로 하자. 하지만 과학적인 팩트들은 과학적인 논리로 전개되어야 한다. K-SF라는 포장지가 science fiction이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기 시작한다면 마블의 판타지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Space fantasy로 치자면 '고요의 바다'는 너무나 진지하다. Science도 아니고 fantasy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 재미와 긴장이 빠져나가고 있는 구멍이다.
더욱 중요한 부분은 SF 드라마를 통해 사회 전반의 과학에 대한 인식 수준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과학은 자체적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다. 머지않아 달 탐사까지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SF 드라마를 통해 드러난 과학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곤란하다. 드라마야 망하면 그만이지만 한국의 과학 수준이 불필요하게 폄하되는 상황은 견디기 힘들다. 제발 물리와 화학에 자신이 없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과학자를 찾아 자문을 구했으면 좋겠다. 엉터리 같은 인터스텔라도 블랙홀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킵 손에게 자문을 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