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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Jan 24. 2022

[아재 라떼 공방 #1] 386의 시작

좌충우돌 IT 인생의 출발

 “이 소위님, 점심 간단히 먹고 저희 집에 잠깐 가시지요.”


“왜요? 조 중사 댁이 어딘데요?”


“제가 컴퓨터를 장만했습니다. 구경시켜 드리고 싶어서요. 집은 용산이니 별로 멀지 않습니다.”


90년 8월 공군 소위로 임관한 후 배치받은 부서에서 같이 일하게 된 조 중사는 자기보다 어린 상관임에도 살갑게 대해줬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많던 조 중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막 들어온 나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조 중사 집은 육군 복지단 뒤편 허름한 단칸방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골목을 몇 번 돌아 삐걱거리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그의 책상에는 이제 막 케이스에서 꺼낸 컴퓨터가 놓여 있었고, 방바닥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박스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무실에서 쓰던 286 컴퓨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른 속도에 감탄하며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돌려 본다. 그래 봐야 워드 프로세서, 타자연습 게임이 전부였지만…


“와우, 386은 정말 빠르네… 사양이 어떻게 돼요?”


“메모리는 2메가고요, 하드디스크는 20메가짜리 달았습니다.”


“돈 좀 썼겠네. 근데 이거 가지고 뭐 할 거유?”


PC통신도 거의 안 쓰던 시절, 인터넷이라고는 정말로 아무도 모르던 시절, 집에서 컴퓨터 가지고 딱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게임도 오락실 게임이 훨씬 박진감 있고 재미있던 시절이었으니.


“흐흐흐, 놀라지 마십시오.”


의기양양하게 컴퓨터 앞에 앉은 조 중사는 생전 처음 보는 프로그램을 띄운다. 마우스로 클릭하는 순간… 컴퓨터 옆에 있던 스피커에서 ‘은하철도 999’의 주제가가 쏟아져 나온다. 그 순간 진심 어린 감탄이 흘러나왔다. 


“우와! 이게 뭐야.” 


“사운드 카드라는 겁니다. 이런 거 처음 보시죠? 이 놈 가지고 음악 좀 해 보려고 합니다.”


드디어 컴퓨터를 사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육군 복지단은 데이콤 건물 바로 뒤였다. 조 중사의 집을 방문할 때만 해도 데이콤이라는 회사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있는 돈 없는 돈 죄다 끌어모아 용산 전자 상가에서 386SX 컴퓨터를 장만했다. 메모리는 2 MByte, 하드 디스크는 40 MByte, 2400 bps 모뎀과 애드립이라는 사운드카드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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