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 신입한테 감히 부장이...
[라떼 직장 이야기 #4] 다혈질 K부장님
전체 메뉴 개편을 마무리하고, PC통신이라는 서비스가 점차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걸 느끼게 된다. 1994년 가을쯤에는 이용자 20만을 돌파했다. 1년쯤 전에 10만 돌파 캔 파티를 했는데 1년 만에 두 배로 가입자가 늘어난 것.
메뉴를 정리하면서 해외 서비스, 주로 미국의 온라인 서비스들과 하이텔, 나우누리 등 경쟁사들을 지속적으로 벤치마킹했다. 새롭게 시작되는 분야였기에 하루가 지나면 어디선가는 뭔가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는 정신없는 시기였다.
일주일 간격으로 다른 서비스에 새로 추가된 내용들을 정리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흑백의 텍스트 위주로 제공되는 국내와는 달리 미국의 프로디지와 AOL(America Online)은 전용 프로그램을 통해 컬러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컬러 프린터도 구매하여 보고서를 작성했고, 사장실까지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두 달쯤 지났을까?
"이동구가 어떤 놈이야?"
새로 온 영업팀 K부장님이 고함을 친다. 부장이 찾는데 가야지, 사원 주제에 버티고 있을 수는 없다.
"니가 이동구야?"
벌겋게 상기된 K부장은 얼마 전 배포했던 신규 서비스 보고서를 책상에 내던지며 나무라기 시작했다.
"우리는 뭐 놀고 있는 줄 아나? 여기 있는 거 다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서를 쓰려면 뭘 좀 알고 써야지 말이야!!"
어라? 이런 소리 듣자고 보고서 만드는 게 아닌데... 이게 이렇게 반응할 일인가? 아마도 본부장에게 '남들은 이렇게 열심히 새로운 서비스를 찾고 있는데 영업팀은 뭐 하고 있냐?'는 잔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우리가 뭘 안 하고 있다는 내용을 쓴 게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준비하고 있는 서비스가 있으면 알려주시던가요."
K부장은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말이 험해진다. 차마 여기에 옮겨 적기엔 그렇고...
"전 일만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말씀이 너무 심하시잖아요?"
나도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 팀 H대리가 뛰어 와서 나를 끌고 자리로 돌아왔고, K부장은 분에 안 풀렸는지 혼자 계속 성을 내다 결국 옆자리 다른 부장이 복도로 끌고 나가 버렸다. H대리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다혈질로 유명한 분이었다.
K부장과는 며칠 후 계단에서 담배 피우며 화해를 했지만 영업팀에서 준비 중인 서비스에 대한 공유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슬슬 개발 쪽으로 자리를 옮길 때가 된 것 같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