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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비 Nov 14. 2023

나와 나, 그 경계에서

타인이 결정하는 삶이 아닌 진정한 나의 삶으로

    모든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적 성공, 뛰어난 능력과 외모, 부와 명예가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행복은 외부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극심한 가난을 겪는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의 경제적 조건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행복감을 느끼며, 성별, 직업, 나이, 지능의 차이에서도 각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의 크기는 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인간은 나 스스로를 알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올바른 사회적 관계를 이룰 때 행복해진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것은 다시 한번쯤 의심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사랑을 주는 첫 번째 대상은 외부로부터 오며, 대부분 그 대상은 부모님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당신이 어떤 아이가 되기를 원했는가 떠올려보라. 바로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곧 타인의 조건이 부여된 가치에 의해 형성된 첫 번째 자기 개념일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친구들과 농구를 신나게 하고 집에 들어왔다고 하자. 그때 아버지가 '농구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지'라고 아이에게 지적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농구를 하는 행위가 곧 나쁜 일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나는 농구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생각하게 된다. 말하자면 농구를 좋아했던 아이는 '농구를 좋아하는 나' 대신에 아버지의 가치인 '공부를 하는 나'를 진정한 자아개념으로 오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농구를 좋아하는 나'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게 되면, 그 아이는 농구를 할 때마다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가 더 이상 공부를 하라고 간섭하지 않는 성인이 되어서도, 혹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수 있다. 만약 그가 성인이 되었다면 이제 '아버지, 저는 농구를 좋아해요. 농구를 할 때 저는 행복합니다. 하지만 농구만 하지 않고 공부는 소홀히 할까 걱정되는 아버지 마음도 이해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라고 진심을 건넬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가 아닌 선생님, 상사, 선배, 배우자 등으로 대상만 바뀐 채로 유사한 과정을 그대로 반복하며 살게 될 가능성이 크며,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그만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무조건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받는 경험은 중요하다. 진실된 자기를 서로 포용하는 관계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아가며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조건부적 관계 형성에 익숙해진 나머지 진짜 나를 잃어버리고, 타인에게 자신을 표현하기조차 힘들어진 상태에서는, 진실된 관계 형성 자체가 힘들다. 아무리 상대방이 진솔한 소통을 하려 시도해도, 어떤 게 진짜 나의 마음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반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익숙하고 잘하는 방법, 즉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다가 결국 지친 채로 관계를 놓아버린다. 관계가 깨지면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방은 그만큼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왜곡하여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려는 상대방의 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은 적이 없고, 조건부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조건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하지만 좋은 인간관계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모습으로 대하며 포용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 이루어진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면 생기는 부작용 중 또 하나는, 내가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일이나 취미에서 오는 성취감과 행복감을 누리기 힘들어진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낄 때 행복해진다. 그러나 타인의 요구에 맞춰 살다 보면 언젠가부터는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는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되고 취미 생활을 하려고 해도 뭘 해야할 지 막막하다. 한편, 만약 그 일이 자신의 꿈과는 거리가 먼 일이며, 가족을 위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자의적으로 선택한 길이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자기 결정과는 상관없이 하고 있는 일이 된다면 어느 순간 삶의 허무함이 몰려오게 된다. 


    이렇게 자신을 잃은 삶 속에서 사람은 행복감 대신 우울감을 느끼는 빈도수가 늘어난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진정한 만족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게 된다. 장시간 TV를 본다던가 과도한 게임, 술, 쇼핑, 마약, 의미 없는 만남 등 순간적으로 회피 가능하지만 삶에는 별다른 유익을 주지 않는 행위를 즐기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의 삶을 점점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마치 제2의 사춘기처럼, 외부 조건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염없이 하다가 그 좌절이 반복되어 한계에 다다랐을 때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억눌려 왔던 자기 자신에 대한 표출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를 찾는 여정에서도 반드시 우리는 나와 타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서 타인을 고려한다는 것은 예전처럼 타인에게 나를 끼워 맞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소중한 만큼 타인도 결국은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며,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존재도 나의 존재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스스로도 앞으로의 삶에서 후회 없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과정은 인간중심상담 이론에 기반을 두었으며, 인간중심상담학은 현대 상담심리에서 내담자와의 초기 상담 관계에 적용하고 있는 이론이기도 하다. 인간중심상담의 핵심이 되는 상담자가 지녀야 할 3가지 조건은 '진실성,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이다. 가족과 배우자, 친구마저도 해줄 수 없는 태도를 상담자가 취함으로써 내담자로 하여금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여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성장을 돕는 데에 목표를 둔다. 이처럼 하나의 심리학 이론의 한 종류로써 존재하고 전문 기술로 사용되는 만큼, 전문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의 가까운 누군가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며, 서로의 관계적 문제도 얽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문상담자가 아닌 이상 일방적으로 한 사람의 심리적 통합을 온전히 돕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지금 당신을 온전히 이해해 주고 들여다봐주는 누군가가 곁에 없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한 꽃길이 아닌 외롭고 고통스러운 돌길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각자가 모두 힘든 삶 속에서, 내 삶의 짐을 타인이 들어줄 수 없듯이, 나 또한 타인의 삶의 짐을 대신 짊어질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외떨어진 섬으로 존재하며 서로를 책임지는 대신 도울 수 있을 뿐이다. 타인은 내가 인정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사랑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니 사람을 의존하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이 아닌 정작 나 자신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혹은 타인에게 나의 기대를 요구하거나, 그리고 그에 따른 좌절을 경험하는 반복된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 내가 먼저 나 자신에게 좋은 상담자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새롭게 리셋하는 것이 아닌, 회피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나의 모습까지도 온전히 통합하는 과정이다. 용기를 내어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용서하고, 응원하고, 인정하고 존중해 줄 때 비로소 진정한 나로 살아가며,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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