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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웅 3시간전

뜨레베르소네(2)

2. 칠수와 완수의 우정

칠수와 완수는 농고 시절부터 친구였다. 그들의 우정은 학교의 중간고사 성적 발표날의 해프닝처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쌓여갔다.


그들의 성적은 중위권과 하위권을 오갔고, 공부를 잘하기보다는 농사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미래를  아버지들처럼 농부로서 살아갈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농고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들은 농부의 자식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 담임 선생님은 성적표를 들고 교실에 들어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 니들이 원래 우수하지 않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지 잉?" 그 말에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예!" 그들의 대답에 선생님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여! 그 원래 우수하지 않은 집단에서 또 꼴찌를 하는 것쯤은 좀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여!"


 그러면서 선생님은 책상을 쾅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순간 교실은 숨소리마저 들릴 듯 조용해졌다.
칠수와 완수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쳐다보며 억지로 웃음을 참으려 했다.


그때, 앞줄에 앉은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말했다. "에잉, 선생님. 저희는 그냥 농사지으러 농고 왔잖아요. 대학 갈 것도 아닌데 성적이 무슨 상관이에유?" 그러자 교실은 다시 웃음바다가 됐다.


친구들은 그 말에 호응하며 크게 웃었고, 일부는 책상을 두드리며 흥겨워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이 붉어지며 다시 책상을 쾅 하고 쳤다.


 "니들이 그러니까, 어디 가서 농고 다닌다고 말 듣는 겨! 공부는 못 해도, 노력은 해야 될 거 아니여!

니들이 지금 배우는 것들이 다 농사지을 때 필요한 것들 아녀... 이눔들아!

나 참 환장 허겄네..." 선생님은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한탄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 하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흉내 내자, 선생님은 이를 보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칠수는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는 완수를 살폈다. 완수는 고개를 들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선상님, 울 아부지가유, 공부는 너무 잘할 것도 없다 그러셨슈. 그냥 손발로 일하고 땅 잘 돌보면 된다고 했슈... 성적은 살면서 한낫도 중요허지 않다고 허셨슈..."

그 말에 선생님은 칠수를 매섭게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근데 말이여, 니는 공부 혀도 안되는 거 아니여. 이눔들아!


땅을 알아야 제대로 농사짓는 겨. 책 속에도 논밭이 있고, 씨앗을 심는 법이 있는 겨. 그러니까 너희도 머리를 써야지!"

칠수와 완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다시 서로를 힐끗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말이여. 네 아버지들처럼 평생 논에서만 살 생각이냐?”
칠수와 완수는 다시 씩씩하게 대답했다.


 "예!" 그 답에 선생님은 잠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더 넓은 세상도 봐야 되는겨."

성적표가 나눠지기 시작했고, 선생님이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렀다. 아이들은 저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성적표를 받았지만, 칠수와 완수는 서로의 성적표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칠수야, 나보다 2점 더 낮네...잉? 내가 이긴 겨?” 완수가 장난스레 말했다.



칠수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야, 겨우 2점 가지고 생색내냐? 다음번엔 내가 이길 겨.”

그들의 대화는 다시 웃음으로 이어졌고, 성적보다는 친구와 함께 웃고 떠들던 그 순간이 그들에게는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자신들이 농부로 살아갈 길이 정해져 있었고, 지금의 학교 생활은 그저 그 길을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세월은 흘러, 칠수와 완수는 정말로 농부가 되었다. 그들은 아버지들처럼 논밭을 일구며 살아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완수는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해 농업을 전공하고 돌아와, 현대 농업의 새로운 기법들을 적용해 보려 했다. 하지만 칠수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짓는 것을 고집하며, 과거의 방식에 자부심을 가졌다.

칠수와 완수는 종종 마을의 논두렁에서 만나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완수는 농업 대학에서 배운 새로운 지식을 이야기하며, 효율적인 농기계 사용과 토양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칠수야, 요즘은 드론으로 논을 관리하고, 스마트폰 하나로도 날씨랑 비료량 조절까지 할 수 있다니께. 우리도 그런 거 좀 해봐야 되는 거 아녀?”

칠수는 술잔을 들고 코를 골며 대답했다. “그냥 땅이랑 대화하면 되는 거여. 기계가 무슨 소용이여? 니는 너무 배워서 머리만 복잡해진 거 아녀?”


완수는 칠수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친구였고, 함께 논두렁을 걸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농사를 짓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47년이 흐른 어느 날, 마을의 풍경은 크게 변했다. 대부분의 농촌 지역이 기계화되었고, 효율적인 농업 기법들이 널리 퍼졌다. 완수는 마을에서 가장 큰 농장을 운영하며 최신 기술을 활용해 농사를 짓고 있었고, 그의 아들 또한 농업 관련 기업에서 일하며 가업을 돕고 있었다.


한편, 칠수는 작은 논 몇 마지기만을 남기고 여전히 전통적인 농사법을 고수했다. 마을에서 손꼽히는 옛 농부로 남아있던 칠수는 여전히 소와 함께 밭을 갈았고, 비료를 뿌릴 때도 자신의 손을 믿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칠수를 보며 ‘옛날 방식도 멋지다’며 존경을 표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를 고집쟁이로 여겼다.

어느 날, 칠수와 완수는 마을 회관 앞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예전처럼 함께 술을 마시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완수는 여전히 새로운 농업 기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칠수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난 내 손으로 땀 흘리며 일하는 게 좋아. 그게 진짜 농사짓는 맛 아니여?”

완수는 칠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길은 달랐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우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같은 하늘 아래서 농사를 지으며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완수는 성적표를 나눠주던 날의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며, 조용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칠수야, 선생님 말대로 농사도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어. 그때 우리가 농사짓는 자부심을 가졌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칠수는 완수의 말을 듣고 미소 지으며, 술잔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렇지, 우리 농고 친구들이니까 말이여. 변해도, 변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냥 우리답게 살아가는 거지.”

그렇게 47년의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건 그들의 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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