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itive parenting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맞닥트릴 때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발현시킨다. 어떤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그런 일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믿어버리도 하고, 상황을 왜곡시켜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기도 하며, 누군가 때문에 내게 이런 일이 생긴다고 믿고 억울함을 느끼며 살아가기도 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누군가를 오랜 기간 동안 키워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시간, 물질, 정성, 관심 등 모든 부분을 희생해야 하는 일이고, 때로는 희생을 넘어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그로 인해 아이가 주는 순간순간의 기쁨들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인생 최대 난제 중 하나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모님들은 인생 처음 경험해보는 '아이'라는 어려움 앞에, 때때로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자꾸만 붕괴되려 하는 멘탈을 부여잡곤 한다. 그중 하나가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없다고 믿는 것이며, 아이 키우는데 정답은 없다고 믿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 키우는데 정답이 어디 있어요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어디 있어요.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왜 없는가? 정인이 사건 이후로 각 가정에 숨겨져 있던 아동 신체학대, 성학대, 방임 등의 모습들이 수면 위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게 된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정에서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제공받아야 할 '안전'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좋은 부모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부모님들이 있다. 나는 이런 부모님들이 "좋은 부모"라고 말하고 싶다. 부족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좋은 부모가 되기를 노력하는 부모님들. 이런 부모님들이 분명히 있고, 앞서 말한 기본적인 안전을 박탈하는 즉 좋은 부모이기를 포기한 부모님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정말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없다고 말할 텐가? 나쁜 부모와 좋은 부모를 가르는 것은 기술이나, 실력이나, 환경이나, 물질이 아니다. '좋은 부모'이기 위해 노력하는가, 아니면 포기하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아이를 대하기로 했는가의 차이이다.
서양권 나라에서 Positive parenting 부모교육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했었다. 이제는 유행을 넘어 이 positive parenting이 부모님들에게 많이 보편화되고 일상에 잘 적용되고 있는 느낌이다. 생소하던 개념들이 상식이 되어 아이들에게 공기처럼 물처럼 적용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약간의 오버를 보태서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이 아이들이 지지적인 부모님 밑에서 얼마나 건강한 정신을 지닌 성인으로 성장하겠는가?
처음 postivie parenting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긍정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을 말하는 걸까? 그럼 그냥 긍정적으로 아이를 대해주면 되는 건가?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좋은 부모 만들기' 부모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좋은 부모'라는 두리뭉실하고 애매모호한 개념을 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정리 해놓았다.
Positive Parenting 연구팀에서 가장 먼저 한 연구는 '과연 부모의 역할에 따라 자녀 안녕의 정도가 달라지는가'에 대한 연구였다. 그리고 집안 분위기와 부모역할에 따라 아이들이 정말 많은 영향을 받더라 하는 연구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지지적인 부모님의 양육을 받은 아이들은 성장의 모든 부분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다. 학교 적응을 더 잘했고, 자존감이 상승했으며, 낙천적인 아이로 성장했다. 사회기술능력이 높았으며, 안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고, 두뇌회전과 인지기능도 높았다. 문제행동이 감소하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려 했다.
가장 흥미로운 연구결과는 원래부터 지지적인 부모님이 아니었던 가정에서 부모님이 긍정적인 부모역할을 배워 적용하게 되었을 때, 앞서 말한 아이들의 모든 기능들이 좋아졌다는 연구결과이다. 게다가 미혼모 가정, 이혼가정, 불화가 있는 가정,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가정 등 환경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positive parenting을 했을 때, 환경적 어려움(family risk factor)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게 되는 충격도 완화되었다고 연구결과는 말하고 있다. 지지적인 부모님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발달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해도 그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힘이 남달라 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자녀를 키우는 환경이 아무리 안 좋아도 지지적인 부모님만 있다면 아이들은 그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고 심지어 잘 발달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하고 흥미로운 환경 제공
Positive Parenting에서 말하는 좋은 부모의 5가지 모습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한다. 그중 첫 번째가 안전하고 흥미로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환경을 고의적으로 제공하지 않거나 혹은 제공해줄 수 없을 때, 선진국일수록 아주 강하게 부모로부터 양육권을 박탈하고 나라가 대신해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아이들이 방임, 학대 등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Positive parenting에서 말하는 좋은 부모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안전에 대해 가르쳐 주어야 하며(도로에서의 안전, 누군가 접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위험한 물건에 대한 조심성을 키우는 것 등), 부모라는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세상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긍정적 학습환경 제공
그리고 좋은 부모는 긍정적 학습환경을 아이들에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긍정적 학습환경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이를 학교, 학원, 과외에 보내 주거나 아이들에게 숙제나 문제집을 풀게 하고 검토해주는 형식의 학습환경이 아니다. 긍정적 학습환경은 단순히 학습지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를 잘 만들고 유지하여 아이가 부모로부터 인생 전반에 대하여 배우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거리낌 없이 다가가 물어보며, 학습에 있어서도 스스로 학습하고 싶다는 동기를 가져 목표에 도달하도록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긍정적 학습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1) 관심을 가지고 좋게 말하고 애정적으로 대해야 하며, 2)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잘 들어주어야 한다고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다. 또한, 3) 부모의 경험을 공유하고, 4) 칭찬은 구체적으로 해주어야 하며, 그리고 5) 아이의 관심사와 레벨에 맞춘 학습 진도로 아이의 학습을 도와, 아이 스스로가 배우고 싶다는 동기를 가지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호한 규칙 적용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규칙을 지키도록 했을 때 더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규칙이 있음으로 인해서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혼이 나고,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칭찬을 받는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오히려 규칙 없이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게 되면, 부모님들이 그 순간의 기분에 따라 훈육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은 부모님의 눈치를 보게 되고 마음에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때는 괜찮고, 어떤 때는 혼이 나니 아이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 적당량의 규칙을 꾸준하게 지킬 수 있게 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아이가 잘 따랐을 때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다 보면 아이들은 자신감이 생기고 스스로 규칙을 지켰다는 성취감을 느껴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 이때 너무 많은 규칙을 처음부터 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규칙을 못 지킨 것보다 잘 지킨 것에 초점을 맞춰 적용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잘못된 행동에는 화나는 목소리나 짜증 내는 목소리가 아닌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의 목소리톤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프로그램은 제안하고 있다.
자녀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를 가질 것
부모님들께 아이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여쭤보면, 대부분 큰 기대는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에게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하고선, 아이가 시험 50점을 받아오면 "넌 누굴 닮아서 이모양이니? 엄마는 어릴 때 수학 잘했어." 하시는 부모님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부모로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애매모호하게 "저는 아이가 학습 습관만 스스로 잡으면 그걸로 됐어요"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 '학습습관' 기준이 나에게 어떤 것인지 명확히 해야 아이들이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 ADHD 아이들에게 '가만히 앉아 있어라'와 같은 기대도 비현실적이다. 차라리 아이들의 에너지 분출을 돕는 활동을 붙여주고, 약물이 필요한 경우 행동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약물을 병행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다.
또한, 현실적인 기대를 갖는다는 것은 내 아이의 연령과 발달상태에 맞는 기대를 갖는 것이다. 간혹 한글 선행학습을 시키시면서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에게 배움 속도가 느리다고 혼내시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아이에게는 5세에 한글을 배우는 것이 비현실적인 기대 즉 부모의 욕심일 수도 있다. 5세 때 한글을 배우는 것보다 실제로 한글을 배울 나이인 7세가 되어 가리키면 아이도 부모도 더 힘을 들이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모 자신을 돌볼 것
좋은 부모가 되려 아이에게 올인하는 부모님들이 계신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아이들 양육에만 모든 집중을 하는 부모님들. 부모님들도 사람인지라 양육에서 오는 스트레스, 해소되지 않는 자기실현 욕구 등에서 오는 불만족이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님들께서 자신을 돌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힐링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갖고, 양육과 병행할 수 있는 자기실현을 유지하신다던지,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챙기시는 일 등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부모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아이에게도 좋은 양육자가 되어 주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부모 자신의 안녕을 관리하여 아이들에게 감정이 부정적으로 전달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시작한 생각일 수 있다. 좋은 부모라는 타이틀에 갇히지 않아야 마음껏 아들 엄마는 원래 그런 거라며 아이에게 고함을 지를 수 있으니까.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끊임없이 배우고 생활에 적용하는 데 있다. 한 번의 부모교육으로 나의 모든 모습이 바뀌진 않지만,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적용해보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해볼 만하지 않은가? 노력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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