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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Nov 17. 2021

...뭐지? 누구였더라?

갑자기 연락이 왔다

띠링-     


인스타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새벽 2시가 넘어가 막 자려는 순간. 이 시간에 누가 인스타를 하나, 급한 연락인가, 싶어 급히 확인했다. 얼른 확인하고 답하고 자려고 했다. 그럴 순 없었다. 메시지는 중학교 2학년 때를 이야기하며, 오랜만인데 잘 지내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라니! 자그마치 8년 전이다, 8년 전! 하지만 더 당혹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이름을 알려줬는데도 얼굴이며 모습이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는 점. 나는 학창 시절 친구들만이 아니라 동창인 아이들도 꽤 잘 기억하는 편이다. 인상 깊었다거나, 같은 반이 자주 됐다거나 하면 선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름을 보고도 모습을 떠올리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친하지도, 접점이 있지도 않은 사람이었단 말이다. 그런 사람한테서 난데없이 새벽에 연락이 올 확률은 몇이나 될까. 잠이 확 달아났다.     


혹여 사기인가 싶어 이불을 걷어차고 앨범을 향해 달렸다. 어두운 집 안에서 홀로 이질감이 생생했다. 먼지 쌓인 앨범을 끌어내 펼치자, 익숙하고 생소한 얼굴들이 가득 보였다. 성도 모르고 이름만 아는 터라 1반부터 차근차근 보자고 다독이며 훑었는데, 바로 보였다. 신기하게도 얼굴을 보자 알아챌 수 있었다. 몇 번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활동도 함께 했었던 동창이었다. 사기가 아니란 걸 확인하기 위해 성을 붙인 이름을 물어보고, 일단 오랜만이라고 반겼다. 매끄러운 메시지와는 달리 머릿속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난 기분이었다. 대체 연락은 왜 온 건지, 갑자기 뜬금없는 이 메시지는 뭔지….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면 좀 정리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 동창의 이야기는 너무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중학교 때 공부를 하는 모습이나, 영어 소설을 읽는 게 유난이라고 생각하는 애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되새겨보니 걔네는 너무너무 어렸고, 네가 너무 성숙했더라. 너는 그냥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 인턴 중이고 1월에 입사할 예정이다. 혹시 올 일이 있으면 연락해라.'  


오고 간 내용을 축약하면 핵심은 저런 내용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이 말보다 내 기분을 표현하기 좋은 감정은 없으리라. 갑작스럽게 연락 온 것도 놀랄 일인데, 과거의 내 모습을 이렇게 전해 듣자니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다.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그냥 지나가다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는데. 더군다나 동창이 말하는 내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내가 그렇게 이상적으로 보였다는 게 참 생소하고, 신기하고, 조금은 기쁘기도 했지만, 불편했다. 만약 나를 조금이라도 더 알았던 친구라면 이 정도로 불편하진 않았을 거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연락이 온다면 지금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친구를 다섯은 댈 수 있다. 하지만 동창은 동창이었다. 친구라고 칭할 만큼 잘 알지도 않았고, 친근하지도 않았다. 영어를 공부하다가 내가 떠올라서 연락했다는 동창의 말은 고마웠지만 반갑다고는 볼 수 없었다. 결국 동창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타인의 이야기에 불과했으니까. 별로 궁금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던 걸 자신의 마음대로 표현한 것 같았다. 선의로 나온 연락이었을지언정 좋은 감정이 샘솟지 못했다.      


내가 너무 정이 없다고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동창인데 반갑지 않으냐고. 음, 사실 나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너무 놀라서 이렇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며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단 점이다. 그건 어떻게 포장하거나 부풀릴 게 아니다. 순전히 내 감정의 문제가 아닌가. 혹여 내가 여유로운 상황이었다면, 낮이었다면, 조금이라도 기억이 나는 동창이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창은 새벽에 뜬금없이 연락했고,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의 연락이었다. 친척 어른의 전화가 그런 식으로 왔어도 덜 불편했을 것이다.     


연락은 늦은 시간인 탓에 금방 마무리됐다. 핸드폰을 끄고 자려고 했지만 소란한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이상적으로 보인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업신여기는 것 같았다. 아무 상관없는 타인이 던진 한 마디에 잠자리가 너무나 버거웠다.      


연락은 조금 뜬금없어도 반갑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번 일로 교훈을 제대로 얻었다. 연락을 해도 시간을 보고, 조금 더 말을 다듬어서 이야기하자. 그리고 내 감정과 이야기를 털어놓기 위해 말을 걸진 말자. 소란스러운 생각을 원망하면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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