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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Nov 21. 2021

새삼스럽지만, 문화의 힘을 실감했다

아트북을 읽다가

아트북은 언제나 마음이 끌리는 책이다. 마음만 향하는 게 아니라, 내 시선부터 손끝까지 전부 아트북을 찾는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작업 과정과 인터뷰가 주로 담긴 이 책들은 정말로 매혹적이고 황홀하다. 내가 몰랐던 의도, 뒷이야기, 작업 과정의 변화들…. 그냥 한 번 읽고 지나치는 책으로 남을 순 없다. 이런 책들은 내 서가에 꽂혀 있어야 하는 책들이다.     

 

실제로 주토피아와 모아나, 라푼젤과 코코, 소울, 어린 왕자 아트북이 자리해 있다. 꽤 최근에 온 책들임에도 터주대감같이 느껴진다. 존재감이 워낙에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뚜렷한 탓일까? 무슨 책을 가지고 있는지 물으면 아트북에 대한 이야기부터 튀어나온다. 내가 생각보다도 아트북을 좋아해서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관련된 거라 훨씬 깊은 의미가 있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뭔가 답답했다. 아트북을 다 읽은 후나, 아트북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특히 더했다. 나는 그런 감정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싫어하는 걸 한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즐기는 활동을 한 후에 답답하다니.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무심코 엄마의 질문에 답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컬렉션>을 읽는 도중이었다. 화사하고 고급진 색감에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인 이야기로 완성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집어 든 책이었는데, 의외였다. 설마 감독이 모티브로 삼은 실존 인물이 있을 줄이야. 그런 방식은 아주 흔하고 모범적인 방식이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는 건 놀라웠다.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작가. 사실 우리나라의 <택시 드라이버>도, <오징어 게임>도 그런 식으로 모티브와 소재를 설명하자면 넘쳐날 것이다. 가공의 공간이라도 같은 문화권에 있는 순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게 있으니까. 나는 아직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았지만, 나오는 모든 게임과 소재에 공감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긴장감부터 뽑기의 위태로움, 건달의 새치기와 눈치, 필연적인 갈등까지. 내가 안 봤음에도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고 명작으로 꼽는 영화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모티브인 작가는 내게 너무 받아들이기 낯선 존재였다. 어떤 작품이 더 좋으냐, 더 마음에 드느냐 묻는다면 명백히 후자를 택할 텐데도.    

 

그때 엄마가 물어봤다. 읽어보니 어떠냐고. 아마 엄마는 여느 때처럼 책 읽는 딸의 소감이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을 테다. 내가 어떻게 답할지는 나도 몰랐다.     


“어떤 문화권의 작품이, 어떤 문화가 높이 올라가야 하는 것 같아. 그 문화권의 작품이 유명해지고 뜨는 순간, 그 문화권의 사람들은 힘을 얻어.”    

 

말이 먼저 나오고서야 알았다. 내가 왜 그토록 답답했었는지. 나는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배우고 나서야 깨닫는 작품의 설명에 부딪혔던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건 즐길 일이지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문화의 작품이 훨씬 매력 있다. 어쩔 수 없다. 익숙한 재미고, 즐길 수 있는 완성품이 아닌가. 사람은 이성을 고를 때조차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예전에 EBS에서 진행한 실험이었는데, 다들 자신의 모습을 변형한 이성의 모습을 제일 호감이 간다고 꼽았다. 끌리는 이성이라고 무조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꼽은 게 아니었다. 결국 사람은 익숙한 걸 끌어안는 존재란 소리다.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걸 좋아한다. 낯선 것은 배척하고 무서워한다. 생존 기술 때문에 나온 본능이겠지만, 우리의 본능은 21세기에도 강력하다. 익숙한 걸 사랑하는 사람의 본능이 이제는 문화에까지 이른 것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도 열광한다. 하지만 정말 열광하려면, 어느 정도는 익숙해야 한다. 그림의 재료든, 작가의 출신이든, 영화의 분위기나 스토리든. 온전히 새로운 것은 찾기 힘들고, 나오기도 어렵다. 상상하는 외계인의 모습마저도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과 비슷하게 상상하지, 온전히 다른 형태로는 나오기 힘들지 않은가. 할리우드가 전 세계에 퍼진 걸 보면 문화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할리우드 때문에 청바지며 브라이덜 샤워, 파티 등의 문화가 얼마나 많이 퍼졌는지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음악, 의상까지 사람들은 열광했다. 우리가 안 먹었던 음식도 호감을 느꼈고, 살아보지 않았어도 멋지다고 느꼈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매력을 느낀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요즘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걸 보면, 문화가 힘을 얻어야 그 문화권의 사람이 더 살기 좋아진다는 걸 실감한다.     


그저 관광을 더 온다던가, 관련 수익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 게임, 기타 수많은 한류의 주역들은 한국 문화를 퍼뜨렸다.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부터 음식과 언어까지 말이다. 사람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식을 경험한다. 우리가 어느 나라를 가도 설명할 수 있기 편하고, 우리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쉬워진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익숙한’ 나라의 사람이니까. 특별히 과장한 흐름이 아니다. 그냥 일어나고 있는 걸 옮겼을 뿐. 어떤가. 문화의 힘이 참 대단하지 않은가.     


방탄소년단의 RM이 언급했던 김구 선생님의 명언이 있다.     


“오직 갖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이기적으로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는 가장 평화롭고 이로운 발전이라는 데 공감한다. 어쩌면 궁극적인 성장의 기준은 문화의 다채로움과 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희생을 반드시 요구하지도 않고, 모두에게 이로운 성장이니까. 점점 우리나라의 문화가 힘이 생기는 것 같아 기쁘고 고맙지만, 아직도 성장할 길은 남아 있다.      


우리는 문화의 힘이 어떤지 안다. 위인의 명언으로 남을 정도로 문화를 지켜내는 데 정성을 쏟은 나라다. 세계에서 드물게 식민 지배 이후에도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간직해 이어왔다. 그것만으로도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킬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처럼만 문화를 키워나간다면 우리는 곧 우리나라와 자신에 대해 훨씬 당당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짓밟히던 시기에도 꿈꿔온 희망적인 나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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