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Nov 23. 2021

뮤비가 뭐길래

뮤비 해석을 보다가 든 상념

뮤직 비디오. 연예인들이 노래를 발표하며, 함께 나오는 영상은 참 다채롭다. 그 영상 안에서 가사에 맞는 연기를 하거나 의외의 분장을 하기도 하고, 관련 작품의 배우가 함께 등장하거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춘다. 같은 아이돌이나 가수의 노래라고 전부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매번 컴백할 때마다 특유의 개성에 형형색색의 분위기를 바꾸는 걸 봐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조차 어색하다. 이미 뮤직비디오는 일상에 스며든 지 오래되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뮤직 비디오에 대한 의문이 있다.     


뮤직 비디오를 보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좋아한다. 굳이 오랜 팬이 아니어도 충분히 정성과 노력, 결실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은가. 보다 보면 아름답고, 끌리고, 멋있고, 황홀하고, 대단하다. 애절하고 눈부시고 안타깝고 잔인한 그 감정들을 느끼는 순간이 흔할 정도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 감정을 토해내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너무 짙고 다양한 기분을 느끼고 봐서인지, 뮤직 비디오 분석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뮤직 비디오만 분석하는 유튜버도 있고, 그 채널의 내용이 기사에 뜨기도 한다. 실로 지대한 관심이다. 내가 시대를 못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아티스트의 열렬한 팬이 아니어서 일수도 있지만, 의아한 일이었다. 왜 이토록 분석을 하려고 하는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큰 인기인데, 그 이유도 알 길이 없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이미지처럼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난 민족의 나라는 아닌데…. 오히려 지금까지 본 우리나라는 가장 공부를 지겨워하는 나라 같았다. 학습지며 학원이며 자율학습 아닌 자율학습까지 겪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 정도로. 그런 사람들이, 왜 그리도 뮤직 비디오에 숨겨진 의미며 메시지에 안달복달하는지 궁금했다.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무엇이든 그걸 분석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알기 위해서란 뜻이다. 비록 그 영상이 전통적인 학문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그 영상에 대해서 배우고자 한다. 그게 뮤직 비디오의 분석 인기의 원인이었다. 팬들과 대중들은 아티스트에게 관심과 사랑이 많다. 그러니 모르고 싶지 않다. 아티스트가 무슨 메시지를 노래와 비디오로 전하려고 하는지. 노래만으로는 못 찾아낸 의미가 있는지. 비디오에서 또 새로운 측면의 의미가 나오는지. 다 알고, 그걸 공감하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너무 주변에 흔해서 인지하지 못할 뿐 이건 대단한 학구열이다. 단순한 법칙에서 시작된 분위기. 좋아하면 알고 싶어 진다. 관심이 생기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그 단순한 법칙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과 사랑을 충족시킨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뮤직 비디오는 단순한 아름다움만을 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품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그걸 전체에서 표현하고, 재구성한다. 노래는 기본에 불과하고 뮤직 비디오가 더 작품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노래를 더 다채롭게 표현했다기보다 뮤직 비디오에서 노래를 잘 사용했다고 보일 지경이니. 노래와 뮤직 비디오 어느 쪽이 우선이든 상관할 일은 아니다. 모두 아티스트의 작품인데, 더 취향에 맞는 걸 소비하고 즐기면 된다. 다만 점점 뮤직 비디오의 의미가 대중에게도 널리 퍼지면서, 뮤직 비디오 분석이 한 학문의 분야가 된 것 같다. 교양으로 알아둬야 할 명화처럼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방탄소년단의 뮤비에서 숨겨진 의미, 블랙핑크의 뮤비에서 나오는 상징들, 아리아나 그란데나 다른 팝 스타들의 뮤직 비디오 해석들은 현대 예술의 분석인 셈이다. 앤디 워홀의 그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보려 애쓴 것처럼. 그 연장선이 이젠 뮤직 비디오에까지 와닿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모르는 걸’ 알고자 하는 현학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뽐내고 싶어 했다. 아주 먼 옛날의 고대부터 지금까지. 덕분에 문화가 생기고, 장신구며 예술이 발전했고, 지금의 우리가 누리고 있다. 그 뽐내고 잘난 척하고자 하는 유전자까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존심과 남이 모르는 걸 안다는 우월감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이토록 분석이 터져 나오는 것일지 누가 알겠는가. 특히나 우리나라는 예술가를 그리 좋게 보질 않아서, 좋아하는 예술가의 노래를 들을 때에도 눈총을 받곤 했다. 그런 울분을 해소하기 위해 절대 작품이 간단하고 가볍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실제 작품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시를 쓴 시인 자신조차 시에 관련된 문제를 틀렸단 건 유명하다. 오래된 형식의 예술인 시도 그러할진대 뮤직 비디오라고 다를까. 아티스트와 감독이 당황할 정도로 거창하고 희한한 분석도 이미 퍼졌을 수 있다. 누군가는 이를 해석의 자유라고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할 거다.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예술의 묘미라던가?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뮤직 비디오의 분석에 열광하는 게 애정 때문이든 우월감 때문이든, 뮤직 비디오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분석에 너무 얽매이거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예술은 그저 관람함으로써 의미를 얻을 때도 존재한다. 예술이란 애초에 보기 좋은 걸 의미하는 게 아닌가! 너무 긴 분석과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본래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적당히 생각하고 적당히 즐기는 게 제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새삼스럽지만, 문화의 힘을 실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