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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책장 Apr 23. 2022

나만 할 수 있는 일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 박문재 옮김/현대 지성


 내 감정이 바닥을 치는 그런 날 멘토를 찾듯 꺼내서 위로받고 싶은  책이다. 그렇게 울다가도, 힘들어하다가도 엄마에게 와서 '엄마. 나 힘들어. 안아줘요.' 하고 토닥여주면 금방 웃으면서 '엄마. 사랑해요.'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아이처럼. 나도 안기고 싶다. 명상록.


명상록은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생애 말기에 외적들의 침공을 제압하기 위해서 제국의 북부 전선이었던 도나우 지역으로 원정을 간 10여 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철학 일기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의 내적 요새로 꼭 들어가 보길 권한다. 한 번 다녀오면 겹겹이 꾸덕하게 들러붙은 마음의 때가 불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매주 가면 나의 뽀얀 본성을 만날 수 있을지도.


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받는다면, 네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외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너 자신의 판단 때문이기 때문에, 너는 즉시 그 판단을 멈춤으로써 고통을 없앨 수 있다. 너 자신의 생각이 네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라면, 너는 얼마든지 그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네가 어떤 일을 유익해서 꼭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실천에 옮기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왜 너는 그 일을 하지는 않고 고통스러워하기만 하는 것이냐. <명상록 166p>


타인의 평가에 유독 신경 쓰는 삶은 카톡으로 칭찬과 고맙다는 말을 들었지만, 또 상대의  표정이나 아리송한 말을 곱씹으며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나에게 인색한 나는 점점 더 내 안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사람이 되어갔다. 이럴 때 거리 두기의 사회적 장치는 나에게 나의 문을 열게 했다. 에너지를 내 안으로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책 속의 작가의 말에 위로받으며 건강한 자아를 만나기 위한 선한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보내는 중이다. 


  내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일에 대해 판단하지 말자. 나를 옭아매는 쪽으로 판단하는 생각을 멈추자. 멈추거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닐 텐데 명상록을 만나는 동안 '판단을 멈추자'라는 말이 내 가슴에 와닿았다.




 학교나 학원에서 내주는 과제 앞에서 작은 아이가 자주 울곤 한다.  이유는 나름대로 많다. 어제의 일이다.  코로나 격리를 끝내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숙제로 수학 익힘 4장 풀기를 내주셨다.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1장인데 우리 (확진으로 결석한 친구들) 셋 만 4장이다. 이런 게 어딨냐고. 목이 메어서 우는 모습. 꾸역꾸역 화를 내며 풀고 있는 모습을 봤다. 숙제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들여다보면 하루 종일 미루고 잘 때가 되어서 하려니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그리고 태어나기도 전에 방송된 '무한도전'프로그램이 머릿속에 채워져 있다.  숙제는 하기 전까지 고통스럽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에 결국 숙제는 마쳤다.


 "어떤 일 앞에서 어떤 마음 자세로 대할지 결정하는 것은 너야. 같은 숙제를 두고 빨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해야지 하는 것과 왜 이렇게 많아! 하기 싫어 죽겠네! 하는 것 중에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좋겠어. 네가 선택하는 거야. "


뜨끔이다. 이 말은 내 귀로 다시 들어온다. 나도 못하는 것을 아이한테 얘기한다. 명상록을 만났다고 하루아침에 미루는 던 습관이 없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나 나나 계속 서로 의지하며 의식을 깨워 실천해야겠다.


 "엄마도 어려워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싶은 일들이 많아 힘들 때가 있어. 그럴 때 엄마는 어떤 사람을 생각해. 그 사람이 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생각하면 하기 싫고 미루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그 일을 바로 해. 그러면 그 문제가 해결되더라고. 그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명상록 덕분에 오늘은 아이의 짜증에 짜증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  늘 마음이 무너지고 세우고 다시 고꾸라지고 일어나 보면 제자리인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간다. 가다 보면 좀 더 본성에 충실한 모습으로 내 자리를 야무지게 다지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스토아 철학자로서 명상록을 저술하였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고, 145년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결혼하였다. 마르쿠스는 수사학자였던 프론토를 비롯해서 여러 유명한 스승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12세 때부터 철학에 깊은 흥미를 보여 유니우스 루스티쿠스의 지도 아래 스토아 철학에 입문해서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을 배웠고, 이 책은 그의 명상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파우스티나와 결혼해서, 여러 자녀들을 두고서 대체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46년부터 피우스 황제와 공동으로 통치하였으며, 140년, 145년, 161년 3번에 걸쳐 집정관이 되었다. 161년 피우스 황제가 죽은 뒤 제위에 올라 180년까지 통치하였다.


 162년부터 165년 사이에 파르티아가 제국의 동부 지역을 침공한 것이 주된 문제였고, 166년과 168년에는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전염병과 동생 베루스의 죽음으로 제국의 전선이었던 도나우 지역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시도들이 중단되었다. 그 결과 170년 게르만족의 침공이 심가해져서, 마르쿠스는 180년 죽을 때까지 북부 이탈리아와 게르마니아에서 원정을 수행해야 했다. 이 원정은 성공적이었고, 국경 지대들은 안정되었다. 175년 이집트와 시리아의 총독이었던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그는 그 기회에 동방지역을 평정하고,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 아테네를 방문하였다.


177년 마르쿠스는 아들 코모두스를 공동 황제로 선포했다. 그들은 협력하여 도나우 강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180년 마르쿠스가 코모두스를 국정의 최고 조언자로 임명하고 난 직후 군대 사령부에서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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