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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강박증과 폭식의 근간에 있는 내 마음 알아채기

냉혹한 자기 인식의 뒷면

by 유주씨

학생시절, 외모강박증과 폭식에 시달리던 나는 ‘왜 날씬하지 않지, 왜 더 예쁘지 않지, 왜 자꾸 허기가 지지’라고 자신을 비난하기 바빴다. 겉으론 고민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걸 눈치챈 친구는 내게 “다른 애들은 너 뚱뚱하게 안 봐.”라고 말해줬는데, 그럼에도 나는 내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 비만인 적도 없고 끽해야 과체중 언저리였지만, 엄마에게 난 내 허벅지살 절반을 도려내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성인이 되자 폭식은 약간의 거식에 가까운 모습이 되면서, 식욕증진 기능이 있는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초등학생 6학년 때의 몸무게가 됐을 땐, 이러다 말라죽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는 생각이 이때야 처음 든 것 같다.



마른 게 아름답다는 고정관념이 주입되기 쉬운 세상이다 보니 성장기엔 이리저리 휘둘리기 쉬운 게 사실이다. 나의 외모강박증과 폭식의 근간에 있었던 건, 사랑받을 수 없다는 공포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살찌면 모두가 날 비난하고 얕볼 거라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폭식에 통제권을 잃어버린 듯한 좌절감은 나를 더욱 고통으로 몰아가는 악순환을 빚은 것이었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내가 자신에게 얼마나 냉혹한 사람이었는지 느낀 계기가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살이 찌고 비만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몸무게 하나로 그렇게 가혹하게 자신을 판단하던 내가 그들의 비만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단 걸 안 것이다. 비만이 되든 말든 친구는 여전한 친구였고 그냥 다이어트를 위해 좀 애쓴다는 인상만 있었던 것이다. 학생시절 친구의 “다른 애들은 너 뚱뚱하게 안 봐.”의 수준을 넘어선 비만이 된 친구들의 모습에도 난 그저 덤덤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그동안 나를 괴롭힌 건 나 자신이었음을,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단지 사랑받지 못할 거란 공포감에 기반한 모습들이었음을 실감했다. 누군가의 애정과 관심을 잃는다는 걸 죽음과 같은 공포로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하게 된다. 이게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랑받을 자격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기까지 20년 가까이는 걸린 것 같다. 날씬하거나 정상체중인 건 그냥 뚱뚱한 것보다는 옷태가 나고 보기 좋은 것, 딱 그 정도의 인식으로 돌아오기까지 긴 세월이 걸렸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색안경과 필터를 벗어던지고 살면 좀 더 수월한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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