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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Mar 13. 2023

일이 싫었던 건 아닙니다

꼭 돈만을 위한 건 아닌 일






 이래 봬도 나는 성공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일하기 싫었다면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도 그만뒀을 것이고 취업 준비도 안 한 채 바로 집에 틀어박혔을 것이다. 뭐 하러 자격증을 따고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했을까. 단지 오래 방치된 아픈 곳을 치료하다 보니 좃망인생으로 흘러들어간 것뿐이라고 하면 변명일까? 어릴 땐 TV에 나오는 백수 삼촌이라든지, 노숙자들이라든지 보면서 왜 저렇게 살까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이해가 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끄덕이는데 어쩌면 그들과 나는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오랜 백수 생활과 처절한 바닥 찍기를 반복하며 얻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나와 타인에 대한 공감력과 이해심일 것이다. 특히 나처럼 크든 작든 소위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력과 이해심이다. 망하기 위해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다들 잘 살고 싶었지만 잘되지 않은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거기다 교만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왔으니 이젠 자기 객관화까지 잘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실 그동안 이러한 마음 자세 말고는 별로 얻은 건 없고 굳이 이걸로 위안을 삼는 내 모습에 때론 비참해지기도 한다.     






 가끔 주변에서 내게 단순히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닌가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듣기 원하는 걸 느낀 적이 있다. 집에서 놀면 편하다든지, 뭘 믿고 일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든지, 이제 슬슬 일할 때도 되었다든지 하는 말들을 들었다. 물론 나도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것에서 뜻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이해하고 있고 사회생활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많다는 걸 안다. 지금 이 상태로 머문다면 나는 재산을 일구기도, 사람들을 만나거나 애인을 사귀고 결혼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생각하면 사회에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왜 또 머뭇거리고 방황하냐고 묻는다면 내 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랜 신경증으로 번번이 사회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닌 역사가 있다 보니 어차피 시작해도 금방 그만둘 거라 생각하는 학습된 무기력이 있다. 게다가 신경증은 스트레스 저항력이 떨어지는 병이라서 작은 자극에도 스트레스를 크게 느껴 상태가 악화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여전히 크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호전되어 왔는데 이 평화를 깨야 하는 환경에 놓이는 게 너무나도 두렵다. 





     

 이런 모습에 병원 선생님께서는 내게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이번엔 다를 것이라며 용기를 주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약으로도 해결이 어려운 것이 악순환에 싸인 삶의 꼬인 줄을 풀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떤 카르마를 안고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삶의 중요한 시점마다 번번이 실패와 낙오를 반복하고 말았으니 앞으로도 변화의 계기가 생길지는 의문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력서에 쓸 수 있는 한 줄의 짧은 경력마저 얻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에 떠밀리듯이 짧은 알바를 반복했던 것으로 별수 없이 거짓말로라도 기간을 뻥튀기한 이력서를 채워놨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랜 시간 동안 일도 지속하지 못할 만큼 나를 괴롭혔던 불안, 강박, 우울이 순차적으로 사라져가는 지금, 우울증은 남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그 우울증이 낫지 않는 원인은 그동안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돈도 못 벌게 된 초라한 나에 있다. 그전에는 기질인지 환경인지 부적응인지 그렇게 우울증을 달고 사는 삶이었다면 이젠 결이 좀 다르다는 걸 확연히 느낀다. 그런 이유로 앞으로 일할 이유가 또 있다면, 그것은 마지막으로 남은 우울증에서 벗어날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겠다.      






 삶은 완벽할 수 없다. 앞으로도 내 삶은 완벽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걸 계속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에 대한 높은 기준과 기대를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잘 되어 일을 꾸준히 하게 되더라도 욕심은 계속 생겨나서 스스로를 또 괴롭히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그 안에서 또 ‘적당히 일하고 싶은 나’와 ‘더 잘하고 싶은 나’가 싸우게 된다면 이번엔 적당히 일하며 오래 견디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지금껏 오랜 시간에 걸쳐 내가 가진 불필요한 완벽주의를 내려놓았으니 이제 오래 견딜 지구력을 적용할 기회를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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