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선을 찾아서
아끼는 일의 적당한 선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내가 어디까지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지, 시간과 돈과의 문제 그리고 남의 시선을 얼마나 무시할 수 있는지까지가 고민거리였다. 숨 막힐 정도로 모든 생활에서 아껴서는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스트레스가 쌓이니 적당하게 합의를 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게 됐다. 텀블러뿐만 아니라, 큰 구멍의 버블티용과 작은 구멍의 일반음료용을 파우치에 챙겨 카페에 다니는 걸 습관화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끔 잊고 갈 때도 있었지만 자책은 하지 않았다. 빨대 하나가 하루의 기분을 망치게 할 만큼 영향력이 크진 않고, 내 마인드 유지를 위한 하나의 노력일 뿐이다.
하지만 회사를 다닐 때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나름 아끼는 노력을 지속하려면 어느 정도 타인의 시선을 무시해야 했기 때문에 타협을 할지, 고수할지를 자주 고민했다.
한 번은 화장실 세면대에서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고는 쓰지 않고 거울만 계속 보는 친한 동료를 지켜보다가 슬쩍 물을 잠가준 적이 있다. 내 입장에선 낭비로 보였는데 동료는 회사 물은 공짜라고 생각했는지 유난스러워 보였나 보다. 엄청 아낀다며 좀 놀리는 투로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 모두 종이컵에 커피를 타먹었지만 난 두유 유리병을 잘 씻어서 믹스커피 타먹는 용도로 들고 다녔다. 한 컵에 10원도 안 되는 종이컵을 사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쓰레기 좀 덜 만들려는 개인적인 노력이었다. 누군가 구내식당에서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종이컵을 왜 쓰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설명하기 귀찮아 환경호르몬을 피해 건강을 챙기려고 한다고 둘러대었다.
가치관의 차이라고 느꼈기에 쓰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뭐라 하지도 않았으니 된 것 같지만, 어딘가 다수와 다른 내 모습에 가끔 위축된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속일 수 없었다. 그래도 그저 조용히, 꿋꿋하게 내 습관을 유지했다. 스쳐 지나가는 남이 던지는 의견은 내 인생에 영향력이 매우 작다.
아낌의 적당선을 찾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20대 때는 자취하면서 지독한 아낌의 역사를 제대로 썼던 적도 있다. 철저히 외식을 줄이고 오로지 집밥 만들어먹기에 올인하며 식비 10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 한겨울에는 혼자 사는 작은 오피스텔에 보일러 트는 게 아까워서 아플 때도 전기장판만 튼 채, 찬 공기에 벌벌 떨기도 했다.
지금은 20대였던 당시에 기본 생활비를 아끼는 것보다 돈을 더 벌 궁리와 미래의 커리어 준비를 치열하게 했더라면 지금의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적당함을 몰랐던 그 시절은 흑역사일까, 과정일까?
그렇게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선택했던 아낌의 역사는 회복 후에도 이어져 어떨 땐 도움이 되기도 했고 때론 유난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아낌은 이제 소중함과 감사함의 마음을 담는 작은 실천이기에 앞으로도 적당선을 찾아 줄다리기하며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