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테크/디지털 벤처들이 동남아로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서 만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하나 하나 떠올랐다. 올해의 반 정도를 한국에서 머물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더 큰 도약을 꿈꾸는 한국 창업가들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고, 서울이 창업에 있어 세계적으로 훌륭한 수준의 도시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지난 3년간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벤처케피털 업계 덕분인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주로 Series A 이후의 스타트업 대표나 임원들을 만나면, 1~2년 내 핵심 목표 중 '동남아 확장'에 대해 공통적으로 말씀하셨고, 늘 흥미로운 대화로 이어진다. 지난 3년간 운 좋게 동남아 6개국에서 4개의 다양한 디지털/테크 벤처들의 아시아시장 론칭과 사업 개발 업무를 담당하면서, 동남아시아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확장을 염두하기에 정말 가슴뛰고 신나는 시장임을 확인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글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 그래서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그리고 일본을 오가며 해온 사업개발 및 시장 확장 일에 대해 천천히 적어보고자 한다. 이미 멋진 서비스를 만들고 계시고, 해외 시장 확장을 고려하고 계신 분들께, 나의 글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먼저, 왜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유럽 출신의 벤처들은 지난 5년간 점점 더 동남아시아 시장 확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미국 실리콘밸리는 오랜 시간 동안 파괴적 혁신, Minimum Viable Product, 피보팅(pivoting)등 우리가 스타트업과 관련하여 알법한 용어들이 탄생하고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실현된 곳이다. 실제로,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다양한 나라의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실리콘밸리로 진출하였고, 이들은 여러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실리콘밸리 자체의 중요성보다는 테크 스타트업 허브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2010년을 기점으로 뉴욕, 오스틴, 시카고 등의 미국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런던, 베를린, 베이징, 싱가포르 등 유럽과 아시아권에서 다양한 스타트업 허브들이 탄생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테크 스타트업 허브는 늘어나고 있는데, 많은 테크/디지털 벤처들은 그중에서도 왜 동남아시아 시장에 특히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동남아일까?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폭발적인 경제성장률과 시장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예상되는 아시안 GDP는 전 세계 다른 지역의 GDP의 총합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동남아시아 6개국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의 인구는 약 66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며, 이 동남아 인구의 중간 연령은 30세이고, 동남아 인구의 70%는 40세 미만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의 중간 연령은 미국: 38살, 한국: 40세, 독일 44세, 일본: 48세이다.)
Bain & Company의 리포트에 의하면 2022년까지 약 5000만명 이상의 인구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중산층이 되어(현재 약 3억 5천만명이 중산층) 각 나라의 중간소득자 경제규모가 한화로 300조 정도가 추가된다고 한다. 이처럼 동남아시아의 젊은 인구와 폭발적인 경제성장률은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고 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 경제성장의 가장 큰 촉진제 중 하나는 미친듯이 성장하는 디지털 이코노미다. 2015년에 2억 6천만명으로 추정되었던 동남아시아의 인터넷 사용자는 2019년 3억 6천명을 찍고, 올해에는 4000만명이 더 추가된 4억명으로 추정된다. 4억명은 미국과 독일의 총 인구를 합친 양 정도 되는데, 이 정도 규모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이커머스, 온라인 미디어, 음식배달과 이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이 4억명의 90%는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디지털/온라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향후 15년간 해마다 약 1천만명의 새로운 인구가 이 모바일 세대(15세 이상)에 합류한다고 한다.
10년 전 까지만 해도 이 6개의 동남아 국가 중 4개국가에서는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매우 협소했지만, 오늘날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활발히 스마트폰과 삶을 함께하는 인구가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Google, Temasek, Bain & Company에서 연간 발행하는 'e-Conomy SEA' 리포트에 상세하게 나와있다.
e-conomy SEA Report 보러가기 (by Google, Temasek, Bain)
동남아시아에 투입되는 투자금액은 2015년부터 꾸준히 증가해왔다. 2017년에는 사모펀드와 VC투자 포함 투자금액이 처음으로 유럽을 능가했으며, 특히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그 투자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Sequoia Capital, DCM, IDG Ventures, 500 Startups등과 같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VC들은 2019년에만 동남아의 4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8조원 이상의 투자를 집행하였고, 결과적으로 아래와 같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 이상)의 길을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다양한 기업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 한국은 동남아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지난 2년간 국내 VC들은 아래와 동남아 기업들에 직접 적극적인 투자들을 집행해왔고, 또 VinaCapital Ventures, Golden Gate Ventures, Kejora Ventues등과 같은 현지 VC들과 joint fund를 결성해왔다.
미래에셋 & 네이버 —> Bukalapak(인도네시아 이커머스 유니콘)
본엔젤스 & 카카오 벤처스 —> Mamikos(인도네시아의 직방/다방)
소프트뱅크 코리아 —> Carro(싱가포르/인도네시아 온라인 중고차 플랫폼)
Nextrans & FuturePlay —> EcoTruck(베트남 B2B 로지스틱스 서비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많은 투자금이 집행되었는데, 2019년 상반기에 베트남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운영된 61개의 펀드 중 한국펀드가 13개로 11개인 싱가포르 펀드보다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5년에 단 하나의 한국-베트남 스타트업 펀드가 전부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지난 5년간 한국이 동남아 시장에 가지고 있는 관심은 크게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동남아시아는 사업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싱가포르를 예로 들자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등의 주변 동남아 국가들로 비행기로 2-3시간이내에 이동할 수 있고, 이는 가까운 반경 안에 5억명의 인구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항공시간을 6시간으로 늘리면, 세계 인구의 반 정도인 약 30억명의 인구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지리적인 유리함 외에도 특히 싱가포르는 행정적인 측면에서 외국인이 창업을 하고 기업경영을 하기 용이한 환경을 제공하며, 이 때문에 상당히 많은 수의 규모가 큰 동남아 벤처들의 본사는 싱가포르에 위치해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면 투자유치 기회 외에도 낮은 법인세율과 비자 발급 등의 혜택이 존재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Start-up Tax Exemption (SUTE)라는 세금정책을 펴고 있는데, 주주 관계 및 업계 기준을 맞춘다면 첫 3년간 낮은 세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수익이 연간 9천만원 미만일 경우 겨우 6% 중반대의 세율이 적용되며, 누진적으로 연간 4억 5천이 넘어야 10%로 증가한다. 또한, SUTE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래와 같이 비교적 낮은 법인세율이 적용된다.
또한, 외국인 창업자들을 위한 비자인 Entrepreneur Pass (EntrePass) 또한 존재하는데, 아래와 같이 자본금, 투자유치 혹은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참여 여부 등의 조건을 충족한다면 어렵지 않게 발급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Entrepreneur First 혹은 Antler 같은 경우 매해 두 번씩 기수를 뽑아 프로그램에 오퍼를 받게 된다면 자동으로 EntrePass가 발급되어 1년 동안 싱가포르에 체류할 수 있으며, 투자유치 및 기업의 상황에 따라 연장할 수 있다.
'Work hard, play hard', 많은 신생기업들과 창업가들의 만트라이다. 위에 적은 것처럼 짧은 비행거리로 다양한 이웃 나라에 쉽게 갈 수 있다는 점은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삶의 질에도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다낭, 발리, 세부, 방콕, 푸켓, 코타키나발루 등 멋진 휴양지들이 너무 많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해외여행지 TOP 15 중에 절반 이상이 동남아 국가들이다. 물론 올해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일시적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일시적이라 쓰고 나의 소망이라 읽는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저가항공을 통해 주말 치기로 방콕, 호치민, 발리를 여러 번 다닐 수 있었고, 스트레스 해소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연간 전 세계적으로 삶의 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Mercer의 Quality of Living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매년 아시아에서 1등을 차지하곤 한다. (여기까지 싱가포르 자랑은 그만!)
이렇게 사업개발 및 확장을 계획할 때 동남아가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다양하다. 다만, 단순히 매력적이라고 해서 동남아 진출을 고려하는 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떤 부분을 고려해볼 수 있는지, 다음 글에서 더 이야기해보자 한다.
벤처를 다음 단계로 성장시키기 위해 동남아 시장 확장을 하는 일은 위에 나와 있는 내용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회사와 산업 그리고 동남아 국가에 맞는 적절한 사업개발 전략, 충분한 준비, 그리고 알맞은 팀이 있다면 반드시 고려해 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싱가포르를 베이스로 8개의 국적을 가진 팀을 운영하며 다양한 업계의 미국, 유럽 출신 벤처들이 동남아 6개국 및 한국에 사업 론칭 및 Biz Dev를 담당해왔습니다. 이 기업들 중에 후속 투자를 유치하거나 IPO를 진행한 곳도 있는 가하면, 물론 동남아사업을 철수하게 된 기업들도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사업 확장 및 개발을 고려하고 계시다면 연락주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