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장이 아닌, 동남아국가로 시작해야하는 이유
흔히 "동남아"라는 말을 들을 때, 여러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덥고 습한 날씨,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 아름다운 해변과 칵테일, 늘 붐비는 야시장 등 보통 여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참고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해외 여행지 TOP 15 중에 절반 이상이 동남아 국가들이다. (아... 우린 언제 이렇게 또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싱가포르, 방콕, 다낭, 발리, 세부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동남아 여행지들을 생각해보면, 전반적으로 여행지로 경험할 수 있는"동남아"는 비교적 일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 있어 "동남아"를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큰 함정이 될 수 있다. 먼저, 아세안/동남아(ASEAN) 지역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 그리고 동티모르 이렇게 11개의 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총 27개 국가로 구성된 유럽연합(European Union) 혹은 50개 주로 이루어진 미국에 비하면 적은 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동남아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성이 있는 시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남아 시장을 단일 시장으로 생각하고 진출 전략을 세운다면 십중팔구 잘못될 위험이 크다. 특히,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한국에서 통한 전략이 동남아에서도 일관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먼저, 잠재 고객층(Target audience)을 보면 동남아가 얼마나 다양한 지 알 수 있다. 소수 민족을 제외하고 약 8개의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즈니스를 하면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종은 적어도 5개 이상이며, 다국적 기업(MNC)들 및 대기업의 임원 중 상당 수는 유럽 혹은 미국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11개의 동남아 국가에서는 총 13개의 주요 언어가 존재하고, 이 외 Arabic, Creoles, Indo-European등의 소수민족이 구사하는 언어까지 합하면 총 40개가 넘는다. 물론, 비즈니스를 할 때는 영어와 현지 주요 언어 두 개만 익히면 문제가 없다. (물론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 총 4개의 주요 언어가 있다.)
잠재 고객층이 이렇게 다양하다보니,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정말 다양한 결과물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동남아 주요 6개 시장* (인구 순으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 신제품 론칭을 앞둔 한 글로벌 제과 기업의 컨텐츠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제과기업의 가장 큰 우려 사항은 그들의 주요 소비자층이 5개의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 인종에 맞는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를 따내고 광고기획 및 제작에 들어갔을 때, 실내 스튜디오에서 Green Screen과 12명의 캐스팅 (피부색, 머리색, 성별, 나이, 종교, 그리고 언어가 다양한)을 활용해서 175개의 asset들을 찍은 경험이 있다. (보통 한국에서 비슷한 규모의 캠페인을 진행했을 때에는 최대 20개 정도의 asset이면 충분하다) 참고로, 이 회사와는 연간 계약을 맺게 되는데, 다양한 캐스팅의 겉모습 뿐 아니라, 나라별 종교 공휴일이 다르기 때문에, push해야 하는 캠페인의 특성과 날짜까지도 차별화 해서 진행했다. 이렇게, 타게팅을 하는 과정과 결과물이 매우 세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동남아 시장의 특성이다.
*11개의 동남아 국가 중 라오스, 브루나이, 동티모르는 개인적인 경험과 식견이 부족하고 또한 시장 규모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나머지 8개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썼다.
인종과 종교, 그리고 언어가 다양한만큼, 동남아국가들에는 매우 다양한 법과 문화가 존재한다. 사실 어느 해외시장이던 사업을 진출시킬 때는 그 나라의 기본적 문화와 에티켓을 배워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동남아의 문화는 ~하다."라고 일반화하기 전에, 동남아 국가 간의 법과 문화가 매우 다를 수 있다라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각 나라별 비즈니스 에티켓을 꼭 현지인으로부터 확인하고 이를 염두에 두고 이해관계자들을 nurture한다면 타 경쟁사 대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법적인 부분은 사업과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생각보다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회사들이 product-market fit의 중요성 대비 간과되는 부분이다. 2년 전 나는 스페인 마드리드 생체 보안 스타트업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3개국에 진출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보안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별 법적 due diligence를 간과했기 때문에 싱가포르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는 아예 product-market fit이 없는 걸로 판단이 났다. 예를 들어, 생체 보안(지문, 홍채, 얼굴인식 등) 관련 서비스를 운영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국가적인 데이터 관리 및 IAM(Identity Access Management)에 대한 정책 및 규율이다. 따라서 관련 IAM 관련 조직에서 credential을 받는 게 매우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그 당시에는 PDPA(Personal Data Protection Act)가 엄격히 적용되는 마켓이 싱가포르 뿐이었고, 나머지 시장에서는 PDPA에 대한 규율이 매우 느슨했으므로 높은 법적인 리스크가 수반되었고, 결국 론칭이 취소된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결론은 사실 현지 투자 및 확장 전에 desk research 혹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미리 숙제를 단단히 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인프라는 도로, 항만, 철도, 발전소, 통신, 인터넷 시설 따위의 산업 기반의 인프라부터 학교, 병원, 쓰레기 처리 등의 생활 기반 인프라도 포함한다. 아마도 요즘 디지털/테크 스타트업들에게 더 연관성 있는 인프라는 payment gateway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와 그 디지털 인프라가 그 나라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및 행동 변화인 것 같다. 동남아 도시를 조금 다양하게 다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각 동남아 국가별 인프라 수준은 천차만별이며, 이 인프라 수준은 법과 문화와 함께 product market fit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예를 들어, 일전에 함께 일했던 일본 출신의 이커머스 adtech 회사는 확장 초기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미미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가장 큰 이유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e-commerce 시장이 동남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고,인구 대비 e-commerce 시장 규모도 가장 크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adtech 회사는 두 시장의 투자를 두 배로 늘리기로 결정했고, 특히 베트남에서는 어리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젊은 이커머스 창업팀들과 매우 적극적으로 POC(Proof of Conept) 파트너십을 추진했다. 하지만, 막상 클라이언트와 함께 베트남에서 POC 미팅을 하러 갔을 때 예상치못하게 부딪혔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베트남의 전자 결제 및 신용카드 관련 인프라 상황이었다. digital wallet은 커녕, 베트남은 신용카드 발급율이 전 국민의 5%를 웃돌 정도로 낮았다. 일본의 신용카드 소지자 비율이 7~80%이기 때문에 AdTech 클라이언트의 수입이 잡힐 수 있는 메커니즘은 모두 전자 결제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는 반면, 당시 베트남은 거의 모든 이커머스 활동이 COD(Cash on Delivery) 형태로 상품 수령 후 현금결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바라던 POC 일정은 매우 지연되었고, 클라이언트사는 COD기반의 이커머스 고객들을 위한 기능을 새로 개발해야만 했다.
디지털 인프라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하드웨어 기업 같은 경우 도로, 철도, 항만, 혹은 공항 등의 운송 인프라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인프라가 있다고 해서 supply chain에 문제가 없을거라고 예상하는 것 또한오산이다. 책 <사업을 키운다는 것>에서 나온 유명한 도쿄의 도시락 배달 전문점 '다마고야'도, 일본의 도로 인프라에 맞춘 공급망 관리에 대한 전략이 없었다면, 1만여 곳 이상의 기업체에 그날 만든 따듯한 도시락을 12시 정각까지 오차 없이 배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다마고야가 될 수 없었을 거다. 디지털 혹은 테크 회사에게도 동남아 나라별로 천차만별인 이런 운송 인프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처럼 작은 도시국가에서는 하루에도 5-6개의 다른 거래처를 오가며 미팅을 할 수 있지만, 자카르타나 호치민에서는 교통체증 때문에 하루에 3개 이상의 미팅을 소화하기도 쉽지 않다.
<동남아 사업개발 - 왜 동남아일까?>에서 다룬 것처럼, 동남아시장은 벤처확장에 매우 매력적인 무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지리적으로 가깝게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동남아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지 않고, 나라별로 존재하는 타겟마켓, 법과 문화, 그리고 인프라가 정확히 어떻게 다르며, 사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철저한 사전 전략 및 준비는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벤처를 다음 단계로 성장시키기 위해 동남아 시장 확장을 하는 일은 위에 나와 있는 내용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회사와 산업 그리고 동남아 국가에 맞는 적절한 사업개발 전략, 충분한 준비, 그리고 알맞은 팀이 있다면 반드시 고려해 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싱가포르를 베이스로 8개의 국적을 가진 팀을 운영하며 다양한 업계의 미국, 유럽 출신 벤처들이 동남아 6개국 및 한국에 사업 론칭 및 Biz Dev를 담당해왔습니다. 이 기업들 중에 후속 투자를 유치하거나 IPO를 진행한 곳도 있는 가하면, 물론 동남아사업을 철수하게 된 기업들도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사업 확장 및 개발을 고려하고 계시다면 연락주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