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시기 2년 전쯤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됐다.
휴지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할머니의 치마에는 꼭 속주머니가 달려있었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검버섯 가득 핀 손으로 늘 치마에 속주머니를 달아 입곤 하셨다.
혹여라도 우리 아들이 힘들게 번 돈, 우리 딸이 아껴서 준 돈을 잃어버릴까 우려에 그러셨던 것 같다.
속주머니 속에는 쭈글쭈글한 검정 지갑과 함께 휴지가 한 움큼 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뭉쳐서 꼭 속주머니 속에 넣어 노셨다.
식당을 가든, 공공 화장실을 가든 늘 휴지를 돌돌 말아 오셨다.
엄마와 외삼촌, 이모들은 그런 할머니를 나무랐다.
도대체 왜 자꾸 휴지를 가져오는 거냐고, 필요도 없는 휴지를 뭐 하러 뜯어 오냐고.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상관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무셨다.
치매 이후로는 휴지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졌다.
휴지를 손으로 다림질하듯 펴서 반듯하게 만들고, 접었다가 다시 폈다가 또다시 접었다...
할머니의 옷을 빨기 전에는 꼭 바지, 치마 주머니를 확인해야 했다.
안 그러면 빨래가 휴짓조각으로 난리가 났다.
그럴 때면 엄마와 이모의 얼굴은 한층 어두워졌다.
찢긴 하얀 휴짓조각이 마치 할머니의 기억 조각이 살해당한 현장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가 휴지에 집착한 이유는 너무 분명했다.
평생을 아끼며 사셨던 분이다.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아끼고 또 아끼셨다.
하지만 절대 손 벌리지 않았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으셨다.
식당에서 가져온 휴지는 할머니의 삶같았다.
할머니는 자신이 쓸만큼만 챙기셨고, 그렇게 챙겨 온 자신의 몫은 결국 할머니의 몫이 아니었다.
아껴뒀다가 자기 자식들 몫으로 내어주셨다.
곱게 반듯이 접힌 휴지 속에 우리 할머니의 지고지순함이 같이 접혀있었다.
곱게. 바르게. 순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