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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짹짹 Mar 18. 2023

저, 성인 ADHD 아닌가요?

드디어 상담을 받게 되다니 - 1


요즘 부쩍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주의력과 집중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 ADHD의 증상인가 싶어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마침 학교 심리상담소에서 문자가 왔다. 공짜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학비에 이미 포함된 비용이겠지만) 좋은 기회인 것 같아, 바로 상담 신청을 했다.



상담선생님 : 상담 신청서에 ADHD가 의심된다고 하셨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나 : 세 가지 증상 때문에 의심이 되는데요. 먼저 최근에 너무 집중력이 떨어져요. 예전에는 1시간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30분도 집중이 안 돼요. 그리고 감정 기복도 심해요. 생리 전에 특히 심하긴 한데, 마음속에 감정의 소용돌이가 이는 것 같아요. 세 번째는 주의력 결핍인데요. 이건 최근 들어 심해진 증상은 아니고, 잘 부딪히고 놓치고 조심성과 주의력이 다른 사람보다 떨어지는 것 같아요.


상담선생님 : 먼저, 여기는 심리상담소라는 것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람을 컴퓨터라고 예로 들면, 하드웨어를 고치기 위해서는 정신과(병원)를 가야 해요. 성인 ADHD를 진단받는 것은 약을 먹고 치료를 해야 하는 하드웨어적인 문제예요. 여기는 소프트웨어를 고치는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여기에서는 질병을 진단 내려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ADHD가 의심되지는 않아요. 먼저,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생각하게 된 경위를 알려주세요. 최근에 감정기복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일화가 있나요?


나 : 음.. 최근에 배우자와 다툰 일과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데요.   


상담선생님 : 배우자와의 일화를 먼저 소개해주시겠어요?


나 : 배우자 때문에 화가 난 상황이었어요.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여행을 계획하다가 귀찮아져서 잠시 미뤄둔 상태였어요. 근데 친구들과 놀고 와서는 저와 가기로 한 곳을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도 되냐고 묻는 거예요. 당장 가도 되냐는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 가기로 했는데 어쨌든 "놀러 가도 될까? 허락을 먼저 받으려고"하며 물어보는 거예요.


상담선생님 : 그래서 어떻게 반응했나요?


나 :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어이가 없어서 "뭐? 그럼 우리 여행은 어떻게 하고?"와 같은 반응을 했던 것 같아요.


상담선생님 : 그다음에는요? 제가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그때 상황을 다시 한번 재연해 보죠. 실제로 대화하듯이 말씀해 주세요. "나 친구들이랑 여행 가려고 하는데, 가도 될까?"


나 : "뭐? 친구들이랑 거길 간다고? 그럼 나랑은 언제 가려고? 참네 나랑 갈 때 여행 계획하는 거 귀찮아하더니 친구들이랑 가는 건 안 귀찮은 가봐?"


상담선생님 : 지금 감정 표현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나요?

 

나 : 네, 그런 것 같아요. 짜증 난다는 걸 충분히 어필한 것 같아요. 배우자도 제가 짜증이 난 것을 인지했고요.


상담선생님 : 아니에요. 지금 감정 표현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감정 표현이 아니라, 생각을 표현한 거예요. 감정 표현이라는 건 "짜증 난다. 정말 어떻게 그걸 물어볼 수가 있어?", "어이가 없다. 나랑 같이 가겠다고 해놓고서 친구들이랑 간다고?", "나 지금 정말 서운해, 우리 여행은 어떻게 하고?"와 같은 것들이에요. 감정 표현은 짜증 나, 어이없어, 서운해하고 말하는 것을 말해요.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감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생각 표현을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면서 나는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고, 오히려 감정을 억누르는 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감정을 늘 억누르고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감정을 담아놓은 상자가 빵 터져버리고, 그 터진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오니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건 감정 기복이 아니라, 잘 담아 놨다고 생각한 감정들이 사실은 우겨져 있어서 폭발한 것인데 말이다.


감정 표현을 해보는 연습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감정을 36색 색연필이라고 생각하고, 각각의 색깔들이 마음에 떠오를 때마다, 그 색을 느끼고,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지금 내가 자주 쓰는 색은 아주 한정적이었다. 일주일 동안 연습해 보니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내가 내 감정을 잘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게 무엇이지? 이게 도대체 무슨 감정일까? 내가 나를 모르겠는, 아리송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런 상황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잘 모른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한국 사회에 살면서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매 순간 어떻게 자기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살겠는가. "팀장님 방금 하신 말씀 어이가 없네요.", "차장님 정말 짜증이 나요. 어떻게 그런 것까지 저한테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모든 감정을 말하며 살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직장에서가 아닌, 내 일상 속에서라도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래야 감정의 상자가 터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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